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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남의 사찰

다시 찿은 관룡사-94

by 돛을 달고 간 배 2006.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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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 가지 숲

활활 타오르는 가슴

한 잎으로도 족하리

세사에 시름한 지난 밤

청색 옷 곱게 차린

새색시 걸음이 가볍다.



다들............안녕들 하제



살아 가면서 굳건하게 바쳐주는 힘이

될 거야!



우리 사랑도 벌써 익어것제.....다정 하네요.

관룡사는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임진왜란 때 약사전만 남기고 다른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약사전(보물 146호)은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하며, 건물 안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1칸·옆면 1칸으로 매우 작은 불당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간결한 형태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이와 비슷한 구성을 가진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과 좋은 비교가 된다.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몇 안되는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로, 작은 규모에도 짜임새가 훌륭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반길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스럽다.



123123123123123123123123123123

뜻을 알려고 하지 말라.



들리는가 범종루의 식구들아

바같에는 너무도 선명한 자연의 음향이

들리어 옴을....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대웅전(보물 212호)은 원래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이하게 이 관룡사 대웅전엔 비로자나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1965년 8월 보수공사 때, 천장 부근에서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이 건물은 조선 태종 1년(1401)에 짓고,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 9년(1617)에 고쳐 세워, 이듬해에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가운데부분을 한층 높게 한 점이 특이하다.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였던 관룡사의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표현기법에 있어 절의 서쪽 계곡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는 큼직하게 표현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이마 위쪽으로 반달 모양이 표현되어 고려시대 불상의 머리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 있어야 할 3개의 주름은 가슴 윗부분에 표현되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얕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다. 겉옷 안에는 두 가닥의 접힌 옷자락이 역시 도식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른손은 왼발 위에, 왼손은 오른발 위에 놓여 있는 독특한 손모양이며 왼손 위에는 약그릇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 연속된 거북이 등모양으로 연꽃을 표현하고 있는 상대가 특이하다.

머리에 표현된 반달 모양과 형식화된 세부표현 기법 등에서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고려시대에 이 지방의 장인이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관룡사

관룡사는 통도사의 말사로 창녕의 화왕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용선대에는 이곳 지역민들이 토함산 석굴암 부처님에 비견될 만큼 신령스럽게 받드는 돌부처님이 산 아래 올망졸망한 사바세계를 바라보면 좌정해 있다. 화왕산의 한 능선이 남서쪽으로 내려오다가 불쑥 솟은 곳에 자리한 널찍한 바위 위, 그곳에 높은 대좌를 놓고 불상을 앉힌 것이다. 불상의 양식은 석굴암 본존에 못 미칠지 모르지만 현재 여러 보호장치에 의해 그 시선이 가려진 석굴암 본존을 생각해 본다면, 해 뜨는 동쪽을 향해 자비로운 미소로 중생을 맞이하는 용선대 불상의 안복(眼福)은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누군가 용선대는 그 모양이 마치 큰 바다를 가르는 배의 모습과 같다고 하며 반야용선(般若龍船)에 비유한 바 있다. 법화신앙에서는 대웅전을 지혜를 실어 나르는 배 또는 중생을 고통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 건너가게 해 주는 배로 비유하는데 이것이 곧 반야용선이요, 용선대가 바로 이 반야용선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용선대 부처님은 반야용선의 선장으로서 이곳 하늘과 땅의 무수한 존재들을 싣고 항해의 키질을 하면서 반야용선의 설법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 피안(彼岸)으로 가는 뱃길의 원(願) 자리에는 오늘도 기도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관룡사를 찾는 마음은 이 용선대에 이르러 한숨을 돌리며 가다듬어 세우는 원(願)으로 매듭짓게 된다.

용선대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295호)

 

관룡사 근처의 용선대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산 꼭대기 높은 바위 위에 모셔졌으며 광배(光背)는 없어진 상태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단아한 인상이며 미소를 띤 표정에서는 자비로운 불심(佛心)이 느껴진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몸에 밀착되었으며,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으로 처리되어 도식적인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신체의 양감이 줄어들고 약간 위축된 모습이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릎에 놓인 손은 두툼하지만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앉은 자세에서는 다소 둔중함이 느껴진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반구형(半球形)의 상대석은 연꽃을 새겼고, 8각 중대석은 각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두었으며, 하대석은 4각의 받침 위에 겹으로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양감이 줄어든 신체 표현, 도식적인 옷주름선, 8각 연꽃무늬 대좌의 형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9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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