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고승전9

법현의 역경 여정-1 석법현(釋法顯)석법현의 성(姓)은 공(龔)씨로 평양(平陽) 무양(武陽) 사람이다. 법현의 세 형이 모두 7ㆍ8세의 어린 나이에 죽었다. 아버지는 재앙이 법현에게도 미칠까 두려워, 세 살 되던 해에 바로 승적(僧籍)에 올려 사미(沙彌)가 되게 하였다.몇 년 동안 집에 머무르다가 병이 위독해져 곧 죽을 듯했다. 사찰로 돌려보내니, 이틀 만에 병이 나았지만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를 만나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다. 후에 사찰의 문 밖에 작은 집을 짓고 서로 왕래하는 것에 비겼다. 열 살 때에 부친상을 당하였다. 작은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가 늙은 데다 자식도 없이 홀로 지내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억지로 환속(還俗)시키려고 했다.법현이 말하였다.“본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출가한 것은 아닙.. 2024. 12. 21.
불야다라의 역경 여정 2) 불야다라(弗若多羅)弗若多羅二불야다라는 중국말로 공덕화(功德華)라 하며 계빈국(罽賓國)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계율을 잘 지키는 행실로 칭찬 받았다. 두루 삼장(三藏)에 통달하였다. 특히 『십송률(十誦律)』 부(部)1)에 정통하여 외국에서 으뜸가는 스승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올라갔다”고 하였다.弗若多羅此云功德花罽賓人也少出家以戒節見稱備通三藏而專精『十誦律』部爲外國師宗時人咸謂己階聖果위진(僞秦)의 홍시(弘始) 연간(399~416)에 지팡이를 짚고 관중(關中)에 들어왔다. 진나라 임금 요홍(姚泓)은 으뜸가는 손님의 예로 대우하였다. 구마라집도 역시 그 계행의 본보기에 절하며 두터이 존경하였다. 이에 앞서 비록 경법(經法)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율장(律藏)은 아직 널리 .. 2024. 12. 14.
구마라집 역경 여정 - 마지막 구마라집 역경 여정-9(마지막)예전에 구마라집이 구자국(龜玆國)에 있을 때, 비마라차(卑摩羅叉) 율사(律師)에게 계율을 배웠다. 뒤에 비마라차가 관중(關中)에 들어왔다. 구마라집은 그가 왔다는 것을 듣고 기쁘게 맞이하여 스승을 공경하는 예를 극진히 하였다. 비마라차는 구마라집이 핍박당한 사실(파계한 사실)을 아직 몰랐다.어느 날, 구마라집에게 물었다.“그대는 중국 땅에 지중한 인연이 있네. 법을 전수 받은 제자는 몇 명이나 되는가?”구마라집은 대답하였다.“중국 땅에는 아직 경장과 율장이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경과 여러 논(論)들은 대부분 제가 번역해냈습니다. 3천 명의 학도들이 저에게 법을 배웁니다. 그렇지만 저는 업장(業障)에 깊이 얽매여 있어서 스승으로서의 존경은 받지 못합니다.”初什在龜茲從.. 2024. 12. 10.
구마라집 역경 여정-8 구마라집 역경 여정-8용광사(龍光寺)의 석도생(釋道生)은 지혜로운 앎이 미묘한 경지에 들어가고, 현묘한 의미를 문자 밖까지 이끌어 내 놓을 정도의 인물이다. 그러나 항상 자신의 언어가 본뜻을 어그러뜨릴까 염려하여, 관중(關中)에 들어가 구마라집에게 해결해 주기를 청하였다.여산(廬山)의 석혜원(釋慧遠)은 많은 경전들을 배워 꿰뚫었다. 석가 부처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펼치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불교계의 동량과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당시는 성인께서 가신 지가 아득히 멀고 오래되어, 의문스러운 내용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 구마라집에게 자문을 구한 내용이 「혜원전(慧遠傳)」에 보인다.龍光釋道生慧解入微玄搆文外每恐言舛入關請決廬山釋慧遠學貫群經棟梁遺化而時去聖久遠疑義莫決乃封以諮什語見遠傳과거에 사.. 2024. 12. 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