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9조. 혜가慧可 선사/선종禪宗2조
선사는 무뢰武牢 사람이며, 성은 희姬씨이다. 아버지 적寂은 당초 아들이 없어서 그 부인과 생각하기를 ‘우리는 지극히 선한 가문인데도 자식이 없으니 참으로 슬프구나. 어느 성현께서 굽어 보살펴 주시려나’ 했는데, 후위의 여섯째 왕인 효문제孝文帝 영의永宜 15년 정월 초하루 저녁에 광명이 온 집안에 두루 하는 상서가 나타난 뒤로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아 이름을 광광光光이라 하였다. 나이 15세에 9경經을 통달해 외웠고, 30세가 되자 용문龍門의 향산사香山寺로 가서 보정寶靜 선사를 섬기면서 항상 정定과 혜慧를 닦았다. 출가한 후에는 동경東京의 영화사永和寺로 가서 구족계를 받았고, 32세가 되자 다시 향산사로 돌아와서 스승을 섬겼는데, 다시 또 8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고요한 밤에 한 신인神人을 보았는데, 그가 광에게 말했다.
“과위를 받으려 하면서 어찌 여기에 머물러 있는가? 남쪽으로 가야 도道에 가까워지리라.”
본래의 이름은 광광인데, 신인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았으므로 신광神光이라 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 밤이 되자 갑자기 머리가 찢어지는 듯이 아파서 그 스승이 뜸을 뜨려 했는데,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이는 뼈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 예사 고통이 아니니라.”
스승이 곧 그만두었다. 마침내 전의 이상한 신을 본 사실을 스승인 보정에게 이야기하니, 보정이 말했다.
“반드시 상서祥瑞일 것이다. 네 정수리가 달라졌으니 옛날의 머리가 아니다. 5봉이 옥 수레에 내려앉은 듯 그 모습이 기이하구나.”
그리하여 스승을 하직하고 남쪽으로 갔다. 달마를 만나 상승上乘의 법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달마가 말했다.
“일진一眞의 법을 모두 가졌으니 잘 지키어 끊이지 않게 하라. 그대에게 신의(信衣:가사)를 전하나니 각기 표시하는 바가 있느니라.”
혜가가 말했다.
“무엇을 표시합니까?”
달마가 대답했다.
“안으로는 심인心印을 전하여 마음을 깨쳤음을 증명하고, 겉으로는 가사를 받아서 종지를 확정하나니 착오가 없기 위한 것이다. 내가 입적한 뒤 2백 년 동안 이 가사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법이 온 누리에 퍼질 것이니, 도에 밝은 이는 많아도 도를 행하는 이는 적을 것이며, 이치를 말하는 이는 많아도 진리를 통한 이는 적을 것이다. 그 뒤로는 도를 얻은 이가 천만 명에 가까울 것이다. 그대가 도를 펼 때에 늦게 배우기 시작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이 사람이 뜻을 돌리면 반드시 보리를 얻을 것이다. 초심初心 보살은 부처님의 공덕과 동등하리라.”
이때 혜가 대사가 법을 부촉 받고서널리 선전하고 유포하여 뭇 유정有情들을 제도하였다. 천평天平 연간에 이르러 후주後周의 제2주主인 효민왕孝閔王 기묘己卯 해에 한 거사가 나이와 계절을 말하지 않은 지 14년 만에 조사(혜가)에게 와서 절을 하고 성명도 밝히지 않은 채 말했다.
“제자는 풍병[風疾]을 앓고 있으니, 화상이시여, 제자를 참회하게 해주십시오.”
조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죄를 가지고 오면, 죄를 참회하게 해주리라.”
거사가 말했다.
“죄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내 지금 그대를 참회하게 하였다. 그대는 그저 불ㆍ법ㆍ승 삼보에 의지하기만 하라.”
거사가 다시 말했다.
“화상만 뵈면 승보임을 알겠으나 세간에서 어떤 것이 부처이며, 무엇을 법이라 합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마음이 부처요, 이 마음이 곧 법이니,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니라. 그대는 알겠는가?”
거사가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이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마음이 그렇듯이 법과 부처가 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조사는 그가 법기法器인 줄을 알고 곧 머리를 깎아 주면서 말했다.그대는 승보이니 승찬僧璨이라는 이름이 적합하구나.”
그리고 구족계를 받게 하고서 일러 말했다.
“여래께서 대법안을 가섭에게 주셨고, 그렇게 점차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하여 나에게 이르렀는데, 내가 이제 이 법안을 그대에게 주고 아울러 가사를 주어서 법의 신표로 삼노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본래 땅이 있었기에
그 땅을 인해 종자가 꽃을 피운다.
본래 종자가 없다면
꽃 또한 필 수 없다.
本來緣有地본래연유지
因地種花生인지종화생
本來無有種본래무유종
花亦不能生화역불능생
이 게송을 다 말하고는 승찬에게 말하였다.
“나는 업도鄴都로 가서 묵은 빚을 갚으리라.”
그리고는 훌쩍 업도로 떠나서 중생을 교화하기를 34년 동안 혹은 저잣거리 어디서나 인연에 따르고, 혹은 남의 심부름을 하되 일이 끝나면 곧 업도로 돌아가니, 지혜 있는 이들이 매양 권했다.
“화상은 덕이 높으신 분이시니 남의 심부름은 하지 마십시오.”
조사가 말했다.
“내 스스로 마음을 조복調伏시키기 위한 것이지 다른 일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오.”
이때 변화辯和 법사라는 이가 업도鄴都 관할에 있는 성城인 안현安縣의 광구사匡救寺에서 『열반경』을 강하고 있었는데, 그때 조사가 그 절에 이르러 설법하니, 조사가 설법하는 곳에는 모인 대중이 많았으나 법사의 강석에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자 변화 법사는 조사를 시기하여 현령인 적중간翟仲侃에게 가서 “사견邪見을 가진 저 사람이 나의 강석을 무너뜨렸습니다” 하고 모함하니, 적중간은 사실을 자세히 알지 못하여 도리에 맞지 않게 손상을 입혀 죽게 하였다. 자주磁州 도양현塗陽縣 동북쪽으로 70리쯤에 장사지내니, 세수 107세였다.
이렇게 멸도함을 보인 때는 수隋의 첫째 임금인 문제文帝의 개황開皇 13년 계축년癸丑年이었다.
당唐의 내공봉內供奉 사문인 법림法琳이 비문을 지었고, 덕종德宗 황제가 대홍大弘 선사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탑호를 대화大和라 하였다. 수隋의 계축癸丑에 입적하고 나서 지금 당唐의 보대保大 10년 임자壬子에 이르기까지 359년이 된다.
정수 선사가 찬탄하였다.
2대 조사인 큰 학자는
지조가 굳고 단단하였다.
마음은 3승乘을 꿰뚫고
이마는 오악보다 훌륭했다.
二祖碩學이조석학
操爲堅礭조위견학
心貫三乘심귀삼승
頂奇五嶽정기오악
천하에 하나뿐인 기린麒麟이요
인간 세상의 붕새로다.
팔을 끊고 눈 위에 섰으니
혼연히 하나 되어 외롭지 않다.
天上麒麟천상기린
人間鸑鷟인간악작
斷臂立雪단비입설
混而不獨혼이부독
출처 불교 문화 유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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