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항산 의림사라고 쓰여진 알림석 아래로 위치한 계곡은 마산9경중의 하나인 의림사 계곡이다
함안의 주산인 여항산은 해발 770m의 비교적 높은 산으로 본래의 지명은 알 수 없으나 조선 선조16년 함주도호부사로 부임된 한강 정구가 풍수지리학적으로 남고북저한 함안의 지명을 배가 다니는 낮은 곳을 의미한다 하여 남쪽에 위치한 이 산을 배 여(艅) 배 항(航)자로 하여 여항산이라 전하고 있다.
대략 일곱군데의 등산코스로 이루어진 이 산은 연중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그 정상은 한 발자국 하늘이 낮아 보이고, 쾌청한 날이면 지리산이 저 멀리 안개 속에 떠있으며, 남해의 푸른 물결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이 밖에도 써릿발 같이 생겼다는 써리봉, 바위색이 붉다 하여 피바위 등 군데군데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6ㆍ25때 치열했던 격전지로 동족상잔의 비극적 선혈이 스민 곳 이기도하다.
.
의림사 3층 석탑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화강암으로 건조된 삼층석탑으로 신라 후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탑의 전체적인 형태는 2중 기단을 갖춘 3층 석탑이다. 탑은 2층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위·아래층 기단의 각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를 양각 하였고 탑신에는 우주만 새겼다. 탑신은 각층에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옥개받침은 5단이다. 상륜부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보주(寶珠:작은 공모양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는데, 보주는 후대에 끼워 넣은 것이다.
탑은 상·하층 기단 갑석과 각층의 옥개석들이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있으며 상륜부 노반만이 손상이 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 옥신과 옥개는 단일석이며 옥신에는 양 우주를 새겼고, 옥개에는 4단의 받침을 새겼다. 기단의 가운데 기둥이 2개씩 조성되던 전성기에 비해 1개로 줄어들고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아지는 모습이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탑으로 추정되며 전체 높이는 3.2m이다. 석탑 주변에는 석등의 하대석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모아져 있다.
1974년 요사 앞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우면서 일부 보수를 하였는데, 현재의 높이는 3m이다.
인곡리모과나무 시도기념물77호
모과나무는 본래 중국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과수, 또는 관상용으로 오래 전부터 심어온 나무이다. 꽃은 5월에 연한 홍색으로 피며, 열매는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9월에 황색으로 익는데 향기와 맛이 그윽하다.
창원 인곡리 모과나무의 나이는 약 250년이며, 높이 10m, 둘레 33m로 의림사 대웅전 앞 뜰에 자라고 있다. 나무 줄기가 근육 모양으로 울퉁불퉁하게 골이 패여 있는데, 오래된 모과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또한 작은 가지들이 불규칙하게 많이 나 있다.
인곡리 모과나무는 오래되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옛날부터 의림사를 찾는 많은 신도들의 신앙대상이 되고 있다.
염불당 아래 당간지주 바로 옆에 위치한 이 석등은 현재 방형 지대석, 한 돌에 새겨진 팔각형 하대석과 복련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그 위에 얹혀진 소형의 대석은 따로 한 석등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이는 별개의 것이다. 현재 이 석등은 간석에서 화사석에 이르는 부분이 결실된 불완전한 것이기는 하나 하대석의 상태는 양호하다. 하대의 양식과 규모로 보아 그 형태는 팔각주 간석형 석등으로 추정된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였던 양식적 특징을 잘 갖추고 있어 의림사 창건 당시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 된다.
의림사 부도전은 사찰에서 1.2km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주변은 한눈에 봐도 깔끔하게 단장되어 잔디를 심고 외광으로 보호처랙을 둘러쳤다. 원래 모두 3기의 부도가 있었으나 최근 1기가 새로 조성돼 현재 4기가 남아 있다.
첫 번째 만나는 부도는 호형(弧形: 활의 모양)으로 지붕에는 다섯 잎의 연봉과 14잎의 복련(伏蓮:연꽃을 엎어놓은 모양의 무늬)을 새겼다. 아래쪽에는 2중의 대석을 받쳤으나 원래의 것이 아닌 듯하다. 상대석은 8각형이고 하대석은 11잎의 앙련(仰蓮: 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 모양의 무늬)을 새겼다. 전체 높이는 약 122cm이다.
두 번째 부도는 상륜부 즉 뚜껑을 갖춘 석종형(石鐘形: 범종(梵鐘)모양)으로 높이 1.4m에서 1.7m 가량이며 첫번째 부도와 1m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부도는 특이하게도 옥개석 부분에 한유당(閒遊堂) 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어 납골된 주인공ㅇ이 누군지 알 수 있다. 상륜부는 지붕 형태이고, 꼭대기에는 연봉형의 석물을 따로 만들어 얹었다. 몸통은 호형이고 아래쪽에는 대석을 만들어 받쳤는데, 12cm 간격으로 너비 4,5cm의 정 자국을 새김질하였다. 전체 높이 153cm이다.
세 번째 부도는 뚜껑을 갖춘 북 모양이다. 상륜부는 지붕 형태이며 연봉과 상륜부를 단일석으로 표현하였다. 북 모양 몸통 아래에는 아래가 넓은 원통형과 방형(方形)의 대석(臺石)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상대석에는 복련을 간략화시켜 새겼고 지대석처럼 3단의 골을 두었다. 전체 높이는 125cm이다.
이상 3기의 부도는 호형과 고형으로 조선시대 부도 양식을 나타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의림사와 관련된 부도로 추정된다.
네 번째 부도는 최근 조성된 것으로 상륜부를 갖춘 석종형 부도이다.
염불당은(석탑 오른쪽)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한국전쟁 이후인 1960년대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에는 2004년 조성한 아미타불좌상과 1977년 조성한 후불탱, 지장탱, 신중탱 등이 봉안되어 있다.
염불당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천상천하무여불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 어디에도 부처님 같으신 분 안 계시고
시방세계역무비 十方世界亦無比 온 세상 둘러봐도 또한 비교될 분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 世間所油我盡見 이 세상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 一切無有如佛者 모두가 부처님 같이 귀한 분 없도다
나한전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염불당과 같은 시기인 한국전쟁 이후인 196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에는 석가모니삼존좌상과 후불탱, 1973년에 조성한 500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나한전은 수도하는 스님에 대한 신앙형태를 나타내는 사찰 당우의 하나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보통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아라한과를 얻은 성자들을 봉안한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이다.
나한전 기둥에는 4개의 주련이 걸려 있다.
외외덕상월륜만 巍巍德相月輪滿 높고 높은 덕스런 모습 보름달 같으시고
위도중생세현간 爲度衆生世現間 중생제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네
어삼계중작도사 於三界中作導師 삼계 가운데서 스승이 되시고
진묵겁전성정각 塵墨劫前成正覺 아득한 영겁전에 정각을 이루시네
마산시 진북면 인곡리 여항산 의림사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다 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당대의 흔적들이 몇몇 문화재에 의지한 채 묵묵한 자태로 남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라고찰 의림사 역시 허물어진 부도와 석탑의 부재에서 오는 고즈넉함이 천년의 숨결을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곳으로 경남 마산시 진북면에 위치해 있다.
경남 함안으로부터 흘러온 수려한 여항산 자락, 그 겹겹의 골짜기를 따라 정적 속에 앉아 있는 의림사는 전해지는 창건의 기록이나 설화는 비록 없으나 경내 대웅전 바로 앞 삼층석탑의 조성 양식이나 구전에 의해 삼국통일 직후인 신라 31대 신문왕 당시(68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1530년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림사란 사명이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여전히 법등을 밝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중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림사는 삼국통일 이후 빈번해진 왜구의 약탈 행위를 부처님의 크신 원력으로 물리치고자 창건되었으며 사명 또한 나라를 받든다는 뜻의‘봉국사(奉國寺)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이곳에 머물자 인근 각처에서 의병들이 숲처럼 많이 모여들었다고 해서 ‘의림사(義林寺)’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500명이나 되는 거대한 승군을 훈련시켜 동래성, 진주성 등으로 파견한 호국도량 호국성지로 기능을 다했음을 전하고 있다.
봄이면 한껏 흐드러진 벚나무 그늘이 가람을 드리우고 여름을 거쳐 늦가을까지 이름모를 야생화로 장관을 연출하는 이곳 의림사가 정작 유명해진 것은 다름아닌 한 그루의 모과나무 때문이다.
대웅전 뒤편 삼성각 아래 늠름한 기세를 하고 있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77호 의림사 모과나무는 수령이 250살이나 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무성한 열매를 자랑해 인근 마을 사람들과 참배객들에게 인기가 높을 뿐 아니라 드물게 잘 자란 생김새를 갖춘 탓에 대웅전 석가모니불 다음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이곳에 가면 모과나무 아래에서 경건히 합장하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심심챦게 볼 수 있는데 이 합장 배례가 삼성각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삼성각보다 훨씬 융융한 자태로 솟아오른 모과나무에 절을 올리는 것인지 착각을 들게 할 정도이니 이 또한 의림사를 찾는 이유라 할 수 있겠다.
[관람 포인트]
도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주변 초등학교 아이들의 소풍 장소로 안성맞춤인 의림사 경내로 들어서면 삼성각 앞에 늠름하게 서 있는 모과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예사롭지 않은 위용의 이 모과나무는 1985년 1월 경상남도 기념물 7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창원 인곡리 모과나무’로 대웅전 오른 편 언덕 삼성각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홀로 서 있는데, 키가 10m에 이르며 가지들이 15m 가까이 퍼져 나갈 정도로 위용을 자랑한다. 이쯤 되면 나라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과나무 가운데 가장 큰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뿌리가 솟구쳐 오른 땅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나뉜 모과나무 특유의 주황색 얼룩을 가진 줄기는 단단한 느낌을 주며 건강함을 보여준다.
줄기가 근육 모양으로 울퉁불퉁하게 골이 패어 있어 오래된 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이 모과나무는 의림사를 찾는 많은 신도들의 신앙대상이 되고 있어 주변으로 즐비한 작은 돌탑들을 볼 수 있다.
'우리절 순례 > 경남의 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학사-102 (4) | 2006.10.01 |
---|---|
보천사지삼층석탑-101 (0) | 2006.09.24 |
광려산 광산사-96 (0) | 2006.08.05 |
함안대산리석불-95 (6) | 2006.07.30 |
다시 찿은 관룡사-94 (3) | 2006.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