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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따르는 마음

그래도 남으로만 달린다-이용악(1914 함북 경성)

by 돛을 달고 간 배 200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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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해말쑥한 네 이마에

촌스런 시름이 피어 오르고

그래도

우리를 실은

차는 남으로 남으로만 달린다

촌과 나루와 거리를

벌판을 숲을 몇이나 지나왔음이냐

눈에 묻힌 이 고개엔

까마귀도 없나 보다

보리밭 없고

흐르는 뗏노래라곤

더욱 못 들을 곳을 향해

암팡스럽게 길떠난

너도 물새 나도 물새

나의 사람아 너는 울고 싶고나

말없이 쳐다보는 눈이

흐린 수정알처럼 외롭고

때로 입을 열어 시름에 젖는

너의 목소리 어선 없는 듯 가늘다

너는 차라리 밤을 부름이 좋다

창을 열고

거센 바람을 받아들임이 좋다

머릿속에서 참새 재잘거리는 듯

나는 고달프다 고달프다

너를 키운 두메산골에선

가라지의 소문이 뒤를 엮을 텐데

그래도

우리를 실은

차는 남으로 남으로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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