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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전남의 사찰

고불총림 백양사-155(2)

by 돛을 달고 간 배 2007.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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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도는 백양사 입구에 자리한 부도전 내에 있으며, 백양사 주지를 역임한 소요대사(1562∼1649)의 묘탑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156cm 규모의 부도로,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는 8각형으로, 각 면에는 초화무늬가 조각되었는데, 1면에만 거북 동물이 양각되어 있다. 상면에는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는 각형 1단이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종모양으로 전체적으로는 전통적인 범종의 모습과 같이 하대·유곽·상대·용뉴를 표현하고 있다. 하대에는 2줄의 돌출된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그 안에는 게를 비롯한 8마리의 동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유곽은 4면에 배치되었는데, 그 안에는 9개의 유두가 돌출되었다. 상대에는 2줄의 돌출된 선이 있고, 문양이 양각되어 있다. 상면에는 아래를 향한 연꽃무늬가 조각되었고, 하대와 유곽 사이에는 모두 4마리의 용을 조각하였다. 전면에는 액자 모양을 조각하고 그 안에 ‘소요당(逍遙堂)’이라 새겨서 소요대사의 부도임을 밝히고 있다.

상륜부는 4마리의 용두(龍頭)가 석종을 움켜 물은 상태인데, 그 사이에는 구름무늬를 새기고 그 위에 보주를 올려놓았다.

소요대사의 부도는 백양사 이외에도 담양 용추사와 지리산 연곡사에도 있다. 이 중 연곡사서부도(보물 제154호)는 탑신부에 새겨진 글에 의해서, 조선 효종 원년(1650)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백양사 소요대사 부도 역시 소요대사가 입적한 시기와 연곡사서부도의 건립연대 등으로 보아 1650년을 건립의 하한으로 볼 수 있다.

소요대사는 13세에 백양사에서 불도에 입문하였고 부림(浮林)에게 대장(大藏)을 배운 후 서산대사에게 신지(神旨)를 깨우쳤으며 백양사 조실(祖室)로 있었다.

백양사 소요대사 부도는 범종의 세부양식이 부도에 표현된 드문 사례이며 주인공이 확실하고 건립연대를 알 수 있어 부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극락보전은 조선 선조 7년(1574)에 한응선사가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조선사찰사료』를 보면 건물을 지을 때 조선 중종(재위 1506∼1544)의 비인 문정왕후가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건물 내부에는 담담한 기법으로 처리한 단색벽화가 있다.

백양사 극락보전은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맞배지붕을 가진 건물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다포양식으로 절충해 지은 점이 특이하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에 여환이 처음 지은 후 여러 차례의 공사와 명칭의 변경이 있었던 사찰이다. 지금의 백양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 선조 7년(1574) 환양이 다시 지은 이후부터이다. 환양이 백양사에 있으면서 매일 『법화경』을 읽을 때 흰 양이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지자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쳤다고 한다.

대웅전은 1917년 절이 다시 지어질 때 같이 세운 것으로, 안에는 석가여래삼존불상과 10척 높이의 불상, 용두관음탱화를 모시고 있다. 또한 오른쪽으로는 바늘 귀를 꿰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등 우스운 모습을 하고 있는 나한의 그림 16점이 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규모가 큰 법당에 속한다. 2단의 긴 돌로 쌓은 기단 가운데로 계단을 두었다.

백양사 대웅전은 일제시대 초기에 지어진 건물로 조선 후기의 화려한 다포 양식에서 후퇴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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