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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사- 유네스코 세계유산/통도사

영축총림 통도사-1 98/3

by 돛을 달고 간 배 2006.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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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은 1305년(충렬왕 31) 초창되었으나 중창은 알 수 없고 지금의 건물은 1770년(영조46) 두섬대사(斗暹大師)가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정면 3칸의 다포식 9포작으로, 맞배지붕에 겹처마인데 네 귀에는 활주를 세웠다. 일주문 정면에 걸린 현판글씨인 ‘영취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쓴 것으로 영취산의 장엄한 기상에 어울릴 만큼 매우 장중하다. 또한 두 기둥에 걸어둔 주련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즉, ‘부처님의 으뜸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 절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통도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종찰(佛寶宗刹)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황화각은 통도사의 스님들이 경(經)을 공부하는 강원건물로 천자각이라고도 한다. 초창은 1317년(충숙왕 4)에 이루어졌으며, 1647년(인조 27) 탄변화상(坦卞和尙)이 중건하고 1988년 성해화상(聖海和尙)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두 개의 건물을 합친 형식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해장보각(海藏寶閣)으로 통하는 문의 기능을 가진 건물이다.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높게 솟아 있어 솟을삼문이라 한다. 3칸 모두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건물형식은 조선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의 솟을삼문과 같다.









통도사 보광(普光)선원에는 현재 00명의 수행자들이 하안거 수행 중이다. 선원을 들어서는 문은 능견난사문(能見難思門). 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 이치에 몸으로 닿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다. 또 통도사 서운암 무위(無爲)선원에서는 00명의 수좌가,극락암 호국(護國)선원에서는00명의 수좌가 하안거 참선 수행 중이다. 호국선원은,금강경의 진리는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천이백오십인과 함께 계셨다'라는 첫 구절에 모두 다 들어있다,라고 설파했던 경봉 선사가 주석했던 곳.

영축총림에는 세 곳 선원에서 00명이 하안거 수행 중인데 물론 토굴 속에서 혼자서 수행하는 이들도 더 있다.



통도사 대광명전(시도유형문화재 94호)

영축산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사찰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지었다고 하며, 지금 남아있는 목조 건물들은 임진왜란(1592) 이후에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통도사는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가람배치가 되었는데, 서쪽부터 상로전·중로전·하로전으로 이어진다. 중로전의 중심 건물인 대광명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으로,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영조 1년(1725)에 수리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하며, 1968년에도 수리가 있었다.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부분이 약간 볼록한 배흘림의 둥근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를 배치하였는데,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둔 다포식 건물이다. 앞면 가운데칸 기둥머리에는 용의 머리를 조각하였고 내부에는 연꽃봉오리를 조각하여 장식하였는데, 이는 조선중기 이후의 특징적 수법이다.

중로전에 있는 3개의 전각 중 가장 크고 가장 뒤에 배치되어 있는 대광명전은 그 웅장함이나 위엄에 있어서 대웅전 다음으로 우수한 건물이다.



통도사의 세번째 문으로 해탈문이라고도 불리는 불이문은 고려 충렬왕 31년(1305)에 처음 지은 후,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모든 것이 평등하고 차별이 없음을 불이(不二)라 하며, 불이문은 이러한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상징하는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짜임새가 있고 견실한 건물이다.

문에 걸려있는 ‘원종제1대가람’이라고 쓴 현판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사찰 중 하나로 경내는 크게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의 3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영산전은 하로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좌우에 극락보전과 약사전이 배치되어 있다.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30년(1704) 송곡선사가 보수했다고 전해진다.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하여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으며 그 주변에 부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가 있다. 이것은 영조 51년(1775)에 그려졌는데 당시의 불화화풍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그림이다. 또한 영조 10년(1734)에 그려진 벽화도 있는데 그 중 18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이는 ‘법화경 견보탑풍변상도’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으로 기교가 특이하고 우수한 작품이다.

통도사 영산전은 당시의 불화화풍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벽화와 팔상도를 가진 소중한 문화재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응진전과 바로 이웃하고 있다. 이 건물은 상노전의 법당을 관리하는 노전(爐殿) 스님들이 거처하는 공간이다.



통도사 동종(보물11-6)

조선 숙종 12년(1686)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유일하게 8괘(八卦) 문양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큰 종으로 형태미가 뛰어날 뿐 아니라, 종 몸통에 있는 사각형의 유곽안에 9개의 돌기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종은 중앙에 단 한 개의 돌기만 새겨 둔 것으로 그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통도사는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지은 것으로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다.

하로전으로 들어가는 이 문은 고려 충숙왕 6년(1337)에 취암대사가 세웠다. 지금 있는 건물은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건물 좌우에는 동서남북을 다스리며 불법과 절을 보호하는 사천왕이 모셔져 있다.

문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아무런 장식 없이 네모난 나무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건물규모에 비해 작다.

통도사 사천왕문은 건물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말에 속하는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慈藏) 율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조사당(祖師堂)이다. 건물은 앞쪽에 툇간을 달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내부 앞쪽에 내진 기둥이 배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창건주 자장 율사의 진영과 함께 고려대장경 1ㆍ2ㆍ3ㆍ4권이 봉안되어 있다. 해장보각이라는 전각이름은 경전이 용궁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인도 고대의 전설을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또한 대장경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와 같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도 지닌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1369년(공민왕 18)에 건립하였다. 이후 1725년(영조 1)에 청성대사(淸性大師)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특징은 세부장식에 용무늬를 많이 썼다는 점과, 내부 공포가 5출목 형식으로 천장높이까지 짜여져 11포의 화려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부 벽면에 7폭의 대형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모두 경전에 등장되는 교훈적인 내용이나 법요(法要)의 장면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 이후에 출현한다는 약 2미터나 되는 거대한 미륵불좌상을 봉안하였다.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되어 있다.




통도사 국장생석표(통도사의 사찰 영역을 표시) 보물 47호

통도사를 중심으로 사방 12곳에 세워놓은 장생표의 하나로, 절의 동남쪽 약 4㎞지점에 거친 자연석면 그대로 서있다. 이 절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이며, 국장생이라는 명칭은 나라의 명에 의해 건립된 장생이라는 의미이다.

장생은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 등의 구실을 하고 있어 풍수지리설과 함께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장생은 경계표와 보호의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선종 2년(1085)에 제작된 것으로, 나라의 통첩을 받아 세웠다는 글이 이두문이 섞인 금석문으로 새겨져 있어 국가와 사찰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영축산(靈鷲山) 통도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귀국하여 대국통(大國統)이 된 뒤, 646년(선덕왕 15) 왕명에 따라 창건한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고 불사리와 부처의 가사 한 벌을 가져와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 모시고, 보름마다 이곳에서 설법을 하여 계율종(戒律宗)의 근본도량으로 삼았다고 한다. 절 이름 ‘통도(通度)’에는 이 절이 자리한 산이 석가모니불의 설법지인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과 함께,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통도사 일주문에는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 쓰여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으뜸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 절’이라는 뜻으로, 통도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종찰(佛寶宗刹)임을 알려주고 있다. 즉 불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믿음의 대상으로 불(佛)ㆍ법(法)ㆍ승(僧) 삼보(三寶)는 각기 부처와 불법과 승려를 가리키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삼보를 각기 상징하는 대표적 사찰로서 삼보사찰(三寶寺刹)이 있다.

부처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을 모신 합천 해인사(海印寺)는 법보사찰(法寶寺刹)이고, 보조국사(普照國師)를 기점으로 16명의 국사(國師)를 배출한 승주 송광사(松廣寺)가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면, 부처의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는 불보사찰(佛寶寺刹)로서의 사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써 곧 부처님을 나타내고 있다. 금강과 같이 단단하고 보배로운 규범이란 뜻의 금강계단은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최상의 성지(聖地)로서, 가운데에 종 모양의 석조물을 설치하여 불사리를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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