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으며,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에 비겨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南嵩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금오란 이름은 아도화상이 이곳을 지나다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 곧 태양 속에 산다는 금오(金烏)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산이라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밖에도 이 고장 사람들의 금오산에 거는 기대와 애정을 보여 주는 얘기가 많다.
선산에서 보면 붓끝같이 보이는 금오산의 ‘필봉(筆峰)’ 덕에 선산에는 문장과 학문으로 이름난 사람이 많이 난다고 한다. 칠곡 인동에서 이 산을 보면 귀인이 관을 쓴 것 같아서 ‘귀봉(貴峰)’이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큰 부자와 높은 벼슬아치가 흔한 까닭이 이 때문이라는 게 이곳 사람의 자랑이다. 금릉 개령에서 보면 도적이 짐을 지고 내려오는 상이라 하여 ‘적봉(賊峰)’이라 하는데, 이 때문에 이곳에서 큰 도적이나 민란이 자주 일어났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성주지방에서는 이 산이 음탕한 여인의 모습 같다고 하여 ‘음봉(陰峰)’이라 부르며 성주 기생이 이름난 것도 이러한 산세 탓이라 여긴다. 더욱이 고려시대 문종은 자신의 넷째아들을 출가시켜 이 산에서 수도하게 하였고, 훗날 대각국사로 봉하여 호국불교로 포교와 국정의 자문에 임하도록 했으니 바로 천태종의 개조인 의천이다. 이쯤되면 금오산에 대한 이곳사람들의 애정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처럼 영남 사람들이 사랑하는 금오산 중턱에 구름도 쉬어가는 해운사가 있다. 해운사는 대혈사(大穴寺)라는 이름으로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사되었다가 복원된 지 70여 년밖에 되지 않는 탓에 고찰의 기운은 느낄 수 없어 아쉽다. 그러나 지금도 해운사 바로 위에서 구미시를 향해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도선굴과 약사암, 마애보살입상 등 금오산에 산재되어 있는 불교유적지들을 비추어 볼 때 그 깊은 불사(佛史)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도선굴이 “깊이 31척, 넓이가 3척 3촌, 높이 15척으로 세상에 전하기로 도선국사가 수행하던 곳”이라고 적혀있다. 도선굴에서 또 한 사람이 도를 터득했으니 바로 금오산인(金烏山人)으로 불리는 길재 야은이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고향인 선산군 해평면 금오산으로 숨어들어 훗날 영남학파의 주춧돌이 되었다.
도선과 의상, 의천이라는 불교계의 고승들과 길재라는 위대한 유학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중들까지 품어주고 키워낸 금오산이 있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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