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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기의 사찰

칠현산 칠장사-66

by 돛을 달고 간 배 2006.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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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스스로를 태우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남에게 나에게 무엇을 하였다는 생각마저

군더더기 일 것이니....



글씨에 넘치는 기백이 흐르고

그 기운 받으려 한번 또 쳐다 보네.



옛적 칠장사 나한전 나한님은 과거에 급제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필수 기도처란다.

지금도 효험이 있는지 발 길이 끊이지 않는다네.

칠장사 철당간



대웅전 앞 마당이 봄 기운을 느끼게 해 준다.


잘 쓰여진 현판 글씨마냥....열심히 공부를 하신 분 들도 많아겠지.



절 앞 뜰에서 씨앗을 뿌리고.....봄 나물도 캐고

 



귀중한 부처님 말씀은 백천억겁 인연이어도 과히 만나기 어려워라.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하였으며 17세에 융천사(融天寺)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

현재 비는 비받침인 귀부(龜趺)와 비몸돌·머릿돌이 각각 따로 놓여 있는 상태이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몸돌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씨에서는 고려인다운 뛰어난 풍모가 느껴진다.

문종 14년(1060)에 세워진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의 장수인 가토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어 베었다.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리니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다 한다. 현재 이 비의 몸돌이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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