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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장경판전-유네스코 세계유산

해인사 원당암-159

by 돛을 달고 간 배 2008.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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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실의 원찰로 세운 원당암은 대덕광전과 마주보이는 비봉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래서 본디 이름을 봉서사라고 했다.
이 암자는 해인사 창건을 위한 기초 작업장의 역할을 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본절인 해인사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역사가 오랜 만큼 풍부한 사적과 더불어 몇 차례의 중수 기록을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세조임금 때에는 학조대사가 오랫동안 주석했고, 철종 3년 곧 서기 1852년에는 우룡스님이 중수하였으며, 고종 11년 곧 서기 1874년에는 비구니인 성주스님이 또 중수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해운스님과 예전에주석하신 혜암 큰 스님께서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원당암에는 귀중한 유물과 유적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보물 제 51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점판석 다층탑과 석등, 그리고 정교하게 안상을 넣은 금당의 축대석 들은 중요한 사적으로 꼽힌다.





보물 518 호 다층석탑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호국신앙의 요람인 해인사의 원당암 안에 있는 다층(多層) 석탑이다. 탑신(塔身)을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靑石塔)으로, 점판암은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는 석재이다.

땅과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3단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 탑신을 받치는 기단(基壇)과 지붕돌은 점판암으로 구성하였다. 기단은 1단으로 밑면에는 돌아가며 연꽃무늬를 장식하였고, 윗면은 네 모서리에 대리석 돌기둥을 세웠으며, 맨윗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남아있지 않고 지붕돌만 10층이 쌓여 있다. 지붕돌은 경사진 4면이 매우 평평하고 얇으며 밑면엔 낮은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 위로 살짝 들려 올라갔다. 탑의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낮게 있고, 그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만이 높직하게 남아 있다.

청석탑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되지만 이 석탑은 신라 말에 만들어져 청석탑의 선구라 할 수 있다.

석등은 탑의 옆에 있으며, 탑과 거의 동일한 시대의 작품이다. 땅과 맞닿은 6각형의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과 중간받침돌, 지붕돌로 이루어졌는데, 아래받침돌과 지붕돌이 점판암으로 되어 있고 다른 부재는 화강암이다. 현재는 지붕돌 밑의 불을 밝히던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이 남아 있지 않다. 중간받침돌은 가늘고 긴 편으로 아래위에 상(上)·하(下)의 글자가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6각형으로 윗면은 편평하며, 머리장식은 원기둥 모양의 돌 하나가 얹혀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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