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짧은 단편 위주의 소설이지만, 작품속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교훈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마음을 휘적시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지적하는 그 내용들이 쉽게 읽히면서 깊게 생각케 하는 흔치 않은 작품입니다.
🍎🍎 덩굴풀과 멍청이, 민중에게 주는 사탕이 덩굴풀이라면 그 사탕을 먹으면 나약한 민중은 독재자의 하수인이 될 것이다. 제발 먹지마, 속지마.
울타리 옆에 연보랏빛 꽃, 덩굴풀, 어린아이들의 젖니 사이에
긴 초록빛 열매.
할아버지는 그 덩굴풀을 먹으면 멍청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먹으면 안 돼. 너도 멍청이가 되고 싶지는 않지.
딱정벌레가 내 귓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딱정벌레가 더 깊이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귀에 에틸알코올을 들어부었다. 나는 울었다. 머릿속이 윙윙거리고 열이 올랐다.마당이 통째로 빙글빙글 돌고, 마당 한복판에 거인처럼 버티고 서 있던 할아버지도 같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렇게 해야 한단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딱정벌레가 머릿속으로 기어들어가 명청해진단다. 너도 멍청이가 되고 싶지는 않지.
🍎🍎 속담에 만리장성을 하룻밤에 쌓는다고 한다. 만리장성이 무너져도 그 사람은 내 남편.
내가 주검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기다리리.
이웃집 여자의 결혼생활은 겨우 사흘 만에 끝이 났다.
전시에 남편이 잠시 휴가나온 틈을 타서 올린
결혼식이었다. 남편은 곧 다시 전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러시아가 매서운 겨울을 몰고 왔고. 그후로 남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이 감감했다. 저녁마다 그 사람이 창문을 두드리길 기다렸어요. 이웃집 여자는 말한다.
아주 당연한 일을 말하듯 담담한 목소리다.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다.
이웃집 여자는 날씨. 이야기를 할 때도 그런 눈빛이다.
🍎🍎일상적인 신앙생활도 단순한 습관이상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어느 프랑스인 고백처럼
"신이시여 매년 크리마스가 오면 잊지 않고 교회를 찾는 저에게 왜 고난을 내리십니까?"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어떤 일들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남으로 참 의미를 느낄 때가 있다.
여자들은 네거리를 지나면서 성호를 세 번 긋는다. 한 번은 이마에. 또 한 번은 입에. 나머지 한 번은 가슴에 손가락을 댄다.
그리고 계단 네 개를 올라가면서 치맛단이 밟히지 않도록 치마 허리를 살짝 들어올린다. 치맛단은 치마에서 가장 무겁고 가장 폭이 넓고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거기에는 육중한 나무문과 두꺼운 맹벽이 있다. 아주 높이 달린 작은 창문들에는 유리가 알록달록하다. 성당에서도 거리에
서도 그런 색깔은 찾아볼 수 없다. 미사가 거리로 새어나가도 안되고. 거리가 성당 안으로 들어와도 안 된다. 빼걱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으면 육중한 나무문은 이미 닫힌 뒤이다. 오르간 연주가 성당 안을 떠돈다. 꿀벌처럼 윙윙거리며 머리 주위를 맴돈다..
🍎🍎진실한 것을 알 수 없다하여도, 석고는 석고일 뿐, 그것이 성모마리아가 될 수는 없다.
가식스런 삶에서 어찌 참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나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다. 성당에서는 하늘도 벽이다. 하늘은 하늘색이고 별들이 총총히 떠 있다.
나는 어떤 것이 저녁별이냐고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소리 죽여 나더러 멍청이라고 핀잔을 주고는 기도를 계속한다.
나는 성모마리아가 진짜 마리아가 아니라 석고로 만들어진 여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천사도 진짜 천사가 아니고 양도 진짜 양이 아니며 피도 단지 물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키가 후리후리한 레니의 기도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다. 레니는 진짜 레니다. 나는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의 얼굴이 아니라 할머니의 손을 바라본다.
할머니 손은 힘줄이 팽팽하다. 살은 한 점도없이 오로지 뼈와 마른 살가죽뿐이다. 그 손이 언제 죽어서 차갑게 군을지 알수 없다. 하지만 아직은 기도하며 움직인다. 묵주가 짤랑거린다.
🍎🍎그래,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애들한테 이야기하지. 하지만 어른들은 때로는 애들은 속일 수 있다고 믿지만, 애들은 알고 있지, 어른들의 가증스런 행위를.
아버지는 송아지의 발 하나가 여물통을 묶은 사슬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수의사에게 루마니아말로 설명했다. 그러다 장대 너머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설명하면서 송아지의 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표정만 보아서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없다. 나는 송아지 등을 쓰다듬는 아버지
의 손을 밀쳐내고 싶었다. 아버지의 손을 마당에 내던지고 발로 짓밟고 싶었다.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의 이를 빼버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거짓말쟁이였다.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 모두가 침묵을 지킴으로써 거짓말을 했다. 모두들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나는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 추한 얼굴들.
🍎🍎 어머니들은 치장을 한다.
한풀의 가식덩어리를 걸치고 나면 어디에서나 당당하다.
어머니들은 손을 놀려 집안일을 해치우면서, 머릿속으로는 자기 자신에게서 어디론가 도망칠 궁리만 한다. 하루 동안 자신에게서 벗어나 나무와 수건과 양철의 집안살림 속으로 도피한다.
그러다 정오 무렵, 앞치마와 덧옷의 끈을 풀어 바닥에 벗어놓는다.
그리고 옷장에서 검은 옷을 꺼낸다.
옷장으로 걸어가면서 자신의 벗은 몸을 보지 않으려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언제 어느 방에서 남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알몸은 그저 거울에만 비춰봐야 하고, 스타킹을 신을 때는 내 피부에 손이 닿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한다. 웃을 입고 있으면 사람이지만, 웃을 입고 있지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저 한 겹의 피부일 뿐이다.
어머니들은 울기 위해 신발에서부터 뱃한 두건의 술장식에 이르기까지 검은색 일색으로 차려입는다. 그러고는 주름에 둘러싸여 흔들흔들 걸어간다.
🍎🍎 전쟁은 모두의 고통이 되고, 회복할 시간마저 주지 않은 체 사라져가지. 하지만 기억의 메아리는 뇌벽을 울리는 천둥처럼 남겨지지.
사람들은 죽은 할아버지의 머리에 그 모자를 씌워주었다. 처음에는 관 뚜껑이 잘 닫히지 않아서 망치로 뚜껑을 두드렸다.
어머니의 다리와 내 다리가 한이불 아래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정맥류가 심한 어머니의 맨다리를 그려보았다. 한없이 많은 다리들이 나란히 들판에 놓여 있었다.
전쟁터에서는 항상 남자들만 쓰러진다. 나는 수많은 여자들이 전쟁터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옷이 벗겨지고 다리에 상처를 입은 채. 알몸으로 추위에 떨며 러시아에 쓰러져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의 다리는 상처투성이고 입술은 사료용 순무의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굶주려서 쭈글쭈글하고 창백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 지쳐 의식을 잃고 쓰러진 처녀의 모습을.
어머니는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깨어 있을 때는 어머니가 숨쉬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잘 때의 어머니는. 시베리아의 바람이 여전히 목구멍을 스치는 양 그르렁거렸다. 끔찍한 꿈을 꾸는 어머니 옆에서 나는 추위에 으스스 떨었다
🍎🍎뭘까? 개구리는 슬퍼서 우는 것일까, 울어서 슬픈 것일까, 누구나 다 슬픈 사연을 하나씩 지닌거지. 가는 곳이 달라도 지닌 슬픔은 가슴에 가슴에 남아 있지.
죽은 아버지의 새까만 폐 속에서, 그르렁거리는 할아버지의 뻣뻣한 기관지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의 굳어진 혈관에서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시끄럽게 울었다. 우리 마을의 모든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안에서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시끄럽게 울었다.
모두들 이곳으로 멀리 떠나오면서 개구리를 한마리씩 가져왔다.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후로 자기들이 독일인이라고 자랑하면서 자기들의 개구리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들이 말하길 거부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마을은 어디서나 끝이 있기 마련이다. 마을의 진짜 끝은 묘지이다.
이제 잠이 찾아왔다. 나는 커다란 잉크병에 빠진다. 그 안은 울창한 숲속처럼 어두웠다. 밖에서는 독일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시끄럽게 울었다.
어머니도 러시아에서 개구리 한 마리를 가져왔다.
어머니의 독일 개구리 소리가 나의 잠 깊숙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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