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35살의 폴 칼라니티는 스탠포드 의과대학원의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를 목전에 둔 신경외과의 의사이다. 갑작스레 알게 된 폐암 징후를
망연지실하던 폴은 그 남은 삶을 환자의 모습으로 충실하게 보냈겠다고 생각한다.
🦜🦜수 없이 본 챠트가 내것이라니, 서른 다섯의 나이에 폐암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나는CT 정밀검사 결과를 획획 넘겼다. 진
단은 명확했다.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고 있었다. 척추는 변형되었고 간엽 전체가 없어졌다. 암이 넓게 전이되어 있었다.나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로서 마지막 해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난 6년 동안 이런 정밀검사 결과를 수없이 검토했다. 혹시나 환자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이번 검사 결과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사진은 내 것이었다. 나는 수술복에 흰 가운을 걸치고 방사선실에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환자복을 입고 링거 대에 매인 채 간호사가 내 병실에 남겨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옆에는 내과의사인 아내 루시가 있었다. 나는 다시 검사 결과를 넘겨봤다.
폐, 뼈. 간을 내가 배웠던 대로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앞에서 뒤로 살폈다. 진단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루시와 나는 병원 침대에 함께 누웠다.
루시는 마치 대본이라도 읽듯 조용히 물었다. "진단이 바뀔 가능성이 있을까?"
"아니."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마치 젊은 연인들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부부는 지난 한 해 동안 내 몸 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지 않나 의심하면서도 그것을 사실로 믿거나 심지어 입 밖에 내는 것조차 피해왔다.
🦜🦜폴의 어릴 적 희망은 의사가 아니었다. 의사의 힘듦을 아버지를 통해서 너무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하지만 그도 결국은 의학도의 길을 걷게 된다.
내가 아는 의학이란 부재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
면 아버지의 부재.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돌아와 식은 음식을 데워 먹었다. 내가 열 살 때.
아버지는 우리(열네 살, 열 살, 여덮 살짜리 남자 꼬맹이들)를 데리고 맨해튼 북쪽의 오밀조밀하고 풍족한 동네인 뉴욕 주브롱크스빌에서 애리조나 주 킹맨으로 이사했다. 킹맨은 두 개의 산맥에 둘러싸인 사막의 계곡 도시였고, 외지 사람들은 대개 다른 도시로 가다가 기름이나 넣으러 들리는 곳 정
도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의 태양이나 저렴한 생활비(아들들을 전부 원하는 대학에 보내려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아니면 심장병 전문의로 개업할 수 있는 기회에 이끌렸을 것이다.
🦜🦜 인생의 순간적 진로에 대한 생각의 무게는 몸도 편하고, 돈도 많이 버는 쪽으로 쏠릴 것이다.
의과 대학원 4학년이 되자 많은 동기들이 방사선과나 피부과 같은 덜 고된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어리둥절해서 다른 유명 의과 대학원의 경우는 어떤지 알아봤더니 별로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근무 일정이 좀 더 여유롭고 연봉은 더 높고 스트레스는 덜
한, '느긋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전공 분야로 눈을 돌렸다.
입학 논술에서 그들이 내세웠던 이상주의는 물러지거나 아예 사라졌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예일 대학의 전통에 따라 우리는 졸업식 선서를 작성했다. 히포크라테스, 마이모니데스, 오슬러를 비롯해 위대한 의학계 선조들의 격언들을 섞어셔 썼는데, 일부 학생들이 의사보다 환자의 이익을 중시
하자는 표현을 빼자고 주장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이 논의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 표현은 결국 끝까지 남았다. 나는 이런 자기중심주의가 의학의 본질에 상반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주장에 합리적인 면도 있다고 보았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생과 사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가. 그 판단의 기준과 방법은 어떻게 고민할 것인가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불완전한 생존 상태는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 되어 대개는 시설로 보내진다. 감정적인 정리를 아직 하지 못한 가족이 환자를 찾아오는 발길은 점점 뜸해지고 환자는 결국 치명적인 욕창이나 폐렴에 걸리고 만다. 환자가 언젠가 눈을 뜨지 않겠냐며 연명치료를 고집하는 가족도 있지만, 많은 환자들이 그렇지 않기에, 아니 그렇게 될 수 없기에 신경외과의는 선고를 내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배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길 수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째째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한 수 있지 않을까?
🦜🦜힘든 레지던트의 일과가 너무 쉽게 그의 병을 악화시킨게 아니었을까? 하루의 일과는 어떻게 빠른 솜씨로 일을 끝내느냐에 달려있다.
레지던트 기간에는 하루는 길지만 한 해는 짧다는 말이 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일과는 보통 새벽 6시에 시작해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니까 수술실에서 얼마나 손이 빠른가에 따라 근무 시간이 결정되는것이다.
레지던트의 수술 기량을 판단하는 기준은 기술과 속도다. 엉성하거나 느려서는 안 된다. 첫 상처 봉합부터 정확하게 하려고 많은 시간을 잡아먹으면 스크럽 테크"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 성형외과 선생님이 계신 모양이네요!"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선생님 전략을 알겠네요. 상처 앞 부분을 다 꿰매는 동안 나머지는 저절로 낫게 하려는 거군요! 두 배로 효율적으로 일하시네, 정말 영리하신데요!" 최고참 레지던트는 후배에게 이렇게 조언할 것이다. "지금은 빨리 하는 법을 배우도목 해.,잘하는 법은 나중에 배우면 되니까." 수술실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시계로 향해 있다.
우선은 환자를 위해서다. 마취 시간 안에 수술을 끝내야 한다
🦜🦜죽어가는, 죽어야 하는, 누구나 예정 된 죽음이라도, 계속 나아갈 수 없지만 그래도 나아 갈거야.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음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믜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I'1l go on)."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너무도 쉽게 가버린 하루. 시간은 천금인데
허용된 양은 얼마만큼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암이 재발하게 될 테고, 그러다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알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처올 것이다. 이런 자각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가장 명백한 반응
은 정신없이 움직이려는 충동일 것이다. 즉, 여행도 하고, 근사한 식사도 하고, 여태껏 접어둔 많은 소망을 성취하면서 '삶을 만끽하는' 것이다. 하지만 암은 무자비하게도 시간뿐만 아니라 기력까지 빼앗아버려 하루에 할수 있는 일의 양이 크게줄었다. 마치 경주하다가 지친 토끼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설사 기력이 있더라도 나는 거북이의 방식이 더마음에 든다.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고 깊이 명상하는 방식 말이다. 물론 그냥 어떻게든 버티는 날들도 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팽창한다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시간은 수축될까? 분명 그렇다. 내가 보내는 하루는 엄청나게 짧아졌다.
오늘과 내일을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폴은 행복하게 간 걸거야.
시간이 허용했더라 좀 더 유용하고 멋진. 지식을 남겨 둘 수도 잏었겧지만 이만 해도 만족해. 우리 남편 사랑했어요 라고 루시는 속삭인다.
한 시간 뒤, 마스크가 제거되고 모니터가 치워졌다. 이젠 모르핀이 정맥 주사를 통해 폴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꾸준하지만 얕게 호흡했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르핀이 더 필요한지 물었고, 폭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시어머니가 병상 가까이에 앉아 있었고, 시아버지는 폴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렇게 폴은 의식을 잃었다.
아홉 시간 넘게 우리 가족(줄의 부모님. 형제들, 동생의 아내, 팔, 그리고 나)은 그의 곁을 지켰다. 의식을 잃은 폴은 눈꺼풀을 닫은 채 드물게 숨을 쉬였다.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폴의 긴 손가락은 내 손가락에 부드럽게 놓여 있었다. 시부모님은 케이디를 어른 다음, 손녀가 기분
좋게 누워서 젖을 먹고 잠들 수 있도록 다시 침대에 뉘었다.
사랑으로 가득한 병실은 지난 세월 우리가 함께 보낸 휴일이나 주말과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정말 용감한 팔라틴(내가 그를 부르는 애칭)"이야." 그리고 나는 그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서 우리가 지난 몇 달 동안 함께 지은 시를 나지막하게 읊었다.그 시의 핵심은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였다.
반응형
'독서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독서후기 (2026-24)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人間失格)" (10) | 2026.02.08 |
|---|---|
| 독서후기(2026-23) 정추위 지음 아주 느린 작별 (19) | 2026.02.05 |
| 독서후기(2026-2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황가한 옮김) (18) | 2026.02.01 |
| 독서후기 (2026-20) 만해 한용운 시선 님의 침묵 간행 100주년 님의 침묵 다시 읽기 (23) | 2026.01.30 |
| 독서후기(2026-19) 문성실 장편소설 신비소설 무巫12 구원의 날 (27) | 2026.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