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흥산성 서쪽 시냇가에 있는 3층 석탑이다. 중흥산성에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대사가 창건한 중흥사(中興寺)가 자리하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끝에 승병 들은 모두 죽고 절은 불에 타버렸다고 전한다. 관으로 옮기고 석탑만이 남아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위층기단에는 모서리 기둥을 굵직하게 조각하였다. 한 면을 둘씩 나 누어서 앞면에는 인왕상(仁王像)을,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뒷면에는 보살상(菩薩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 몸돌에는 두꺼운 모서리기둥을 조각하였다. 1층 몸돌의 각 면에 는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여래상(如來像)을 조각하였고, 2층 이상의 몸돌은 훨씬 작아지는 모습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 밑은 수평을 이루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고 그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있다. 상들도 뚜렷하다. 탑신에 비해 밑의 기단부가 너무 커 보이는 경향이 있으나 매우 안정된 느낌을 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
원래 이 석탑(石塔)과 함께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등이 있었으나 석등(石燈)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으로 옮기고 석탑만이 남아 있다. 을 따랐고 각부의 조각과 장식이 풍부하다. 기둥(隅柱)이 서 있고 각면(各面)에는 앙련(仰蓮), 복련(覆蓮)의 연화좌(蓮華座) 위에 여래좌상(如來坐像) 1구(一軀)씩이 있어 사방불(四方佛)을 이루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점점 줄어들고 4개의 우주(隅柱)만이 모각(模刻)되었다. 상륜부(相輪部)의 부재는 모두 없어졌다. 특히 초층탑신에는 사방불을 조각한 외에 그 밑으로 인왕(仁王), 사천왕(四天王), 보살(菩薩) 등을 질서 있게 배치한 것이 특이하며 탑 전체가 안정된 느낌을 주는 우수한 탑이다. 양호(良好)한 석탑(石塔)이다. |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 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을 이루는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이 석등은 큼직한 연꽃이 둘러진 아래받침돌 위로 가운데기둥 대신 쌍사자를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두 마리의 사자는 뒷발로 버티고 서서 가슴을 맞대어 위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사실적이면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어 주목된다. 8각의 화사석에는 4개의 창이 뚫려 있고,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장식이 번잡하지 않아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수법이 돋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그다지 크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조각기법과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는 걸작이라 하겠다.
원래는 중흥산성내에 있었으나, 일본인이 무단으로 반출하려 하여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다가
지금은 국립광주박물관 실내에 전시하고 있다. (사진의 탑 옆에 있는 석등과 같음)
왼발을 올리고 오른발을 내린 이른바 반가상의 이 상은 두건(頭巾)을 쓴 모습으로 보아
지장보살로 생각된다. 이런 모습의 지장상은 조선(朝鮮) 초기(初期)에 더러 보이는데
강진(康津) 무위사(無爲寺)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 협시지장보살상(脇侍地藏菩薩像)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 지장상 역시 이런 계통의 형식을 보여 준다. 얼굴은 풍만하지만
방형적(方形的)인 형식화가 엿보이며, 체구(體軀)도 다소 둔중하지만 보살로서의
친근미를 나타내고 있다. 보살옷은 스님들이 입던 장삼(長衫)을 걸치고 있어서
독특한 모습이지만 이 역시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대좌(臺座)는 하대(下臺)만
보이는데 복판연화문(覆瓣蓮華紋)을 새겼고 발대좌(足座)도 있다. 이처럼 두건을
쓰고 장삼을 입은 승형(僧形)의 이 지장보살상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고려말(高麗末)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돌로 된 귀중한 지장상이다. (출처-문화재지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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