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淵寺는 용연계곡 골짜기에 용소가 있어 용연사라 했다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 하였다고 하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1650년 인조(仁祖) 때 도승(道僧) 옥잠(玉岑)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왕침대사(王葴大師)가 응봉산 동쪽 용연동 만월산(萬月山)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950년 한국전쟁때 全燒되었다가 한 女僧의 盡力으로 중건되었다. 『東國與地勝覽』과 『輿地圖書』등 朝鮮時代 문헌에는 기록이전혀 없어 정확한 창건연대와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江陵邑誌인『增修臨瀛誌』寺刹條에 <龍淵寺在府北三十里二十間…有僧玉岑經始此寺云>이라고 하여 順治年間(1644년 경)에 승려 옥잠이 처음으로 이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龍淵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의 말사로, 1650년 인조(仁祖) 때 도승(道僧) 옥잠(玉岑)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왕침대사(王葴大師)가 응봉산 동쪽 용연동 만월산(萬月山)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950년 한국전쟁때 全燒되었다가 한 女僧의 盡力으로 중건되었다. 『東國與地勝覽』과 『輿地圖書』등 朝鮮時代 문헌에는 기록이전혀 없어 정확한 창건연대와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江陵邑誌인『增修臨瀛誌』寺刹條에 <龍淵寺在府北三十里二十間…有僧玉岑經始此寺云>이라고 하여 順治年間(1644년 경)에 승려 옥잠이 처음으로 이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이 석탑은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원래는 2기의 雙塔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허물어져 주변에 흩어졌던 부재를 다시 모아 1기의 석탑으로 조립한 것이다.
불상의 재질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수성암질로 알려져 있으며, 화불을 모신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관음보살 좌상이다. 별도로 만들어진 화염문(火焰紋)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머리는 상투머리를 하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양쪽 귀 위 중간부를 타고 내려오다가 세 가닥으로 흘러 어깨 위에서 뭉쳐지면서 흘러내리도록 조각되었다. 상호(相好)는 방형에 가까우며 양 볼이 통통하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통견(通肩)이고 가슴밑에는 군의(裙衣)가 보이고 양 무릎을 덮고 있다. 자세는 길상좌(吉祥坐)이고 수인(手印)은 왼손을 무릎 위에 놓아 손바닥이 위로 보이도록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손등이 보이도록 하면서 인지와 중지, 약지를 구부리고 있다. 복장을 봉납하였던 구멍은 방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이나 목장유물은 멸실되었고, 한지로 밀봉하였던 흔적만 남아 있다.(출처 -국가 문화유산포털 )
'우리절 순례 > 강원의 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악산 구룡사 (0) | 2022.10.04 |
---|---|
휴휴암/休休庵 (0) | 2022.10.04 |
강릉 보현산 보현사 (0) | 2022.10.04 |
괘방산 등명낙가사 (0) | 2022.10.04 |
동해 두타산 삼화사 템플스테이 (0) | 2022.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