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마음 크게 내어 범어사엘
같다.
봄을 성큼 느끼기엔 이른 감이
군데 군데 녹지 않은 눈더미에서
전해온다.
한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도
갈 기회가 없었다.
몇시간씩 걸리는 곳은 자주 가면서....
어쩌면 가까운데 있는 귀중한 것들은
관심에서 소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解)와 행(行) 앎과 실천
지행일치....진정한 신앙인 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앎이 지혜이고 실천은 베품이다.
빈부와 귀천을 넘어서는 곳에서라야 다가온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허름한
단청 꽃과 동물의 모습 또한 예사롭지 않다.
범어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보물250호),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보제루의 금강계단에서 수 많은 이 들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생명처럼 계율을 지켜 나가길
맹세 하였겠지......
아 나도 저들 처럼 모든 이를
사랑하렸다.
팔상전(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부분으로 설명)과
나한전에서 옛 내음을 마음껏 즐겨본다.
염원과 염원으로 이어지는 탑
소망이 되과 희망이 되는 탑
자비와 지혜의 힘으로 나를 여기에 이끄노니....
범어사 안에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보통 금당이나 탑 앞에 두는데, 이 석등도 원래는 용화전(龍華殿) 앞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절내의 종루와 그 자리를 바꿔놓은 것이다.
석등은 3단의 받침 위에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형태로, 각 부재가 8각을 이루고 있다. 받침부분은 가운데기둥을 사이에 두어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아오르는 연꽃무늬를 새겨 대칭적으로 표현하였다. 화사석은 4면에 네모난 창을 두었는데 창의 가장자리마다 창문을 달았던 10개의 구멍흔적이 남아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고, 꼭대기에는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위로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후대에 보수한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빈약하고, 윗받침돌이 두터워서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범어사삼층석탑(보물 제250호)을 세운지 3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만들었다고 하나 양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9세기경인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붓 끝에 날리는 혼령 인 양
취모검 한 획에 마음 속 묵은 번뇌 마저
자른다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산문 중 첫 번째 문이다.
사바세계(고해)와 열반(행복)의 세계를 구분 짓는 곳으로서 찌들린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 나를 찿아
들어오는 첫 관문을 의미한다.
범어사의 일주문은일직선의 기둥 위에 맞배 지붕을 한 독특한 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 기둥양식은 일심(一心)
을 상징하며,세상의 괴로움을 모두 잊고 절에 들어서라는 암묵적인 의미이다. 범어사의 일주문은 네개의
곧바로 선 기둥과 맞배 지붕으로 구성되어있다.
세 개의 문 위에는 각각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가운데 '曹溪門(조계문)'이라는 작은 편액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 존자, 달마 대사, 육조 혜능 대사의 법맥을 이은 조계종 사찰임을 나타내고,
오른쪽의 '禪刹大本山(선찰대본산)'이라는 편액은 범어사가 선종의 으뜸 사찰임을 알려 주고 있으며,
왼쪽의 '金井山 梵魚寺(금정산 범어사)'라는 편액은 산명과 사명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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