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 갈 이후의 어느 날에도 별빛이 폭포 처럼
가슴에 다가서는 그런 날은 없으리라.
너무나 해맑음 웃음으로 어린 시절의 감흥을 안겨준 적멸보궁에서의 하루는
그대로 희열이었다. 그리고 법문이었다.
중대 사자암에서 적멸보궁을 향하여 오르기 얼마간 뒤에 오대산 곳곳에서 만날수 있는
오대서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에 있어서 나는 그 일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사랑해야 함은 너무한 소중한
말씀이지만 그것을 잊고 살아 가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적멸보궁은 오대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그 중앙의 대지에 자리잡고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해서 예로부터 명당으로 이름이 높은 곳이기도 한데 전설에 의하면 이 산세에 따른 용의 정골부분에 정골사리가 묻혔으며, 그 지점에 표석이 드러나 보였다고 한다. 또한 용의 눈부분에 샘물이 솟고 있는데 이를 용안수라고 하며 우연의 일치라고나 할까 그 용안수 옆에 토굴이 뚫어져 있어 이를 용의 비혈이라고 부르고 있다.
오대산에 적멸보궁이 들어선 것은 자장율사에 의해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찬견하고자 정관 10년(636) 입당을 결행했다.
스님은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석상 앞에서 7일 동안 간절한 기도를 했는데 어느날 꿈 속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너희 나라 동북방 명주 경계에 오대산이 있다. 그곳에는 일만 문수가 상주하니 그곳에서 나의 진신을 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자장이 우리 나라의 오대산을 진성(眞聖)이 거주하는 곳으로 믿게 된 것은 중국 오대산에서 만났던 문수 현신(現身)의 깨우침때문이었다. 자장은 귀국 후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을 지내며 왕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나 문수 진신을 친견하는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오대산으로 들어와 모옥을 짓고 문수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한 기도를 했다.
그러나 자장은 문수의 진신을 좀처럼 친견할 수 없었다. 자장은 오대산의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기도를 계속했으며 원녕사(元寧寺), 갈래사(葛來寺) 등에서도 기도를 했다. 오대산에 월정사와 상원사, 사자산에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태백산의 갈래사(지금의 정암사) 등이 창건된 것은 이런 인연에 의해서다.
중대에 터를 잡고 그 위에 적멸보궁을 지은 것도 자장 율사의 간절한 구도심과 관계가 깊다.
오대산은 중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의 오류성중(五類聖衆)이 상주한다는 믿음이 산명(山名)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동대에는 관세음보살, 서대에는 아미타불, 남대에는 지장보살, 북대는 석가모니불, 중대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것이다.
자장율사는 이러한 믿음으로 이산 저 봉우리에서 기도를 했다. 특히 중대는 자장이 친견하고자 했던 문수 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이었다. 따라서 자장 율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모셔온 사리 가운데 가장 소중한 정골 사리를 이곳 적멸보궁에 모시고 기도를 했다. 중대를 일명 사자암이라고도 하는데 사자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는 짐승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대는 보궁의 불사리를 공양하는 분수승(焚修僧)이 머무르는 곳인 탓에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향각은 깎아지른 절벽에 석축을 쌓아 올린 뒤 지었는데 조선 초기 태종대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향각 앞에는 기도객의 눈길을 끄는 이상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는 근세 고승으로 추앙받는 한암 선사가 서울 봉은사에 머물다가 1926년 오대산으로 거처를 옮길 때 짚고 온 단풍나무 지팡이이다. 스님이 지팡이를 향각 앞에 꽂아 두었는데 어느덧 지팡이에서 잎이 피고 뿌리가 내렸다고 한다. 스님은 단풍나무 지팡이가 뿌리를 내리듯 한번 오대산에 들어 온 뒤로는 다시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삼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보다는 천고에 말없는 학이 되겠다”던 스님의 다짐처럼 이 단풍나무는 해마다 푸르름을 더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말없는 가르침이 되고 있다.
적멸보궁은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에서 흘러 내린 산맥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그 중앙에 우뚝 서 있다.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은 이곳을 일러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천하의 명당으로 꼽는다.
부처님이 계신 적멸의 도량 적멸보궁, 그러나 적멸보궁은 ‘보배궁전’ 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조촐한 모습으로 중생을 맞는다. 보궁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보궁과 마찬가지로 불상은 없고 부처님이 앉아 계심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방석만이 수미단 위에 놓여 있다. 그러면 오대산 보궁 어디에 사리를 모셔 놓은 것일까.
하지만 불사리가 어느 곳에 모셔져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보궁 뒤에는 약 1m 높이의 판석에 석탑을 모각한 마애불탑이 소담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불탑도 하나의 상징일 뿐 과연 어느 곳이 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이 산 전체가 하나의 불탑이요, 부처님의 진신사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일찍이 오대산에 오류성중의 진신이 상주한다는 믿음이 그것을 말해준다.
적멸보궁에서 본 일출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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