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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전남의 사찰

조계산 송광사-국사전의 의미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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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전경/국가유산 포털

조계산에 있는 송광사는 우리나라 3보 사찰(통도사/불보)(해인사/법보) (송광사/승보) 중 하나로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절을 언제 세웠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고 신라 말기에 체징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보물
순천 송광사 하사당 (順天 松廣寺 下舍堂)
Hasadang Dormitory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도의선사가 처음 세웠지만 대부분의 건물이 허물어져 고려 중기 보조국사가 제자들에게 당부하여 다시 지었다. 지금의 절은 조선 광해군 14년(1622)에 다시 고쳐 세운 것이다.

그중 스님들이 생활하던 하사당은 대웅전 뒤 한층 높은 곳에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왼쪽 2칸이 툇마루를 갖춘 온돌방이고 오른쪽 1칸은 부엌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장식을 겸하는 간결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부엌 지붕 위로 네모 구멍을 내고 조그만 환기구를 만들었는데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다.

부엌 위의 환기구


조계문

보물
순천 송광사 조계문 (順天 松廣寺 曹溪門)

「순천 송광사 조계문」은 건립연대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802년(순조 2) 중창되었으며, 1842년(헌종 8) 큰 화재로 송광사 서북부의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조계문은 살아남았다는 ‘조계산송광사사고(曹溪山松廣寺史庫)’ 등을 통해, 1802년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1886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순천조계산송광사사적’에 포함된 송광사 배치도에서도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정면에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라는 현판이 세로로 쓰여 걸렸으며, 내부에는 ‘승보종찰조계총림’이라는 현판이 가로로 길게 걸려있다. 또 조계문의 ‘사중창기(四重創記)’ 등에는 조계문(曹溪門)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순천 송광사 조계문」은 정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 지붕이다. 맞배지붕 측면에 풍판은 하단을 직선형으로 처리하여 측면 공포가 잘 드러나게 했으며, 공포는 정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2개 공포를 올린 다포식 공포 구조이다. 주 기둥의 양쪽과 앞뒤로 창방 모서리 네 곳에 팔각형의 보조기둥을 세웠다. 주 기둥 안쪽 상단에 용두를 두었는데 조선 후기에 자주 보이는 장엄이다. 기둥 양쪽에 토석담장과 연결된다거나, 보조기둥을 둔 점, 기둥 안쪽에 용두조각을 장엄한 점, 일주문 전면 계단 소맷돌에 동물상을 두었다는 점 등은 지역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 풍판 : 맞배지붕의 양 측면에 비바람을 막기 위해 판재를 이어 붙여 만든 부분


순천 송광사 우화각과 삼청교

순천 송광사 극락교

송광사 입구에 있는 세월각과 척추각이다.

이는 죽은 이의 위패가 사찰에 들어오기 전에
남자의 혼은 척추각에서
여자의 혼은 세월각에서
세상에서 묻은 번뇌의 때를 씻어 버린다고 한다.



보물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順天 松廣寺塑 造四天王像)
Clay Four Guardian Kings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순천송광사소조사천왕상은 흙으로 조성한 것으로 송광사 천왕문의 좌우에 2구씩 모두 4구가 안치되어 있다. 사천왕상의 배열은 천왕문의 향 우측으로 비파를 든 북방 다문천왕과 검(劍)을 든 동방 지국천왕이, 향 좌측으로는 당(幢)을 든 서방 광목천왕과 용·여의주를 든 남방 증장천왕이 각각 시계방향으로 북→동→남→서방의 순서로 안치되어 있다.

네 상 모두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로 전형적인 분노형 얼굴에 머리에는 용(龍) · 봉(鳳) · 화(花) · 운문(雲紋)이 장식된 관을 쓰고 갑옷을 입은 무인상(武人像)이며 각기 오른발은 악귀를 밟고 있는데 비해 왼 발은 악귀들이 받쳐 든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얼굴 모습은 표정이 분노형으로 강한 인상이기는 하나 볼륨감이 뛰어나 입체적인 면이 돋보일 뿐 아니라 다소 해학적인 면도 나타난다.

대형의 상임에도 불구하고 신체 각 부의 비례가 어긋나지 않고 적당하며 부피감과 함께 사실적 기법이 돋보인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장흥 보림사 사천왕상(16세기 초반)과 완주 송광사 사천왕상(1649)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서방 광목천왕상의 지물 중 보탑 대신 새끼호랑이가 등장하는 등 새로운 도상을 보여주어 학술적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크다 하겠다.

송광사 사천왕상은 조선시대 1628년(인조 6)에 다시 만들었다(重造)는 묵서명과 송광사사고(松廣寺史庫) · 사지(寺誌) 등의 자료가 남아있어, 정유재란으로 훼손된 상을 1628년에 다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
동방 지국천왕상

보물
순천 송광사 약사전 (順天 松廣寺 藥師殿)
Yaksajeon Hall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조계산에 있는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절을 언제 세웠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약사전은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인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으로서, 규모가 송광사에서 가장 작은 법당이다. 앞면·옆면이 모두 1칸으로 간결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현재 있는 우리나라 법당 중 가장 작은 이 약사전은 조각 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의 건물로 추정한다.



영산전

보물
순천 송광사 영산전 (順天 松廣寺 靈山殿)
Yeongsanjeon Hall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조계산에 있는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절을 언제 세웠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절의 기록에 이 건물은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웠고 영조 12년(1736)에 수리하였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73년에 보수한 것이다.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석가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가 있으며, 이외에도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담은 영산대회 그림도 볼 수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에 사용한 부재의 세부 기법이 힘차고 간결하여 조선 전기 건물의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좁은 자리에 아담한 규모로 세운 소박한 건물이다



국사전

국보
순천 송광사 국사전 (順天 松廣寺 國師殿)
Guksajeon Shrine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었고,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앞면 4칸·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순천 송광사 하사당(보물)과 같은 시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국사 진영

보물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順天 松廣寺 十六祖師眞影)
Portrait of Sixteen Patriarchs in Songgwangsa Temple, Suncheon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약한 16명의 고승들의 초상화이다. 원래 16폭이 지정되었으나 13폭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송광사에 3점만 소장되어 있다. 보조국사의 초상화는 가로 77.4㎝, 세로 134.8㎝로 16점 모두 규모나 제작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같은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보조국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7명이 중앙을 바라보며 있고 오른쪽에 8명이 중앙을 바라보며 있다. 보조국사는 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쥔 모습이다. 옷자락은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색의 농담으로 부드럽고 안정된 느낌을 보여준다.

정조 4년(1780)에 안치된 이 초상화들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의 기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세 보조국사 지눌
2세 진감국사 혜심
3세 청진국사 몽여
4세 진명국사 혼원
5세 원오국사 천영
6세 원감국사 충지
7세 자정국사 일인
8세 자각국사 도영
9세 담당국사
10세 혜감국사 만항
11세 자원국사
12세 혜각국사 묘구
13세 각진국사 복구
14세 정혜국사 복암
15. 홍진국사
16. 고봉국사 법장


불감

국보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順天 松廣寺 木造三尊佛龕)
Portable Shrine of Wooden Buddha Triad at Songgwangsa Temple, Suncheon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보조국사 지눌이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불감은 모두 3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의 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방이 문짝처럼 달려 있다. 문을 닫으면 윗부분이 둥근 팔각기둥 모양이 되는데, 전체 높이는 13㎝이고, 문을 열었을 때 너비 17㎝가 되는 작은 크기이다.

가운데 큰 방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쪽의 작은 방에는 각각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은 양 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2줄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었고,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왼손에는 물건을 들고 있다. 오른쪽 방에는 실천을 통해 자비를 나타낸다는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는데, 코끼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 있다. 보살의 왼쪽에는 동자상이, 오른쪽에는 사자상이 서 있다. 왼쪽 방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문수보살은 사자가 새겨져 있는 대좌 위에 서 있으며, 보살의 좌우에는 동자상이 1구씩 서 있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매우 작으면서도 세부묘사가 정확하고 정교하여 우수한 조각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세부의 장식과 얼굴 표현 등에서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듯 이국적인 면이 보이며, 불감의 양식이나 구조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불감류 가운데 매우 희귀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화엄경 변상도/경전의 광경을 그림으로 바꾼.

국보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順天 松廣寺 華嚴經變相圖)
Buddhist Painting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Illustration of the Avatamsaka Sutra)

화엄경』의 7처 9회(七處九會)의 설법내용을 그린 변상도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그림이다.

이 화엄탱은 기본구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구도상 상·하단 모두 법회장면이 거의 대칭을 이루며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랫부분에는 제1회 ‘보리도량회’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보광명전에서 열린 제7회·제2회·제8회가 자리하였으며, 오른쪽에는 제9회 ‘서다림회’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윗부분에는 아래로부터 위로 진행되면서 오른쪽에 제3회 ‘도리천궁회’와 제4회 ‘야마천궁회’를, 왼쪽에 제5회 ‘도솔천궁회’와 제6회 ‘타화자재천궁회’를 배치시켜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계획적이고 짜임새 있는 구도와 더불어 황토색 바탕에 홍색과 녹색 및 금색을 사용하고, 각 회주인 보살형 노사나불의 영락에 고분법을 활용하여 장식함으로써 화면이 밝고 화려해지는 18세기 불화의 경향을 살필 수 있다.

한편 그림 아랫부분에는 보현보살이 대중들에게 비로자나불의 정토인 연화장세계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화엄경』39품 중의「화장세계품」내용을 도해한 ‘연화장세계도’가 그려져 있어 주목된다.

그림에 대한 내력을 적어 놓은 기록에 의하면, 조선 영조 46년(1770)에 화련을 비롯한 12명의 승려화가들이 무등산 안심사에서 조성하여 송광사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불화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화엄경변상도 중 조성시기가 가장 빠름은 물론, 『화엄경』의 7처 9회 설법내용을 매우 충실하게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기준작이라는데 사료적 가치가 있다.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


국보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 (順天 松廣寺 靈山會上圖 및 八相圖)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는 송광사 영산전에 봉안하기 위해 일괄로 제작한 불화로 영산회상도 1폭과 팔상도 8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산회상도 화기에 ‘영산회상(靈山會上)’과 같은 화제나 후불벽 봉안을 의미하는 ‘후불도(後佛圖)’ 대신 ‘팔상회(八相繪)’라는 용어를 사용해 해당 영산회상도가 팔상도의 주불화로 일괄 제작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의 생애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8개의 주제로 표현한 불화로, 팔상의 개념은 불교문화권에서 공유되었지만 이를 구성하는 각 주제와 도상, 표현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팔상도는 『월인석보(月印釋譜)』의 변상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초기부터 ①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②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③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④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⑤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⑥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⑦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⑧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이란 팔상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월인석보(月印釋譜)』의 변상도를 차용한 팔상도가 제작되다가 후기에 접어들면서 『석 씨원류응화사적』이 유통되면서 이를 차용한 도상으로 구성된 새로운 형식의 팔상도가 유행하였다.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순천 송광사 팔상도이며, 화기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25년(조선 영조 1)이라는 제작 연대와 의겸(義謙) 등 제작 화승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송광사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는 단일 전각에 영산회상도와 팔상도를 한 세트로 일시에 조성해 봉안한 사례로는 현재 가장 이른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석가의 일생을 불화로 시각화했던 조선시대의 독자적인 신앙 형태를 온전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팔상도만이 아니라 영산회상도까지 『석 씨원류응화사적』의 도상을 활용하여 하나의 개념 속에 제작된 일괄 불화로서 완전함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 후기 영산회상도의 다양성과 팔상도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수화승 의겸의 지휘 하에 영산회상도를 중심으로 팔상도 각 폭이 통일된 필선과 색채로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수많은 화제로 구성된 팔상의 인물들은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전각, 소나무, 구름 등을 이용해 공간성만이 아니라 사건에 따른 시공간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등 구성과 표현에 있어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순천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16나한상 일괄 (順天 松廣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塑造十六羅漢像 一括)
Wooden Sakyamuni Buddha Triad and Clay Sixteen Arhats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송광사 응진당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하여, 아난·가섭존자 그리고 16나한, 제석천, 범천, 인왕, 사자를 모두를 갖춘 27구의 상들이 봉안되어 있다. 미륵보살입상을 제외한 26구의 상들은 17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응원(應元)을 비롯한 조각승들이 조성한 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자상(使者像) 대좌의 명문을 통해서 1624년(인조 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존상은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로 구성된 수기삼존형식으로 조선시대 삼세불상의 대표적인 도상이다. 본존상은 수종사 불감에서 발견된 15세기 금동불좌상과 같은 조선전기의 조각전통을 계승하면서 얼굴표정이 온화하고 신체가 부드럽고 양감이 강조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17세기 전반기 조각으로서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십육나한상들은 목심소조(木心塑造)로 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고려와 조선전기의 16나한상 조각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이 송광사 16나한상들은 16존이 모두 갖춰져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목조관음보살좌상


보물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順天 松廣寺 木造觀音菩薩坐像 및 腹藏遺物)
Wooden Seat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송광사 관음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복장되어 있던 저고리와 별도의 백색비단에 적은 발원문을 통해 1662년 궁중나인(宮中內人) 노예성(盧禮成)이 경안군(慶安君) 내외의 수명장원(壽命長遠)을 위해 발원하고, 경안군 내외와 나인 노예성, 박씨, 당대의 고승(高僧) 취미수초(翠微守初) 등이 시주하여 17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慧熙)와 금문(金文)이 조각하여 조성한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발원문을 통해 경안군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던 나인 노예성이 경안군의 수명장원을 위해 발원 조성한 관음보살상이라는 데 그 역사적 의미가 크며, 특히 경안군의 것으로 추정되는 쪽빛 저고리 안쪽 면에 적힌 발원문은 당시 정세의 일 단면을 읽을 수 있는 함축적인 메시지가 담겨있어 이 상의 사료적 가치를 더 해주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이 관음보살좌상은 1662년이라는 제작시기와 조성주체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인 대중적인 평담한 미의식이 농후하게 반영된 가운데, 이 시기 불상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조각적 완성도를 보인다. 한편 강인한 인상에서 오는 높은 정신성, 장엄이 강조된 독특한 착의형식, 역동적인 힘이 강조된 신체의 형태미 등은 조각승 혜희의 유파적 특징이여서 17세기 본격화된 조각유파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발견된 복장유물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으로 지정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다.

한편, 섬유류의 유물이 존속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기후․환경 조건 등을 고려한다면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 섬유류 유물은 복식사뿐만 아니라 직물, 염색, 민속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요령

보물
순천 송광사 금동요령 (順天 松廣寺 金銅搖鈴)
Gilt-bronze Handbell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요령(搖鈴)은 절에서 승려들이 의식을 행할때 흔들어 소리내는 도구로서 높이 20.6㎝, 지름 6.6㎝의 청동제이지만 도금한 흔적이 남아 있다.

몸은 4각형이고 각 면이 팽창되어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몸 위에는 마디가 하나있는 긴 손잡이가 있으며 몸과 접하는 곳은 후세에 보수한 흔적이 있고 손잡이 윗부분도 손상을 입었다. 손잡이 아랫부분은 둥글며, 큼지막한 꽃이 한 송이씩 아래를 향하고 있다.

몸 전체 각 면을 구분하는 모서리와 입구 주위에 굵은 돌출선을 돌리고 그 테두리 안에 몸을 꼬며 위로 치솟는 용 한 마리와 그 사이 공간에 구름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각각의 면에 있는 무늬는 하나의 틀에서 찍어낸 듯 하다. 입구 부분은 중앙에 반원형을 만들어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었다.

이 요령은 예로부터 송광사에 전해 내려온 귀중한 금속공예품으로서 우아한 형태와 아름다운 조각이 돋보이는,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요령 중에도 걸작에 속하는 동시에 가장 오랜 예로 평가된다.



경패

보물
순천 송광사 경패 (順天 松廣寺 經牌)
Sutra Plaques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경패는 원래 불경을 넣은 나무상자에 경전의 이름을 기록하여 달아서 사용하던 것이다. 송광사에 전해 내려오는 경패는 총 43개로 상아패 10점과 목제패 33점이다.

표면에 액(額)을 만들어 불경의 명칭과 번호를 새겼다. 가장자리에는 덩굴무늬, 학무늬 등 여러가지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뒷면에는 방형의 구획 안에 보살, 나한, 신장상 등을 돋음새김하였는데, 상의 위쪽에는 장막,격자창 등을 조각하기도 하였으며, 아래에는 연화대좌, 난간 등을 표현하였다.

여러 상들의 표현된 방형 구획 아래에는 정(貞), 주(周), 진(晉), 하(何) 등의 함호(函號)가 연꽃, 집 등의 모양 안에 새겨져있다.

측면(약 1㎝두께)에는 둥근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 중 세 개는 뚫어새긴 것이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되며, 조각의 정교함이나 그 수법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경질

보물
순천 송광사 경질 (順天 松廣寺 經帙)
Sutra Wrapper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두루마리 형태의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불교 공예품이다.

가느다란 대나무 조각을 색실로 엮어서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들고, 끝단에는 삼각형의 비단을 붙여 끈을 달아 경전을 말 수 있도록 하였다. 대나무는 색실로 엮어 꽃무늬를 넣었고, 사방에는 금강저문양이 표현된 비단을 두르고 뒷면에는 종이를 발랐다. 전체적으로 손상이 심한 편이지만 여러 가지 색실로 나타낸 문양은 아직도 정교하며 잘 남아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하는 유물로 그 가치가 높다.



복장전적

보물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順天松廣寺木造觀音菩薩坐像腹藏典籍)
Excavated Documents from the Wooden Seat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順天松廣寺木造觀音菩薩坐像腹藏典籍)”은 위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에 복장되어 있던 복장유물 중 중요 불교경전 8점이다.

이 경전 중 대방광불화엄경합론(大方廣佛華嚴經合論)은 이권생(李權生), 박문손(朴文孫), 유약(柳約)등이 판하본을 쓰고, 전라도 광주목(全羅道光州牧)으로 하여금 판각, 간행하게 한 간경도감본 교장(敎藏)이다. 재조대장경은 해인사대장경(팔만대장경)의 15세기경의 인본(印本)으로 희귀한 자료이므로 복장유물 전체에서 독립하여 복장전적으로 별도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지정, 보존 관리하여야 한다고 평가되었다.




쌍향수

천연기념물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 (順天 松廣寺 天子庵 雙香樹(곱향나무))
Pair of Chinese Junipers at Cheonjaam Hermitage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에 분포하고 있다.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료로 쓰이거나 정원수, 공원수로 많이 심는 나무이다.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는 나이가 약 8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0m, 가슴높이 둘레 4.10m, 3.30m이다. 두 그루가 쌍으로 나란히 서 있고 줄기가 몹시 꼬인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한손으로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거나 한결같이 움직이며,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極樂)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는 앞에서 설명한 전설과 기이한 모습을 가진 오래된 나무로서 문화적·생물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순천송광사응진당 (順天松廣寺應眞堂

송광사의 응진당은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도 하며, 그 안에는 16나한상과 16나한도가 모셔져 있다. 조계산에 있는 송광사는 고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로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절을 언제 세웠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신라 말기에 체징이 세웠다고 전한다.

응진전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로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내부기둥을 세우지 않아 좁은 공간을 넓게 이용하려 하였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는데 불단 위에만 화려한 닫집을 마련하였다.

조선 연산군 10년(1504)에 처음 지어진 응진전은 1623년에 고쳐 지어진 후로 여러차례 보수를 하였으나 별다른 변화없이 처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축조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자료출처: 국가유산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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