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요즈음의 세상살이다.
차가 없으면 몇발자욱도 움직이기 싫고, 버튼 없이는 어느 하나 조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니, 어느 새 과학 기술의 큰 울타리에 갇힌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때 일수록 손길에서 벗어 난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자주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위적이란 말도 결국엔 자연스러움으로 귀착되겠지만, 범인의 안목에선 그래도 손이 덜 탄걸 자연스럽다 하니, 그 생각을 여전히 집착하게 된다.
법정스님 집필하신 "무소유"에서 한 편의 수필을 읽으면서 자연스러움을 느께본다.
<복원 불국사>
한낮의 기온에는 아랑곳없이 초가을의 입김이 서서히 번지고 있는 요즈음.
이런 아침 우물가에 가면 성급한 낙엽들이 흥건히 누워 있다. 가지 끝에 서성거리는 안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져 버린 것인가.
밤 숲을 스쳐가는 소나기 소리를 잠결에 자주 듣는다.
여름날에 못 다한 열정을 쏟는 모양이다. 비에 씻긴 하늘이 저렇듯 높아졌다. 이제는 두껍고 칙칙하기만 하던 여름철 구름이 아니다.
묵은 병이 불쑥 도지려고 한다. 훨훨 털어 버리고 나서고 싶은 충동이, 어디에도 매인 데 없이 자유로워지고 싶은 그 날개가 펼쳐지려 한다.
이렇게 해서 엊그제 다녀온 곳이 불국사.
새로 복원되었다는 불국사다.
가을이면 불쑥불쑥 찾아 나서는 경주, 신라 천 년의 꿈이 서린 서라벌. 초행길에도 낯이 설지 않은 그러한 고장이 경주다.
어디를 가나 정겨운 모습들. 이제는 주춧돌마저 묻혀 가는 황룡사, 그 터만 보아도, 그리고 안산인 남산과 좌우로 연해 있는 그 능선만 보아도 마음이 느긋해지고 은은한 향수 같은 걸 호흡할 수 있는 고장이 또한 경주다.
어디나 옛 도읍지에 가면 느끼게 되듯이 경주도 어딘지 텅 빈 것 같은, 뭔가 덜 채워져 아쉬운, 그래서 배 떠난 나루 같은 그런 분위기가 마음을 끈다.
그 중에도 불국사는 허전하고 안타까운 신라 천 년의 잔영을 한아름 지닌 가람이다.
난간이 떨어져 나간 청운교, 백운교의 그 유연한 곡선, 단청빛은 바랬어도 장중한 자하문, 날듯이 깃을 올린 범영루, 그리고 앞뜰에서 자하문 좌우로 올려다보이는 석가탑과 다보탑의 공간.....
이런 것들이 우리들에게 천 년의 세월을 성큼 뛰어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억들을 온전히 과거완료형.
복원된 불국사는 그 같은 회고조의 감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득 들어 찼기 때문에 기댈 만한 여백이 없어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방에 둘러쳐진 회랑이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가로 막는다. 그리고 현란한 단청빛이 1973년에 직립 해 있는 오늘의 우리를 의식하게 한다.
불국사는 지난 4년간에 걸쳐 많은 인력과 재력으로 말짱하게 복원해 놓았다.
돌 한 덩이, 서까래 하나까지도 허투루 하지 않고 모두가 과학적인 고증에 의해 거의 원형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원형대로 복원했다고 하니 지난 천여 년의 허구한 세월이 도리어 무색할 지경이다.
관계 당국과 전문가들의 끈질긴 열과 성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서운해 하는 것은, 그렇다, 못내 안타깝고 서운해 하는 것은 이제껏 길들여진 그 불국사가 사라져 버린 일이다.
천 년 묵은 가람의 그 분위기가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복원된 불국사에서는 그윽한 풍경 소리 대신 씩씩하고 우렁찬 새마을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여기에서 스님께선 옛스럽고 맛깔난 그런 분위기를 잃어버림을 정말 아쉬워하고 있다.
누구나 그런 느낌을 조금씩은 가질테지만.. 나는 인위적이란 것도 자연의 일부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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