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주(徐廷柱)
1915년 전북고창 출생. 아호 미당(未堂).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데뷔. 이후 시인부락(詩人部落)을
주재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
<화사집(花蛇集)>, <귀촉도(歸蜀塗)>
<신라초>, <동천(冬天) >, <질마재 신화>
등 작품다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등 역임. 2000년 사망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한국어의 미적 극치를 보여준 시인이자, 한국인의 원초적인 정서와 불교적 세계관을 가장 깊이 있게 다룬 작가입니다. 그의 시 세계는 단순히 아름다운 언어의 나열을 넘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인 '한(恨)'과 '생명력', 그리고 '영겁(永劫)'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미당의 여타 행적은 논외로 합니다.
🙏🙏석굴암 (石窟庵) 관세음 (觀世音)의 노래👉👉돌에 새겨진 차가운 불상에 '노래'라는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이는 무생물인 돌마저도 정령이 깃든 존재로 보았던 한국적 물아일체(物我一體)와 영원한 평화에 대한 갈구입니다.
석굴암 (石窟庵) 관세음 (觀世音)의 노래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조수(潮水)와 같은 그리움으로.
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
얼크러지는 칡넝쿨 밑에
푸른 숨결은 내 것 이로다.
세월이 아주 나를 못 쓰는 티끌로서
허공에, 허공에 돌리기까지는
부풀어 오르는 가슴 속에 파도 (波濤)와
이 사랑은 내 것이로다.
오고가는 바람 속에 지새는 나날이여.
땅 속에 파묻힌 찬란한 서라벌,
땅 속에 파묻힌 꽃 같은 남녀들이여.
오! 생겨났으면, 생겨났으면,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 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푸르른 날👉👉"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는 구절은 이 시의 백미입니다. 생명력이 너무나 뜨거워 스스로를 태우고 색을 바꾸는 과정, 즉 '그리움의 과잉'을 계절의 변화로 치환했습니다.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넘어가는 시각적 대비는 한국적 서정의 극치입니다.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맥 하 (麥夏)👉보리밭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초여름의 감각을 다룹니다. 이는 억눌린 생명력이 분출되는 원시적 건강함을 상징하며, 대지와 육체가 하나가 되는 토속적 에로티시즘을 담고 있습니다.
맥 하 (麥夏)
황토담 너머 돌개울이 타
죄(罪) 있을 듯 보리 누른 더위.
날카론 왜낫(鎌) 시렁 위에 걸어 놓고
오매는 몰래 어디로 갔나.
바윗속 산돼지 식식거리며
피 흘리고 간 두럭길 두럭길에
붉은 옷 입은 문둥이가 울어
땅에 누워서 배암 같은 계집은
땀 흘려 땀 흘려
어지러운 나-ㄹ 엎드리었다.
🦜🦜가시내👉가시내, 가시나, 가수내라는 호칭에서 느껴지는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정서는 문명화되지 않은 야생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도 잃지 않는 강렬한 구애의 몸짓이 돋보입니다.
가시내
눈물이 나서 눈물이 나서
머리감아 늘이어도 능금만 먹고파서
어쩌나.....하니 바람 울타리 한 달밤에
한 지붕 바가지꽃 허이옇게 피었네.
머언 나무 잎잎의 소쩍새며, 벌레며,
피리 소리며,
노루 우는 달빛에 기인 댕기를.
산(山) 봐도 산 보아도 눈물이 넘쳐 나는
연순(蓮順) 이는 어쩌나.....입술이 붉어 온다.
🌸🌸🌸고요👉👉모든 소란이 멈춘 상태, 즉 비어있음으로써 충만한 '공(空)'의 상태를 지향합니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명상적 정서와 닿아 있으며, 번뇌를 씻어낸 뒤의 정갈한 내면 풍경을 보여줍니다.
고 요
이 고요 속에.
눈물만 가지고 앉았던 이는
이 고요 다 보지 못하였네.
이 고요 속에
이슥한 삼경의 시름
지니고 누웠던 이도
이 고요 다 보지는 못하였네.
눈물,
이슥한 삼경의 시름,
그것들은
고요의 그늘에 깔리는
한날 혼곤한 꿈일 뿐,
이 꿈에서 아주 깨어난 이가
비로소
만 길 물 깊이의
벼락의
향기의
꽃 새벽의
옹달샘 속 금동아줄을
타고 올라오면서
임 마중 가는 만세 만세를
침묵으로 부르네
❤️❤️❤️보릿고개👉배고픔이라는 처절한 현실적 고난을 시적 공간으로 가져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슬픔에 머물지 않고, 그 척박한 시간을 견뎌낸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눈물겨운 정을 환기합니다.
보릿고개
사월 초파일 뻐꾹새 새로 울어
물든 청보리
깎인 수정 (水晶) 같이 마른
오슬한 비취의 그리메를 드리우더니
어느만큼 갔느냐, 굶주리어 간 아이.
오월 단오는
네 발바닥 빛깔로 보리는 익어
우리 가슴마다 그 까슬한 가시라기를 비비는데.
뻐꾹새 소리도 고추장 다 되어
창자에 배는데....
문드러진 손톱 발톱 끝까지
얼얼히 배는데...
🍑🍑🍑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맺힌 눈물을 포착합니다. 사찰(종교적 숭고)과 술집(세속적 애환)이 동구 밖에서 만나는 지점은, 슬픔을 노래(육자배기)로 풀어내는 한(恨)의 신명을 상징합니다.
선운사 (禪雲寺) 동구 (洞口)
선운사(禪雲寺)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디다.
🧚♂️🧚♂️🧚♂️연(蓮) 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이 시는 인연의 찰나성을 긍정합니다. 바람이 연꽃을 스치듯, 우리 삶의 만남과 이별도 자연스러운 섭리로 받아들입니다. "섭섭치 않게"라는 표현은 사사로운 집착을 버린 한국적 달관의 정서를 은은하게 보여줍니다.
연(蓮) 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ㅎ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의 시는 한국어의 가락(리듬)과 결(질감)을 통해 우리 민족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다음의 정서들을 결합합니다.
1.순응과 달관: 흐르는 물이나 바람처럼 인연을 받아들이는 태도.
2.색채의 역동성: 푸르름과 붉음, 초록과 단풍의 대비를 통한 생명력 표현.
3.한의 승화: 슬픔과 고난을 노래와 춤, 혹은 자연의 풍경으로 치환하는 미학의 특징을 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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