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의 시간

등대지기/조창인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5. 30.
반응형

조창인
조창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 하였다.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여러 해 동안 일했으며, 출 판 기획팀을 이끌며 생명력 있는 많은 책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뒤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그녀가 눈뜰 때>, <먼 훗날 느티나무>, <따뜻한 포옹> 을 발표했다. 이어 2000년, 부성애를 상징하는 가시고기에 빗대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린 소설 <가시고기>는 가시고기 신드롬' 이란 말이 붙을 만큼 수많은 독자들의 뜨 거운 사랑을 받았다 신작 <등대지기>는 오랜 시간 등대를 찾아다니며 고된 취재 끝에 완성한 작품으로, 외딴섬 등대지기의 외롭고 고단한 삶과, 일상 속에 감추어진 미움과 갈등, 화해의 과정을 담고 있다. 바다를 떠나 그윽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집으 로 작업실을 옮긴 그는, 앞으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깃든 따뜻함을 담백한 필체로 그려내길 희망하고 있다.

차례
제1장 갈매기
제2장 귀항 61
제3장 등탑 97
제4장 은행나무 159
제5장 어머니 204
제6장 등대지기 247
에필로그 304
작가 후기 310


🛶🛶 갈매기와 함께하는 일상은 어쩌면 좁은 등대를 벗어 난 자유로움을 찾고자 하는 구도의 길처럼 험난하다.

제1장 갈매기와 재우

망망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외딴섬
언덕 위에 하얀 등대.
영산 지방 해양수산청 구명도 항로표지관리소.
거기에 재우가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악수를 나눠야 하는 여느 세상 속의 삶은 분명 아니다. 어깨를 부대끼며 걸을 필요도 없고, 소리쳐 누군가를 부를 까 닭도 없으며, 사람을 가려 사귀어야 할 이유는 더더구나없다.
재우는 어느 순간부터 세상과의 거리를 애달퍼하지 않기로 했다.
🦜🦜🦜
애달픈 순간이 많았다.
가족사이든 연애사이든 혹은 개인의 일이든 간에 모두 다 파도소리에 묻히길 간절히 빈다.

갈매기가 어디서 날아오고 또 어디로 날아가는지 목격하지 못했다. 재우 뿐 아니라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새벽 갑자기 구명도 전체가 소란스러웠고, 갈매기들은 정수리 위에라도 둥지를 틀려는 양 등대지기를 에워싸으며, 또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한 마리의 갈매기도 보이지 않았다. 🦜🦜 갈매기와 등대지기는 오래된 친구다.
바람에 소식을 전해주고 파도에 먹이를 채어서 온다.


제2장 귀항

"어머니야 당연히 우리가 모셔야죠 그게 도리에 맞고요. 하지만 당장 형편이 여의치 못하니까, 도련님께 부탁드린다고 생각해주세요" 형수가 부탁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고, 형이 받았다. "이사람 말대로 부탁을하고있는거다. 정말부탁한다."  
🦜🦜
도대체 마음에 와닿는 말이 아니다.
외딴섬에 근무하는 나에게 어머니를 모시라니.

그날 밤도 등댓불은 어김없이 켜졌다. 그날 밤도 등명기는 12초 주기로 돌아가며 수평선 멀리까지 빛을 던졌다. 그날 밤도 등대장 정필곤 소장은 세상의 배들에게는 잘도 길잡이 노릇을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와 아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했다. 좌초된 배의 잔해가 구명도 10해리 밖에서 발견되었다. 정 소장의 쉰아홉번째 생일날이 다 저물 즈음이었다. 사흘간의 수색에도 실종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등대의 불빛은 20해리까지 도달한다. 그렇다면 정 소장의 아내와 아들은 좌초해가는 배에서 남편이, 아버지가 켜놓은 등댓불을 보았 을 것이다.
남편을,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을 것이다. 등대지기인 남편을, 아버지를 원망했으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깜박이는 불빛을 바라 보았겠지.
🦜🦜
구명도 항로표지관리소장인 정소장은
그의 생일을 맞아 가족의 상봉을 하려 했지만 타고 오던 배가 풍랑으로 침몰하고 타고 오던 가족들은 다 운명을 다한다
.

형수가 풀썩 바닥에 주저앉더니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사정합니다. 제발 저희한테 한 달만 여유를 줘요.
🦜🦜
치매는 가족간의 화합을 깨는 질병 중의 하나이다.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경우다.


제3장 등탑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어머니의 탐욕에 재우는 혀를 내불렸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동 물적 기능만이 남아 있었다. 어느 때는 정말로 치매일까 싶을 만큼 정신이 말짱하시기도 하다. 라고 형은 말했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말짱한 정신인 적은 없었다.
🦜🦜
어떤 때는 또롯이 정신이 말짱한 게 사실이다. 수십년 전에 일을 어찌 그리 선명하게 기억을 하시는지 깜짝 놀랄 정도이다.

"무엇이 그리 서러우세요?" 어머니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오빠!"
오빠라니.... 재우는 씁쓸히 웃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형의 이름 으로 착각해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였다. 어쨌든 망신살이 뻗친
셈이었다. "왜 이제 왔어, 오빠?"
"아이고 늦게 와서 그만 화가 나셨군요.' 한동안 머쓱해 하던 정 소장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였고, 울고 싶은 아이 뺨을 때린 격이었다. 어머니는 정 소장의 품에 뛰어들어 결사적 으로 울어댔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진정하세요.
🦜🦜
정소장은 미리 겪어 본 치매 환자 간호의 선배인 셈이다. 자신이 시범을 보인다. 재우에게. 엄마의 병이 아닌 엄마에게 다가 온 병이라고.

치매를 악화시키는 지름길은 환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자존심마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자존심이 더 강해졌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치매
환자도 자신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어느 정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일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치매는 급속도로 진행 된다.
🦜🦜
사과도 예쁘다고 하면 맛이 좋아진다는데 하물며 정신이 없지만 사람이지 않는가?


제4장 은행나무

"은행나무 사랑이라고 아니?" 문고 나서 난희는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더했다 '암수가 구분된 은행나무는 가장 가까이 있는 나무만을 사랑한대 저 멀리 아무리 근사한 상대가 있어도 오로지 곁에 있는 나무만을 짝 으로 삼는대. 추하든 부족하든 무조건: ...난 그런 사랑밖에 못할 운명이었나봐.
그 운명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니?
재우는 난희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난희와 재우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랐다. 난희는 재우에게 신호를 보내지만 재우는 확실한 대답을 보류한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난희는 딱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다른 식으 로 재우를 단념시키는 편이 옳았다.  우리 아빠랑 아줌마랑 보통 사이가 아닌 느낌이야. "무슨 말이야?" "나이 든 분들한테 사귄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그렇고, 하여튼 그래."
귀라는 건 왜 줄창 열려 있어서 모든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들어야 하는 것일까. 재우는 차라리 귀를 잘라낸 고흐이고 싶었다. "잘하면 아예 살림을 합칠 수도 있겠어. 아빠가 은근히 내 뜻을 묻더라고 나야 좋지.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 그렇잖니?"
🦜🦜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 거야, 그때는 단순히 두 분의 관계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친을 요양원 같은 곳에 간단히 보낼 수 있다면, 그런 마음가짐 이라면 이번 기회에 등대 생활도 정리하는 게 좋겠네. 등대는 가슴이 얼어붙은 사람한테는 어울리지 않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대를 어찌 차가운 마음으로 지켜낼 수 있겠는가."' 정 소장은 사무실을 나서려다 생각난 듯 덧붙였다. "자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네. 재주껏 자리를 비우고 나가보게."
🦜🦜
요즘은 요양원에 보내는 게 오히려 모든 가족을 안심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물론 간병비용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정소장은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려는 재우가 영 머뜩찮다.
그런 태풍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가. .등대지기에게 요행이란 있을 수 없다.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고 대 비해야 한다. 어떠한 일이 생겨도, 설사 목숨을 맞바꿔야 하는 경우라도 등댓불은 기필코 밝혀야 한다. 정 소장의 목소리를 마음속으로 들으며, 재우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유리창의 구멍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유리창의 구멍은 소설의 복선이겠지만, 예산타령, 안전불감증, 그까짓것 쯤으로 넘어 가버리는 관료들. 현장의 힘듦은 근무자의 몫이 된다.


제5장 어머니

"형 오라고 전화할까요? 그건 괜찮겠어요?" "응, 전화해." "알았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밥을 안 드시면 재우는 형한테 혼나요" "혼나?" "그럼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있다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재우는 지체없이 어머니 입에 밥을 떠넣었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보다 기분 좋은 일이 없다고 했던가. 재우는 한술한술 어머니 입에 밥을 떠넣으며 생각했다. 어머니도 예전에 이랬겠지. 재우가 기억하지 못할 뿐 투정부리는 둘째 아들을 어르고 달래 한 술씩 떠넣어 주었을 것이다.
🦜🦜
잠시 나의 아버님이 생각난다. 평생 어부였셨던 아버님은 칠순을 넘기면서 치매에 걸리셨다. 부산의 큰 형의 집에서 지내시던 때였는데, 머리에 수건을 하나 두르고 뱃 일 나간신다고 집을 나가셨다. 난감하게 형수님과 나는 온 종일 찾아 다녔지만 결국은 포기를 하였다. 다음날 형수님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버님을 발견하시고 내려서 모시고 돌아 오셨다. 아버님은 만 하루를 부산시내를 배회하신 거였다. 치매는 타인의 일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자는 누구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서라도 건강과 건전한 생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어머니가 소녀처럼 수품게 웃던 그 벤치, 아, 거기에 어머니는 앉아 있었다. 거기에 않아. 재우가 잠깐잠깐씩 손을 들어주던 공중전화 박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재우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면서 달렸다. 거푸 헛발을 딛 어넘어지고 무릎이 깨졌지만 달리고 또 달렸다.
"엄마."
어머니 아냐. 엄마야! 진작에 정정해주었음에도 단 한 차례도입 밖 에 내지 못했던 그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어머니가 반쯤 입을 벌린 채 재우를 바라보다 흑흑, 울음을 토해냈 다.
"왜 이제 왔어, 나쁜 놈!"
🦜🦜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던 재우는 잠시 물건을 고르던 그 순간에 어머니의 동선을 놓치고 만다. 찾아서 헤멩ㅓ도 어긋난 길로만 가는 시간의 흐름은 재우를 가슴을 아프게 한 후에야 어머니를 겨우 찾게 되고 도로 등대섬 구명도로 돌아간다.


제6장 등대지기

등실의 유리창 교체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재우는 등탑에 올라 유리창의 구멍을 바라볼 때마다 온몸을 프레스기에 집어넣고 옥죄는 듯한 느낌에 시달렸다. 단순한 불안감을 지 나쳐 불길한 예감마저 들게 했다. 수차례 손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손 과장은 매번 심드렁한 반응이었고, 기껏해야 예산 타령이었다.
🦜🦜
모든 걱정거리는 현실이 될 경우가 많다. 이미 현실이 되었을 땐 난감한 상황으로 바뀐다.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재우는 현실로 돌 아왔다. 그리고 한순간 뜨거운 불기둥이 자신을 관통해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괴롭혔던 불길한 예감의 정체와 비로소 맞닥뜨린 거였다 눈을 떴다. 동공을 하얀 천으로 가려놓은 듯 온통 흰 빛이었다. 손 가락을 들어보았다. 움직여졌다. 팔꿈치 아래까지는 힘겹긴 하지만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어깨는 수십 겹의 동아줄로 묶어 놓은 듯 꿈적하지 않았다. 허리 밑으로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
걱정이 현실이 된다. 특히나 작은 섬에서 겪는 태풍의 위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섬 전체를 들어서 가버릴 듯한 무서움은 언설로써 어찌 표현하겠나. 결국 유리창의 작은 구멍이 큰 문제를 제기하게 된 셈이다.
"아프지 마, 내가살려줄게." 어머니는 잠투정하는 아이를 어르듯 바닥에 누운 재우의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 이게 어머니의 사랑이구나. 이렇게 어머니는 날 사랑해왔구나 그걸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단 말인가. 왜, 죽음의 그림자가 빠르게 덮쳐오는 지금 이 순간에야 절감하고 있을까.
🦜🦜
아들과 어머니는 동시에 위험을 감지한다. 아들에게 위험을 느끼자 등탑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자신의 사랑으로 아들의 생명을 살린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도 자식은 사랑하는 아기에 불과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