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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전개
국내에서는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어 상현이는 멀리 떠나고, 아비들은 멀리 있어도 애들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와중에 길상이는 계명회 사건으로 체포되고 강쇠는 환이의 복수를 시작한다.
⛱️⛱️상현이는 이국땅으로 가네.
"가서 자리 잡거든 가족들 데러가게.'
"아껴야 할 군량미 걱정은 말고. 보나 마나 자넷 군량미 먹지 않을 테니까. 늙으신 어머님께서 고생이 되시겠지만 아들 곁에 계시는 것만 하겠나? 내가 왜 이런 애길 하는고 하니, 자넨 의돈이하곤 달라. 그곳에 떨어지면 며칠이 안 가서 갈라설걸?"
"자빈 자네 부친께서 쌓아놓으신 기반이 있을 테니 의식의 해결책이야 설마 없겠나. 중국하곤 달라서 간도나 연해주 방면에는 우리 조선인들의 기반이 탄탄하고, 사업이나 하는 게다.
그러고 돌아오지 마라. 회망 없는 거라구."
"돌아오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생활의 되풀이지 무슨 변화가 있겠나?"
"그보다 누이동생이 걱정되어 그러시지요?"
상현은 빤히 쳐다본다. 임명빈의 낮색이 싹 변했다.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 쓴웃음을 띈다.
"미친 소리, 옛날 같았음 그런 말도 곧이듣겠다만,"
"이제는 반석 같다는 얘깁니까?"
"웬 트집이야? 서로 눈 부릅뜨며 이별주 나누어야겠나?"
"네. 선생님 맘 이해합니다. 그러나 농담 한마디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몰매 맞게 된다면 선생님을 잊지 않고 기억할 테니까요"
💥💥서희와의 아득한 기억, 기화와의 이탈, 명희와의 어긋 난 길에 대한 잔상이 국내에서 얼른 벗어나라고 아우성이다. 한 가지도 똑바로 하지 못하는 놈이라고 먼 곳에서 부친이 소리친다.
⛱️⛱️ 제삿날 소회
산 사람 입에 풀칠하기도 어럽운 세상, 선영봉사는 뭐 말라 죽을, 농사꾼들 한테는 골병이오."
연학의 음성은 좀 격렬했다. 윤씨부인의 기일(紀日)이라 하여
평사리 참판댁은 집 안이 온통 법석인데 그짓에 대한 반발인지.
용이는 기름땀이 흐르는 연학의 노리끼한 얼굴을 힐끗 쳐다본다.
"사람 사는 기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
"죽으면 다 그만이제. 그러나 답댑이. 사람이란 그놈의 잊힘이란 것이 흔해서 제사 때가 닥처와도 무심상하니 . 제사도 없
다문 죽은 사람 생각이나 해보겄나?"
며칠 전에 용이는 자부와 합께 호열자에 죽은 강청댁의 제사를 지냈다. 세 여자를 앞세운 자신의 팔자도 어지간히 드세다
는 생각을 용이는 제삿날 밤 했던 것이다. 본처 강청댁이 죽은지는 이십 년이 넘었고. 월선의 죽음은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옛
일이다. 그리고 작년 초봄엔 임이네가 죽은 것이다. 연학은 한 동안 말이 없다가 좀 심한 말을 했나 싶었던지 화제를 바꾸었다.
"호열자 나던 해는 지도 어렴풋이 기억을 하는데 한 이십 년 넘었지요?"
"임인년(壬寅 )의 일인께. 보자아... 이십사 년. 이십오 년 됐구마."
"맨날 집 앞을 관이 지나가는 것을 문구명으로 내다본 생각이 나누마요."
"그 이듬해는 또 보리 흉년이 들어서 길바닥에 송장이 나둥굴곤 했제"
💥💥제사란 게 시대를 관통하면서 수 많은 사람에게 심적이고 물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지. 상복을 입는 날짜까지 틀리면 목숨까지 빼앗는 일도(예송논쟁)있었으니.
⛱️⛱️ 산 사람은 살아야제
석이는 본능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그 챙피스런 일을 뉘한테 말하겠노? 혼자 짝 묻어두었는데
그러다가 다 잊어부릿는데. 이십 년이나 지난 오늘에 와서 얼굴은 조그랑바가지가 된 주제에 어디서 그 애기를 들었던지 할망구가 생지랄을 하는 기라. 할망구 생지랄이사 아무것도 앙이고 남사스런 얘기가 난 기이 돈 더마 말이 났다문 복동네 말고 입이 없었인께 요것 봐라? 싶더마. 그래서 삼수 놈하고 그렇
다고 뒤집어 씨운 기라. 그런 일이사 흔히."
이 도둑놈아!"
봉기 또래가 되는 원동네 윤서방이. 평소 봉기하고 사이는 좋지 못했으나. 그러나 진심에서 욕설을 펴붓는다
"네놈의 낯가죽은 쇠가죽으로 맨들었더나? 흔히?" "그, 그려야. 사 사내들 욕심 묵기 예사 앙이가. 또오 과부가 험담 좀 들었기로 저저이 다 죽나? 내 운수가 나빴던 기지."
사이가 나쁜 윤서방의 욕설이었기 때문에 순간 봉기의 오기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고 말을 다 해버리고 나니 실수 없이 치른 것이 대견하였고, 배포가 커졌으며, 생래의 생떼도 동했다. 늙은것을 어쩌란. 석이를 믿는 마음도 있었고, 말을 하고 보니 운수가 나빳고 억울한 것은 자신이라는 착각도 들었다
"아 생각해봐라. 세상에 애멘 소리 안 듣고 사는 사람이 있나? 애멘 소리 들었다고 다 죽을 것 겉으문 사람우 씨가 남을기던가? 말 한마디 잘못한 죄로 이렇그름 경을 치는 법이 어디있노? 내가 도둑질을 했나 칼 들고 샐인을 했나? 다 늙어서 낼 모레 황천객이 될 이 나를 끌어다 놓고 닦달질을 헤야 하겠나!"
💥💥두리는 우물가에서 삼수에게 겁탈을 당했지. 부모는 그것을 숨기고 처녀라 속이고 시집을 보냈지. 지금에사 그기이 드러날라는 찰라이다.
⛱️⛱️ 김 환의 이 세상 하직하는 방법
한밤중이다. 유치장의 문이 열렸다.
"김환이 나와."
환이는 엎드린 채 꼼짝 않는다. 다른 잡범들은 잠에서 깬 모양인데 숨을 죽이며 자는 시늉이다. 형사가 들어와서 환이를
일으킨다.
"기운 없어?"
어조가 부드럽다.
자, 내 팔 끼라구."
"어디 가는 거요?"
여기는 냄새도 나고 더러우니까 깨끗한 독방으로 간다. 대우해주는 거야."
"그래요?"
이끌리어 방을 나가면서 환이는 돌아본다. 실눈을 뜨고 쳐다보는 잡범들을 항해.
"잘 있게."
독방에 들여주고 형사는 가버렸다.
"흠, 이젠 밥 줄 사람도 없군."
그간 취조관들은 환이 금식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금식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속이 안 좋다는 변명을 하며 아주 소량만 취했을 뿐 잡범들한테 나누어주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금식이라기보다 감식이라 해야 옮겠다.
"허허헛... 허허허허어헛 ..이 날 대우해주는 거라구?"
이튿날 아침, 환이는 스스로 목을 졸라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던 진달래 동산에는 별당아씨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윤씨부인이 고개 숙이며 눈물 흘리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김개주 장수가 눈을 부릅뜨고 있을까? 상놈인가, 양반인가. 아무 필요 없다.
⛱️⛱️ 계명회와 길상의 얽힘
황태수가 임명빈을 찾아온 것은 게명회 회원 모두가 검거된 사건 때문이다. 서의돈을 필두로 하여 성삼대. 선우일 선우신 형제. 유인성과 유인실의 남매. 일본인 오가타 지로 간도의 김길상, 그 밖의 회원 칠팔 명이 체포된 것이다. 일본인 오가타는 조선에 나와 중학교 교사직에 있으면서 계명회에 관계했으므로 연루되었고, 길상은 용정촌 공노인이 경영하는 여관에서 서의돈과 만난 자리에서 함께 끌려온 것이다. 황태수로
말하면 거의가 친구며 후배들일 뿐만 아니라 선우일은 측근이라 말할 수 있었고, 비밀리에 한 짓이지만 선우일을 통해서 계명회의 운영비를 내준 일이 있었다. 계명회란 사회과학 연구단체 비슷한 것이다. 1920년 합법적 사회운동단체로 노동공제회. 화요회, 북풍회, 고려공산청년회, ML 등 좌경한 모임이 많이 조직되었는데, 상호 알력과 파쟁을 면치 못하였다 하더라도 무력해지는 민족전선에서 사회운동으로 활력을 찾고자 하는 경향이 짙었던 것만은 확실하였고,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 역시 그러하였으니 지식의 온상지로 되어 있는 일본의 유학생이
나 유학하고 돌아온 청년층이 사회주의적 방항을 잡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거센 것이었다. 그것은 상해임정이 약화되어 가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계명회라는 것도 그와 엇비슷한
비밀결사 같은 것이다. 대개 신촌 유학생으로 구성된 회원 중에 일본인 오가타가 끼인 것이 이채였으나, 그보다 뜻밖의 김길상의 출현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겠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공노인이 서울 임역관 집을 드나들 적에 조준구를 파산지경에 몰아넣은 사람 중 서의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혁명가들이 관문인 용정촌을 거쳐가는 것은 상식이며, 서의돈도 길상도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고, 계명회는 길상에게 국내를 향한 디딤돌 성격으로 부산의 부두노조와 관수까지 연결되었던 것이다.
⛱️⛱️홍이는 임이네를 생각한다.
홍이 눈앞에 생모 임이네의 얼굴이 떠오른다. 임종 때의 그 비참한 얼굴, 눈을 뜬 채 숨을 거둔 얼굴, 생명의 빛을 잃은 눈동자.
'왜 좀 따뜻하게 못했을까? 난생처음 보는 저 노인을 위해서 내 마음이 이리 아픈데 생시 어머니를 위해 이만큼이나 맘 아파한 일이 있었을까?'
견딜 수 없는 죄책감, 죽은 어미를 생각한다는 것은 가장 고통스런 일이다. 어쩌면 일본으로 간 이유 중에는 모친에 대한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사가 있었는지 모른다. 비장한 죽음을 잊고 싶었는지 모른다. 병석에서 병으로 갔지만 임이네의
죽음은 월선의 죽음과는 달랐다. 이 두 죽음에서 비로소 홍이는 월선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놓여났으며, 월선이 점령했던 자리에 생모의 죽은 모습이 낙인과 같이 찍혀버렸던 것이다.
임이네의 죽음은 죽음과의 무참한 투쟁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체념 못한 죽음과의 투쟁이었다. 애정을 넘어선 그 모습은 견딜 수 없는 연민으로 종전까지의 홍이를 파괴하고 만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죽음과 모든 사람의 운명으로 확대퇴
허무의 깊이 모를 심연이었다. 월선이 축복받은 죽음이라면 임이네는 저주받은 죽음이요. 근원적으론 죽음이란 저주받
은 것일 거라는 공포는 홍이 마음을 깊이 지배하였다. 홍이는 노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또한 번 고개
를 흔들었다.
'불쌍한 어머니 ..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실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표독 스러운 임이네는 홍이에게 짐짝 같은 존재였었지. 하지만 홍이는 깨닫는다. 이 세상에 가치없이 존재하는 건 아뭇것도 없다는 걸.
⛱️⛱️ 겉치레 부부 조용하와 임명희
"그러고 나서 하는 말이 일간에 독창회를 열게 돼 있으니 후원좀 해달라나? 당돌하기도 하고 매력도 있긴 있어요."
"후원 좀 해드리세요."
"당신이 부탁하는 거요?"
"후배니까."
"남편이 있다 해서 금단의 열맨 줄 아오?"
"그런 말씀 저한테 하셔야 시원하시겠어요?"
당신 날 좋아해서 결혼한 것 아니잖아!"
별안간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조용하는 이성을 잃은 것도 아니요 약이 올랐던 것도 아니다. 명희는 눈살을 찌푸린다.
또 시작이다 싶었던 것이다.
"말해봐요!"
"제가 그럼 당신을 속였나요?"
"항상 하는 그 대답이군."
"당신도 항상 하시는 그 말씀 아니에요?"
할 수없다는 듯 씩 웃는다.
"아이가 없어서 어른들이 권하는 대로 소실 하나 둘까 생각했는데 당분간 보류해야겠소."
"왜요?"
"아직은 매력이 있소. 또 매력이 있어질 게요."
매력이 있어진다는 말은 시동생의 귀국에서 비롯된 말이리라. 명희는 우율한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나뭇잎이 지고 있다. 갈색으로 변한 커다란 목련 잎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마음 바닥에 기차 바퀴가 갈고 지나간 것처럼 쓰라림이 지나간다.
💥💥독신주의 신여성이었던 임명희, 결혼 후에는 역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욕망의 언덕으로 너무 멀리 사라져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일 뿐이다.
⛱️⛱️봉순이는 뭘 생각할까?
여기서 나가면 년 거리귀신이 된다. 마음을 잡아보아."
"현이 앞길을 생각해주십시오. 아씨! 기생에다 아편쟁이. 그런 어미 두어서 하겠습니까? 나가서 거리귀신이 되게 내버
려두십시오."
거짓말이다. 나가고 싶은 일념뿐이다. 도망을 시도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가끔 강풍
든 아이처럼 달아나려는 발작을 일으키는데 지금이 그발작의 시초인 것이다.
"어째 아씨는 옛날처럼 꾸짓지 않으십니까?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내쫓으세요. 그. 그럼 사람들이 절 잡지 않을 것입니다. 아씨! 저는 몹쓸 계집이옵니다! 모, 물쓸 계집! 으훗훗홋 제발 살려주십시오. 아씨!"
"봉순아."
"예, 아씨!"
"몹쓸 계집을 덮어줄 만큼 내 날개는 크고 넘다. 아무리 몹쓸 계집이라도 자식한테는 어미가 있어야 하느니라. 자네는 그걸
잘알터인데 어째 그러느냐."
"아. 아니옵니다. 지체 높은. 예, 기생이 있을 곳은 아니옵니다. 아편쟁이 계집이 누를 끼칠 뿐이지요. 아씨! 제발 저를 내보내주십시오."
이번에는 소리를 내며 엉엉 운다. 눈물이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내린다.
"내가 널 지키고 있단 말이냐?"
서희는 어이없는 듯 웃는다.
💥💥정이란 무엇이었나, 끊지 못하는 정해情海여! 결국은 상현이 니가 나에게 짐을 떠 맡기네. 얼키고 설킨 인연의 그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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