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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시간

아일랜드 쌍둥이/ 홍숙영 장편소설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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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숙영
이화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제2대학에서 언론학 석사학위와 커뮤니케이션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장에서 기자와 PD로 일하고 대학에서 미 디어 연구자와 교수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작가 활동을 계속해왔다.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을 받았고, 이후 <소설문학>에 단편소설 푸른 잠자리의 환영을 발표했다. 진실을 담은 이야기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올라운드 스토리텔러'로 평가 받는다. "아일랜드 쌍둥이"는 구상부터 집필까지 7년 만에 완성한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목차
가짜 쌍둥이 13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19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해지는 기억들 35
아름답고 찬란한 착각 47
미술치료 워크숍 59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74
창고 세일 90
드림캐처 97
어둠의 시간을 나는 새 108
깊고 아득한 바닥 133
끊어내지 못할 인연 138
지나간 사랑의 흔적 166
두려움을 재단하는 법 191
진정한 이별의 시간 207
아직도 뭔가 남아 있다 215
저마다의 별 233
생의 힘찬 신호들 242
작가의 말 252

🌐🌐 들어가며
아일랜드 쌍둥이는 같은 해에 태어난 형제자매를 일컫는 말로써 은근히 비꼬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바닥까지 추락한 세 사람이 미술치료라는 걸 통하여 심리의 내부를 정화하여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 세 사람의 상처
💥존
존은 제이와 같은 해 태어났다. 제이는 1월, 존은 12월에 태어나 일명 아일랜드 쌍둥이라 빗대어 말하곤 한다.
형은 병명도 모르는 질병을 앓으며 죽어 갔고, 형을 사랑한 라사는 그와 교제를 허락했으나 결국은 떠나 갔으며, 존은 해군에 입대했으나 피폭 현장에서 가슴에 상처만 입은 체 돌아온다.

💥수희
그녀의 부모가 사업에 실패를 하고 그녀는 어떡해서라도 집에 도움이 되고자 영어 교사가 되지만 그의 동생이 군대에 복무 중 지뢰를 밟아 죽음에 이르러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한다.

💥에바
에바는 모계유전으로 손가락이 열 두 개다. 그의 엄마는 태어난 직후 그녀의 손가락 두 개의 제거 수술을 하고 생활하지만 언제나 두 개의 손가락은 그녀에게 마음의 상처다.

🌐🌐2. 미술 세러피

💥존과 제이 그리고 코스모스호
아직껏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이상 징후가 있으면 언제라도 방문하십시오. 여태 아무런 병에도 걸리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의 한숨이라도 쉬어야 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방사능 피폭의
증상이나 치료법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발병해도 인과 관계를 따질 만큼 충분한 데이터가 없을뿐더러 피해자와 가족들이 천형이라 여겨 쉬쉬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떤 가해자도 책임지지 않으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피해자들만 마냥 기다리며 흔들리는 삶을 살아간다.

💥체리나무는 작은 씨앗에서 발아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별 모양의 하얀 꽃을 피우고, 마침내 검붉은 체리를 맺으며 무결한 자신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체리나무와는 달리 누구도 온전하게 자신이 될 수 없다. 완성되지 못한 채 그저 시간을 보내며 계곡에서 방황하다가 끝을 맺는다. 재이는 재이가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고, 나 역시 나 자신이 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색함을 무릅쓰고 리사의 손을 따라 단단한 배를 쓰다듬었다. 별안간 생명의 세찬 발길질이 손바닥을 쳤다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여인으로 리사가 성장하는 동안 나는 뒷걸음질만 쳤다.


💥수희와 상우

사고가 난 이후 바다를 볼 수 없었어요. 사고의 충격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일 년 정도 실어증으로 고생하셨죠. 상우가 지뢰 수색 작업을 하고, 폭발이 일어나고, 피를 잃어버리는 마지막 순간에도 바다는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지켜봤을 테죠. 상우의 마지막 호흡을 목격한 저 바다를 생각하면 숨이 잘 쉬 어지 지 않았어요. 어떤 때는 물을 마시다가도 호흡곤란이 왔죠. 투명하고 푸른 동그라미는 내게 두려움의 근원이에요. 그때부터 호수
도, 강도, 바다도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었어요.


💥에바와 손가락

이 손가락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원래 내 손에 붙어 있었던 거예요. 나는 어머니 쪽의 우성인자인 다지증을 안고 태어났는데 아기일 때 박로 수술해서 제거했대요. 그렇지만 이것이 본래 내 모습인걸요. 신체 일부를 잘라낸 건 이 사회가 나를 정상으로 발 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만, 마치 어딘가를 도려 내는 것 같은 통증과 공허가 계속 따라다니는 느낌이 들어요.



🌐🌐3. 서로 간 교제

💥어떤 때는 삶의 고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살점과 함께 영촌 마저 소진되더라도 숯과 연기로 나를 그을리고 싶은 간절함이 일기도 했다. 그렇지만 수희와 마주 앉아 바비큐를 먹는 순간에는 생의 기운이 회복되었고, 그녀와 오래도록 이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바비큐를 맛본 수희는 감탄사를 쏟아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고 싶은 마음 반, 안 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한편으로는 수희와 시간을 보내며 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으나, 동시에 수희가 나에 관해 아는 것이 두려웠다. 한국 사람의 잣대를 사용한다면 나를 좋지 않게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주저하는 나를 보고 수희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믿어봐요. 나의 모든 능력을 발휘해 볼게요. 배운 것을 실험해 봐야죠. 같이 할 거면 이 손을 잡아요. 수희는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미술치료 워크숍은 서서히 내 안의 무언가를 깨우고 있는 듯했다. 형식적으로 오가던 상담과는 달리 내가 가두어놓은 시간의 빗장을 열게 했는데, 그것이 좋은 일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헤이즈 교수, 에바, 수희와 팀이 된 지금, 마치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출구를 찾는 미로 게임 같기도 해서 아직은 이 워크숍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는 이들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연기하며 살아가다가도 남실바람처럼 사소한 흔들림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곤 한다. 그러나 바닥의 껍질은 질기고 두터워 더 이상 내려갈 수 없
도록 해준다. 그러니 맨바닥이라는 사실이 어쩌면 위안이 될 수도 있다.




🌐🌐4. 맺음말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공포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무시하거나 멀리 하려고 하죠. 동서양의 철학자나 종교가는  죽음이 우리 삶의 목표이자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내는 삶이라는 여정의 종착지가 곧 죽음이라고 본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살아가지만, 그건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태어나서 죽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죽음이란 허무나 좌절이 아니라 단단하게 지금의 일들을 연결하여 매듭을 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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