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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사- 유네스코 세계유산/통도사

통도사의 암자-1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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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락암은 근현대의 고승인 경봉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 충혜왕 복위 5년(1344)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그 뒤 영조 34년 (1758)지홍대사가 중건하였고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스님이 중건 중수하였다. 선방인 호국선원 앞에는 영월루가 있고 연수당 수세전 독성각과 함께 33조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이 있다. 경봉스님의 거처였던 아담한 삼소굴과 함께 암자로서 매우 큰 규모이다.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는 영축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유명하며, 연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홍교와의 조화가 아름답다.

경봉(鏡峰)스님 (1892∼1982)
현대의 고승. 광주김씨. 속명은 용국(鏞國). 호는 경봉(鏡峰), 시호(諡號)는 원광(圓光). 경상남도
밀양출신. 아버지는 영규(榮奎)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 이다. 7세 때 밀양의 한학자 강달수
(姜達壽)에게 사서삼경을 배웠으며, 15세 에 어머니를 여의고 난 뒤 1907년 6월에 출가하여
양산 통도사 성해(聖海)의 제자가 되었다. 1908년 3월 통도사에서 설립한 명신학교(明新學校)에
입학하 였으며, 그해 9월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청호(淸湖)를 계사(戒師)로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1912년 4월 해담(海曇)으로부터 비구와 보살계를 받은 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불경 연구에 몰두하였다. 하루는 불경을 보다가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푼어치의 이익이 없다(終日數 他寶 自無半錢分)."라는 구절에서
큰 충격을 받고, 참선공부를 하기 위하여 내원사(內院寺)의 혜월(慧月)을 찾아 법을 물었으나 마음 속의 의문을 해결 할 수 없었다. 이에 해인사 퇴설당(堆雪堂)으로 가서 정진한 뒤, 금강산 마하 연(摩訶衍)·석왕사(釋王寺) 등 이름난 선원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하였다.  화두(話頭)를 들어 정진하다가 1927년 11월 20 일 새벽에 방안의 촛불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82세부터는 매월 첫째 일요일에 극락암에서 정기법회를 열었다. 90세의 노령에도
시자(侍者)의 부축을 받으며 법좌에 올라 설법하였 는데, 매회마다 1, 000여명 이상의 대중들이 참여하였다. 또한 가람수호(伽藍 守護)에도
힘을 기울여 통도사의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와 장엄석등(莊嚴石 燈) 18좌(座)를 세웠고, 극락암 조사당의 탱화조성 및 추모봉행, 특별 정진처인
아란야(阿蘭惹)의 창건, 극락암 정법보각(正法寶閣) 신축 및 무량수각(無 量壽閣)의 중창 등을 주관하였다. 이밖에도 경봉장학회를 설립하였으며,
파고다 공원 안에 만해선사기념비 건립도 추진하였다. 또 18세 때부터 85세까지 67년 동안 매일의 중요한 일을 기록한 일지를 남겼는데, 이 일지에는 당시의
사회상과 한국불교 최근세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1982년 7월 17일에 미질을 보인 뒤 문도들을 모아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라 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법어집인 <법해(法海)>·<속법해 (續法海)>와 시조집인
<원광한화(圓光閒話)>, 유묵집인 <선문묵일점(禪門墨 一點)>, 서간집인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등이 있다.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사명대사가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수호한 곳으로 전해진다. 선조 6년(1573)에 사명대사를 존경한 이기신백 두 스님이 암자를 지었다고 전한다. 사명암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보전과 칠성전, 해탈문등과 함께 연못과 어우러진 일승대가 한껏 운치를 더하고 있다. 사명암 감로탱을 비롯하여 1917년 조성된 석가모니후불탱과 1918년 조성된 신중탱이 성보박물관에 이운되어 보관 중이다. 또한 사명암은 통도사.수덕사.화엄사,안압지,분황사,불국사 등 전국 주요 사찰과 경복궁 향원정, 우정국 진열실, 남한산성등 우리나라 주요 건물의 단청을 담당하였던 중요무형문화재 제 48호 혜각스님이 주석하던 곳으로 현재 성보박물관에는 혜각스님이 소장하고 있던 많은 서화류들이 기증 보관 중이다.

마치 잘 가꾸어진 정원을 보는 듯
손길이 많이 갔음을 느낄 수 있다.

서운암

서운암은 수도암에서 들판을 내려와 남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고려 충목왕 2년(1346)충현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근래에는 성파스님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삼천불전과 산신각, 선원, 요사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후기에 제작된 여래불이 성보박물관 이운 보관 중이다. 또한 서운암은 고려대장경을 원형 그대로 도자기판에 조성한 십육만 도자대장경이 봉안되어 있어 인류의 평화와 남북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다.

16만 도자경판

매년 봄마다 들꽃 축제가 벌어지는 곳


16만 도자경판의 장경각

전통의 손길에 더욱 가까운 서운암 된장/된장 독




수도암

수도암은 취운암에서 남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조그마한 암자이다. 고려 공민왕 21년(1372) 이관대사가 창건하고 그 후 정신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현대에 조성된 인법당과 산식각, 요사가 자리하고 있다.

통도사 산내 암자를 돌다가 충격으로 다가온 곳.
모든 암자들이 다른 곳의 사격(사찰규모)을 넘었기에 당연 그럴거라고 생각하고 걸어 들어간 초입부터 혼란에 빠졌다.
단촐하게 법당과 요사체 법당위의 산신각이 전부였다.

아 그렇구나.
암자를 찿았구나.
암자라면 이래야 되는데...

여태껏 눈 만 높아진
나를 되돌아보게 한 산 공부.

찿아가도 볼 건 별로지만...느낄 건 한아름
의자에 앉아 들려오는 산새소리면 족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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