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시무라 아키라
주도면밀한 취재와 현장 증언 사료를 기반으로 치밀하게 구성한 장편작품을 다채롭게 집필해온 세계적 소설가. 기록문학과 역사문학의 대가라 손꼽히며, 국내에는 이 책 <파선>을 통해 처음 소개되는 작가다.
1927년 일본 도쿄 닛포리에서 태어났으며 <파선>과 <가석방>이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1966년 <별에게의 여행으로 다자이오사무 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같 은 해 발표한 <전함무사시>로 기록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1973년 출간한 <관동대지진> 에서는 1923년 일본에서 조선인 6,000여 명이 일본 자경단에게 집단으로 살해당한 조선인 대학살을 다뤘다. 소설임에도 철저한 취재와 고증을 바탕으로, 감출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대학살의 전말을 상세히 드러내 큰 주목을 받으며 기쿠치간상을 수상했다. 2006년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생명 연장 장치를 떼어내는 존엄사를 택하며 생을 마감했다, 집필한 작품으로 <차가운 여름. 뜨거운 여름> <파옥 > <포츠머스의 깃발> 등이 있다.
옮긴이 송영경
일본 유학 시절, 원서로 된 책을 읽다가 번역의 매력에 눈을 떴다.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 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일어문학과 석사 과정을 이 수 중이다. 전자책 <우리는 그렇게 고요히 반짝였지>(공역)를 옮겼다.
🌐🌐 들어가는 말
가끔씩 생존이란 단어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생각이 있는 생명체이든 또는 무생물이든 원자의 움직임이 동반 된 그런 현상을 삶이라고 한다면, 아마 이 순간부터 어떻게 멋지게 사라질 것인가 하는 것이 생존하는 최대의 가치일 것이다. 최소한의 멋을 지닌 체 삶의 순간를 다한다는 것. 하지만 최소한 삶이 요구하는 필요충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파선, 부서진 선박, 재역할을 하지 못하는 선박을 말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파생된다.
🙏🙏다시 돌아오는 망자의 영혼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잠시 슬퍼하지만, 마을에는 망자의 영혼이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신앙이 있기에 빠르게 체념한다. 생명은 신이 내린 것이고 사람의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바다 저편으로 떠났다가 때가 되면 마을로 돌아와 여인의 배 속에 잉태되어 신생아로 되살아난다. 죽음은 그저 영혼이 다시 돌아오기 위해 깊은 휴식을 누리는 것일 뿐이다.
오래도록 슬퍼하는 것은 죽은 사람들의 안식을 방해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일제히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는 묘비와 돌탑에는 영혼이 마을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몸이란 버스와 같고 영혼이란 승객과 같다. 언제든지 갈아탈 수 있다.
이사쿠에게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 명씩 있는데 지난해 말에 여동생이 하나 더 태어나면서 아버지는 고용 하인으로 일하기로 마음을 굳힌 듯하다.
다른 지역에는 갓난아기를 죽이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 이사쿠가 사는 마을에는 없는 풍습이다. 임신은 죽은 자의 영혼이 마을로 돌아왔음을 의미하므로 갓난아기를 죽음으로 내모는 짓은 설령 가족이 굶주릴지라도 용납되지 않는다.
🦜🦜여동생이 태어나 아버지는 고용된 하인으로 3년간 계약을 한다. 한 명의 입은 그들 가족에 관한 한 무시무시한 생존의 압력으로 다가온다.
🙏🙏
"3년이면 돌아올 거야. 그때까지 아이들 굶기지 말고." 중개소 입구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사쿠를 굳센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받은 은의 일부로 곡식을 샀고, 이사쿠는 어머니와 함께 곡식을 짊어지고 산을 넘어 마을로 돌아왔다.이사쿠는 은을 많이 받은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자신도 아버지 처 럼 육체가 튼튼하기를 바랐다.
🦜🦜3년 계약을 하고 아버지는 떠나간다.
🙏🙏
단풍이 지고 잎이 떨어질 무렵부터 바다는 곧잘 거칠어진다. 이틀 정도는 바람이 멎고 물결이 잔잔했다가 다음 며칠 동안은 파도가 몰아치고 물보라가 집 근처까지 밀어닥친다. 사나워진 바다는 때로 마을에 생각지 못한 은혜를 베푼다. 이는 척박한 밤이나 갯바위에서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여 수년간 마을에서 고용 하인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은혜는 매우 드물게 찾아오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고 산다. 단풍은 바다의 축복이 마을에 임할 가능성이 높은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 단풍이 들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다는 뒤집어진다.
🙏🙏여자가 일어서서 기모노 아랫부분을 걷어 올리고 상 가까이 다가가더니 음식이 담긴 그릇을 힘껏 발로 찼다. 그릇이 날아가고 음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자는 다시 촌장 앞에 앉아서 절을 했다. 그릇을 뒤집는 것은 배가 뒤집히게 해달라고 비는 행위다. 이것으로 의식은 끝났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흡어졌다. 의식을 치른 날에는 노동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이사쿠는 어머니의 뒤를 따라 좁은 길을 걸어 집으로 갔다.
🦜🦜바람이 불어 오면 짐을 싣고 가는 화물선이 풍랑에 피할곳을 찾게 되고 해안가로 오다가는 암초에 걸려 침몰한다.
이 마을에서는 침몰하는 배가 해안으로 오는 것을 뱃님이 오신다고 한다.
🙏🙏
"소금 굽기는 뱃님이 해변 가까이 다가오시라고 기원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사쿠는 다시 캐물었다. "기원만 하는 게 아니야.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해변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지?' 기치조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배를 유인한다고요?" "그래. 북서풍이 불기 시작하면 바다가 거칠어져. 고생하는 배들도 많아지고 말이야. 밤에 물이 들어와서 배가 가라않는 사태를 막기 위해 짐을 배 밖으로 던져야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해지겠지. 그때 소금 굽는 불을 본 뱃사람들은 그쪽이 마을이 있는 해변이라고 생각하고 배를 해안으로 돌려."'
🦜🦜이사쿠는 이제 일을 할 나이라 순번에 의해 소금 굽기를 해야 한다. 뱃님을 유인하는 연기를 피워 올려야 한다.
🙏🙏이사쿠는 오징어를 낚느라 여념이 없었다. 잡은 오징어는 음식에 넣지 않고 포로 만든다. 집집마다 줄에 매단 오징어를 처마 밑이나 주변 공터에 펼쳐 두니 바다에서 보면 왠지 마을 이 몹시 북적거리는것 같았다. 4월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낚시 도 구를 챙겨 집에 돌아오니 사촌형 다키치가 벽에 등을 기댄 채 팔로 무릎을 감고 앉아 있었다. 말린 오징어를 포개어 줄로 묶고 있던 어머니가 이사쿠를 보고 바로 일어서더니 멜대 양 끝에 소쿠리를 달고 집을 나섰다. 이사쿠도 멜대를 메고 어머니를 따라 해변으로 갔다. 이사쿠는 어머니와 함께 배 바닥에 있는 오징어를 소쿠리 로 옮긴 후 멜대에 걸어서 들었다.
🦜🦜오징어는 이 마을 생존을 위한 필수 품목이다. 이사쿠도 아빠에게서 오징어잡이를 배웠다. 그 오징어들은 이웃마을에 가서 곡물과 교환하여 오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뱃님이 실어 온 쌀은 전부 323섬"
노인의 발표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동요했다. 상상이상으로 많은 양에 이사쿠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남자와 여자는 한사람당 석 섬 어린아이는 한섬. 남은 마흔 아홉섬은 저장미로 촌장님이 보관한다." 마을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쁨의 말을 주고받으며 촌장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촌장도 부촌장도 미소지었다. 이사쿠는 어머니와 마을사 람들눈에 맺힌눈물을 보았다. 한 사람당이라고 할때 한사람은 열 살이 넘은 사람을 의미한다.
🦜🦜뱃님이 오셨다. 해안가에 까지 무사히 들어왔다. 배를 둘러싼 사람들은 살아있는 사람은 죽이고 화물들은 내려서 각기 분배한다. 몇년간은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
"부스럼이 난 시신의 옷을가졌다가 독이 옮을 염려는 없겠는가?" 가늘게 뜬 촌장의 눈은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일은 없을것입니다. 열꽃은 옴이 오른 여자의 음부에 남성의 음경이 들어가면서 독이 옮는 병입니다.설령 부스럼의 고름이나 피가 묻은 옷이라고 해도 잘 빨아 사용하면 해롭지 않습니다." 노인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촌장은 안도했는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파선이라 곡물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시신을 덮은 빨간 옷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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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베이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촌장님은 산으로 떠나기 전에 불경을 외셨다. 여한 없이 충분히 경을 외셨으니 독이 마을에 머물지 않도록 하려면 한 시라도 빨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하시며 새벽 인시 무렵에 출발하겠다고 하셨다."> 만베이의 말에 울음소리는 한층 더 격해졌다 "나와 함께 산속으로 가자." 촌장이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촌장이 일어나서 방 안으로 들어간다. 이사쿠와 마을 사람들은 울면서 엎드려 인사했다.
🦜🦜 파선에서 시체에 입혀져 있던 빨간 옷에 독이 스며 있었나보다. 옷이 고급스럽다고 나눠 가졌는데 그것이 전염병인 천연두를 옮겼다. 천연두에 걸린 사람들은 산으로 들어가야 한다. 엄마와 동생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
숲속에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지팡이도 짚지 않았고 건강한 사람의 I걸음걸이로 내려온다.
손에는 먹을 것이라도 들어있는지 작은 주머니 하나가 들려 있다. 목구멍에서 슬픔이 차올랐다. 어머니가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곧 네 자식 중에 하나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받을 충격과 슬픔이 이사쿠의 가슴을 후벼팠다. 이사쿠는 아버지가 한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 대로 배를 바다 쪽으로 돌려 물결을 타고 먼 곳으로 가버리고 싶었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체불명의 비 명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사쿠는 해변을 향해 노를 저었다.
🦜🦜 3년만 기다리라던 아버지가 돌아오고 있다. 가족 중에 혼자 남은 이사쿠는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
🌐🌐🌐나가면서
소박한 바램이지만 그걸 바랬서는 인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당한 일상으로 나타난 <뱃님 모시기> 개별 주민은 착한데 모여진 사람들은 죄를 죄인 줄 모르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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