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중국에는 후한(後漢)명제(明帝) 왕위에 계셨는데, 명제의 꿈에 금으로 된 한 사람이 뜰에 날아오시니, 태사 부의(傅毅)가 사뢰되,
「주(周) 소왕(昭王) 시절에 인도에 부처님이 나시니, 그 키가 장육(丈六)이고, 〔장은 열자니, 장륙은 열여섯자다.〕금빛이시더니, 폐하께서 꾸신 꿈은 마땅히 그분이십니다.」〔폐하는 뜰 층계 아래니, 황제께는 바로 사뢰지 못하여 층계 아래서 사뢰는 것이다.〕
명제(明帝)는 중랑(中郞) 채암(蔡暗)과 박사(博士) 진경(秦景)등 열 여덟 사람을 서역에 부리시어 〔중랑과 박사는 벼슬이고, 역(域)은 나라이니, 부처님 나라가 중국에서 서 녘이므로 서역이라 하는 것이다.〕 불법(佛法)을 구하시더니 , 삼년만에 〔영평(永平) 육년 계해(癸亥)(63A·D다.〕 채암등이 천축국(天竺國) 이웃나라 월지국(月支國)에 다달아 〔천축은 인도나라다.〕 범승(梵僧) 섭마등(攝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승은 중이니, 범승은 깨끗한 도를 닦는 중이다.〕 불경과 불상과 사리를 백마에 싣고 나오니, 〔경(經)은 지름길이니, 경을 배워 부처 되기가 빠름이 마치 먼 길에 지름길 같으므로 경이라고 하니, 이 경은 사십 이 장경(章經)이다. 상은 같다는 말이니, 부처님 모양을 같으시게 그리거나 만들거나 하는 것이다. 사리는 실령한 뼈라는 말이니, 계정혜(戒定慧)를 닦아 나신 것이니, 가장 으뜸가는 복 밭이다. 백마는 흰 말이다.〕 만나서 함께 돌아오니, 이태째에야 〔영평(永平) 팔년 을축(乙丑)(65.A·D)이다.〕 서울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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