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지장사는 신라 소지왕 7년(485) 극달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인조 원년(1623)에 지은 건물로 원래 극락전 또는 지장전으로 사용했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보물 805호)
앞면 1칸·옆면 2칸 규모이지만 앞면 1칸 사이에 사각형의 사잇기둥을 세워 3칸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세부 처리는 조선 중기 수법을 따르고 있고 공포 위에 설치한 용 머리 조각 등은 조선 후기 수법을 따르고 있다. 건물에 비해 지붕을 크게 구성하고 있는 편이며 지붕 각 모서리 끝(추녀)에 얇은 기둥(활주)을 받쳤다. 안쪽은 특이하게 정자에서 쓰는 건축 기법을 사용하였다.
불전 건축기법으로는 보기 드문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건물이다. (문화재지식정보센터)
대구의 북지장사는 고려 명종 22년(1192)에 창건되었으며 불상은 북지장사 대웅전 뒤쪽 땅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시도유형문화재 15호) 얼굴은 온화한 인상으로 단정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왼손에는 보주(寶珠)를 들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의 조각선이 가늘고 약하게 형식화되어 시대가 뒤짐을 보여준다. 머리의 형태나 손에 든 보주 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며, 단정한 자태와 온화한 인상 등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화강암(花崗岩)으로 조성된 이 불상은 대웅전(大雄殿) 뒤쪽 땅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옮겨 놓을 때부터 대좌(臺座) 및 광배(光背)는 없었다고 하나 그 조각상태(彫刻狀態)는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왼손에 보주(寶珠)를 얹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은 촉지인(觸地印)을 취하고 있다. 두부(頭部)의 형태나 지물(持物) 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장보살이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옷주름의 조각선이 섬약하고 형식화되었는데, 이것으로 시대가 뒤짐을 말하기는 하나 단정한 자태(姿態)와 온화한 상호(相好) 등으로 신라말(新羅末)경의 유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지식정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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