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인대사-2
이때 조사가 다시 가서 보고 지워 버리고는 온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었다. 칭찬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훌륭함을 인정하였다.
조사는 또 방앗간으로 가서 행자에게 물었다.
“수고하는구나. 행자야, 쌀이 익었느냐?”
행자가 대답했다.
“쌀이 익은 지는 오랩니다만 아직 아무도 까부르지 못했을 뿐입니다.”
조사가 말했다.
“3경이 되거든 오거라.”
행자가 대답을 하고, 3경이 되자 조사의 처소로 가니, 조사가 그의 이름을 혜능慧能으로 바꾸어 주고, 그날 바로 가사를 전하여 법의 신표信表로 삼게 하니, 마치 석가모니불께서 미륵에게 수기授記를 주시는 것과 같았다.
조사가 게송을 말했다.
유정이 와서 씨를 뿌리니
땅으로 인해 다시 열매가 난다.
무정無情이면 종자가 없고
성품이 없으면 남[生]도 없구나.
有情來下種
因地果還生
無情旣無種
無性亦無生
행자는 게송을 듣고 기뻐하면서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행하였다. 조사가 다시 말했다.
“내가 3년 뒤에는 열반에 들 것이다. 그대는 당분간 법을 펴지 말라. 그대에게 손상이 있을 것이다.”
행자가 여쭈었다.
“어디로 가야 환난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회懷를 만나면 멈추고, 회會를 만나면 숨어라.”회懷는 주州요, 회會는 현縣이다.
행자가 다시 물었다.
“이 가사는 계속 전하리까?”
조사가 대답했다.
“후대에는 도를 얻는 이가 항하의 모래 같으리라. 이제 이 신표信表의 옷은 그대에게서 멈추라. 왜냐하면 달마達摩 대사께서 이 옷을 전하신 뜻은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해서 신표로 삼으신 것이니, 법을 듣는 일이 어찌 옷에 달렸겠는가? 만일 이 옷을 계속 전하면 생명을 해치게 될까 걱정이다. 이 옷을 받은 이는 목숨이 한낱 실 끝에 매달린 것 같을 것이다. 더구나 달마 대사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한 꽃에 다섯 잎이 퍼져 열매가 저절로 맺으리라’ 하셨으니, 이는 이 땅에서 그대까지가 다섯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인가하신 말씀이다. 또 반야다라般若多羅께서 말씀하시기를 ‘열매가 가득하니 보리가 원만하고, 꽃이 피니 세계가 일어난다’ 하셨으니, 이 두 구절도 역시 지금의 법의法衣가 그대에게 이르러서는 남에게 전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가하신 것이니라.”
행자가 분부를 받들고 곧 조사를 하직하니, 조사가 곧장 강가로 가서 조그마한 나룻배에 올라 손수 노를 잡았다. 행자가 말했다.
“제가 노를 잡겠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대는 날 귀찮게 하지 마라. 내가 만일 버티지 못하면 내가 그대에게 부탁하면 되고, 그대가 만일 버티지 못하면 그대가 나에게 부탁하면 된다.”
강을 다 건너고서 행자에게 말했다.
“잘 가거라.”
행자는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조사는 절로 돌아와 사흘이 지나도록 설법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대중이 물었다.
“스승의 법을 누가 전해 받았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나의 법은 이미 영남嶺南으로 떠났다.”
신수神秀가 물었다.
“누가 법을 얻었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능能이란 자가 얻었다.”
대중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보니, 행자가 보이지 않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
‘아마도 그가 법을 전해 받아 갔을 것이다.’
그때 7백 명 대중이 함께 노 행자의 뒤를 쫓았는데, 대중 가운데 혜명慧明이라는 한 스님이 맨 먼저 대유령大庾嶺까지 쫓아갔다. 가서 보니, 의발은 있는데 행자는 보이지 않았다. 혜명 상좌가 가까이 가서 손으로 의발을 들려 하였으나 의발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자기의 힘이 부족함을 깨닫고 바로 산으로 들어가서 행자를 찾아다녔는데, 높은 곳에서 멀리 행자가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행자 역시 멀리서 혜명 상좌를 보고, 이내 자기의 의발을 빼앗으러 온 줄을 알고 말했다.
“화상께서 지금 나에게 의발을 주셨는데, 내가 굳이 사양했으나 두세 번 거듭 받으라 하시기에 받지 않을 수 없어서 가지고 오기는 했으나 지금 저 고갯마루에 있으니, 상좌가 원한다면 가져가시오.”
혜명 상좌가 말했다.
“의발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다만 불법을 위해 왔습니다. 행자께서 5조를 하직할 때 5조께서 어떤 밀어密語나 밀의密意가 있으셨는지요?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행자가 상좌의 마음이 간절함을 보고 곧 그에게 말했다.
“생각을 차분하게 하고 사념을 가라앉혀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 바로 그렇게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 나에게 명 상좌의 본래의 면목을 돌려주시오.”
혜명 상좌가 다시 물었다.
“밀어와 밀의가 위에서 말씀하신 그것뿐입니까, 아니면 그 밖에 다른 뜻이 있습니까?”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분명하게 말했으니 비밀이 아니다. 만일 그대가 자기의 면목을 스스로 얻으면 비밀은 도리어 그대에게 있느니라.”
상좌가 행자에게 물었다.
“황매黃梅 화상의 회상에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행자가 대답했다.
“화상께서 내가 신수神秀 상좌의 게송에 대답한 것을 보시고서 내가 문 안에 들었음을 아셨고, 그래서 곧 혜능惠能이라 인가하시되 ‘신수神秀는 문 밖에 있으나 너는 문 안에 들어와 앉아서 옷을 입었다. 후일 스스로 알게 되겠지만 이 의발은 예전부터 반드시 적합한 사람을 만나야 전하는 것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전하니, 너는 반드시 힘써 노력하되 앞으로 10여 년은 이 교법을 펴지 말라.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 그때가 지난 뒤에 어리석은 사람들을 잘 교화하라’ 하셨느니라. 내가 다시 묻기를 ‘어디로 가야 그 난리를 피하겠습니까?’ 하니, 대답하시되 ‘회懷를 만나면 멈추고, 회會를 만나면 숨어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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