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2)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법사가 세운 절이다.
이 절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은 지은 시기를 알 수 없고 다만 숙종 3년(1677)과 1932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대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태이다. 가운데칸 뒷부분에는 불단을 마련하여 삼존불상을 모셔 놓았다.
건물의 형식이나 세부 기법이 전형적인 19세기 불전 형식을 보여 준다.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2)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법사가 세운 절이다.
이 절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은 지은 시기를 알 수 없고 다만 숙종 3년(1677)과 1932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대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태이다. 가운데칸 뒷부분에는 불단을 마련하여 삼존불상을 모셔 놓았다.
건물의 형식이나 세부 기법이 전형적인 19세기 불전 형식을 보여 준다.
이 비는(보물252호) 이수(이首)가 없고 비신(碑身)의 상단(上端) 양끝을 귀접이한 규수형(圭首形)을 하고 있다.
귀부(龜跌)와 대석(臺石)은 한 개의 돌로 되어 있고 귀두(龜頭)는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용두화(龍頭化)된 것이며, 귀갑(龜甲)은 6각형의 갑문(甲紋)내에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겼고 비좌(碑座)는 단엽(單葉) 44개의 연판(蓮瓣)을 장식하고 그 위에 비신(碑身)을 얹었다. 비신의 상단에는 '원진국사비명(圓眞國師碑銘)'이라고 전자체(篆字體)로 횡서(橫書)하였으며 비문(碑文)은 "고려국보경사주지대선사증시(高麗國寶鏡寺住持大禪師贈諡) 원진국사비명병서(圓眞國師碑銘병序)"로 시작되고 있다. 특히 비석의 둘레에는 당초문양(唐草紋樣)의 독특한 장식법을 쓰고 있고 또한 고려(高麗) 중기(中期) 이후부터 나타나는 비석의 상단 양끝을 귀접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와 유사한 비석은 보광사 중창비(重創碑), 억정사 대지국사비 등에서 볼 수 있다. 원진국사는 고려 중기의 고승(高僧)으로 속성(俗姓)은 신씨(申氏)이며 이름은 휘(諱)이고 13세 때 계(戒)를 받았으며 51세 때 입적(入寂)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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