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니프 쿠레이시 Hanif Kureishi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영화 제작자로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전천후 예술가.
1954년 런던에서 파키스탄 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런던킹스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76년 첫 번째 희곡 "홈뻑 젖은 더위"를 로열코트 극장에 올린 것을 시작으로 희곡 작가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1984년 영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의 시나리오로 아카데미 상 시나리오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백인 청년과 파키스탄 이민자 사이의 동성애를 직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당시 영국 사회에 내재해 있던 인종 차별, 청년 실업 등의 사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1990년 인도계 소년의 방황을 희극적으로 그린 자전적 소설 변두리 부처를 발표하여 휘트브레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 작품은 1993년 BBC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었고 그해 BBC 미니시리즈 상을 수상했다. 1998년 "친밀감"을 발표할 당시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버리고 떠나는 소설 속 설정과 작가의 실제 상황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커다란 사회적 파장 을 일으켰다. 2001년에 발표한 "가브리엘의 재능"에서는 예술에 눈을 뜨면서 부모의 이혼으로 입은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 리기도 했다
그의 소설은 꾸준히 영화화되고 있는데 첫 번째 단편집 "우울한 시절의 사랑에 실린 이야기" "광신도인 내 아들"은 우다얀 파사드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고, "친밀감"을 하니프 쿠레이시가 직접 각색하고 파트리스 셰로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정사"는 베를린 영화제 작품상을 받았다 2003년에는 영화 "마더"의 시나리오를 통해 육십대 여인과 삼십대 남자 사이의 육체적 친밀감을 그려 냈다. 최근에는 영화 "베누스"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옮긴이 이옥진
1998년 부산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소설과 인문학 책을 우리말로 유기는 일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 "새로운 나여, 안녕" "2004 세계 환상 문학 걸작 단편선 2"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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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한 여자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탈출을 하려고 한다.
🙏슬픈 밤이다. 나는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 내일 아침. 육 년을 함께 산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 아이들에게 공을 쥐여 주고 공원에 데려다 놓은 후, 나는 여행 가방에 간단히 짐을 싸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기를 바라며 집을 살짝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빅터네 집으로 갈 작정이다. 얼마나 오래가 될지는 모르지만, 빅터가 친절히 허락한 부억 옆 작은 방에서 나는 잠을 청하게 되리라 매일 아침 얇은 1인용 침대 매트리스를 세탁물 건조용 선반에 다시 올려놓게 되겠지. 곰팡내 나는 깃털 이불은 상자속에 쑤셔 넣을 테고. 방석들은 소파에 다시 갖다 놓을 것이다.
🙏🙏🙏너무 잘 알아 진부한
💥이상적인 가족으로 우리가 보내는 마지막 저녁이 되겠지 만난지 십 년,더는 원하는 게 없을 만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한 여자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되리라. 그러니 오늘이, 순수하고 완벽하면서 이내 우리는 남처럼 될 테고 아니, 절대 그리 될 순 없어,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건 내키지 않는 친밀함의 표시다.
🧘♂️🧘♂️ 친밀함의 의미는 진부함의 단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진부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벗어나기를 결정했다.
💥누군가를 떠난다는 것이 그 사람에게 최악의 선물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쓰는 중이다. 우울하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비극이 될 까닭은 없다.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떠나지 않는다면 새로움을 맞을 여지는 없을 것이다. 옮겨 간다는 건 당연히 사람들과 과거와 옛 자아에 대한 배반이다.
🧘♂️🧘♂️여태까지 상대도 나의 진부하고 못마땅한 모습을 견뎌 왔을터이고 이런 나의 결심은 그의 아내 수전에게는 오히려 선물이 될 것이다.
💥수전은 부엌에서 라디오를 듣고 정원쪽을 내다보며 일한다. 그녀는 그걸 즐긴다. 나처럼, 수전의 가정생활도 별스레 즐거울 일이 없다. 이즈음 그녀는 제대로 장을 보고 멋진 식사를 준비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설령 조리된 음식을 사 와서 먹더라도, 수전은 신문지, 아이들 책, 편지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게 내버려 두는 사람이 아니다. 곤혹스러운 침묵과 심각한 토의까지 포함해서 제대로 된 가족 식사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며, 그녀는 냅 킨을 깔고 초를 켜고 포도주 마개를 딴다.
🧘♂️🧘♂️ 작가는 왜 소소한 일상에 행복하지 않고
새로움을 맞이하려 할까? 그에게 새로움이란 신선함은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까?
💥어머니를 제외하면, 함께 있어서 내가 사실상 무력해지는 유일한 여자가 수전이라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를 욕망할까 두려워하지 않고 여자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고 확신하니, 예전처럼 경박하게 누군가를 만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줄어든다. 어떤 나이에 이르면 몸을 섞는 것이 더는 예사로울 수 없다. 타인의 몸에 손을 얹거나 입술을 얹는다는 것. 그 자체로 얼마나 깊은 개입인지! 누군가를 선택하는 건 인생을 통째로 열어 보는 행위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을 기꺼이 열어 보게 하는 행위다!
🧘♂️🧘♂️또 다시 나를 순서대로 열어 보이는 게 타당하기는 할까? 그럴 능력은 있고?
💥어쩌면 내 생각의 속도와 동요를 감지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제이" 아무것도 아냐. "그뿐이야." 수전을 응시한다. 다정한 몸짓이 내겐 충격이다. 그녀가 나름의 장소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 사랑받을 만큼 운이 좋다면 분명 감사할 일이다. 나는 언쟁이 벌어질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책임 회피임에 틀림없다. 그의 탈출로에는 자유로울께 하나도 없다.
💥말하지도 행하지도 바라지도 않지만 자아를
잃는 것은 아닌 쾌락을,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전과 아이들이 잠들고 나는 여기 앉아 거리의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내가 살가운 접촉과 따스함을 얼마나 갈구하는지 문득 깨달았던 것도 늦은 밤 이 방에서였다.
나는 수전과 기분 좋게 노닥거리는 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 삶의 순환이 일정하게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가, 아마 엇물린 톱니처럼 돌아가지 않는 때가 더 많지 않는지.
🙏🙏🙏 겉만 알지만 신선한
💥빅터는 팔 년 전에 아내를 떠났다. 그 후, 나체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둘의 밀회에 자신의 모든 기술을 베풀었던 그 중국인 창녀만 빼면, 빅터는 언제나 마음에 차지 않는 연애 만 했다. 전화벨이라도 울리면 빅터는 어디서 어떤 욕이 튀어나올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면서 겁에 질려 뛰어다닐 지경 이었다. 빅터는, 말하자면, 여자에게 만족은 아니지만 희망은 줄 수 있는 사람이다.
🧘♂️🧘♂️ 그가 생각하는 신선함의 순간 1
💥런던에서 독신 남성으로 지내면 즐길 수 있는 것들. 앞으로 어떤 일을 기대해도 될지를 떠올리면서 스스로에게 위안을 준다. 혼자 키득거리고 있으려니 아이들이 나를 쳐다본다. 요전날 밤에 빅터는 술집에서 혀에 피어싱을 한 여자를 만나서 이스트 엔드에 있는 그녀의 다락방에 초대를 받았다. 그 여자는 묶여 있고 싶어 했고, 각종 도구도 갖추고 있었다. 혀에 박힌 징이 빅터의 음낭에서 스멀대자, 빅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머리에 불알을 단 한 마리 달팽이 같았단다. 그들은 열쇠를 엉뚱한 곳에 끼웠다며 농담을 했다. 빅터는 아랫도리가 쓰렸다.
🧘♂️🧘♂️그가 생각하는 신선함의 순간 2
💥니나를 부추겨서 다른 남자들과 만나게 하고 그들과 있었던 일을 내게 털어놓아 그치들을 비웃는 일이 일종의 자유인 것 같았다 "이번 주에는 몇 놈이나 만났지? 마지막에 만난 녀석이 너한테 어떻게 했어?" 내게 입을 맞췄어요 그러게 놔뒀고?" 그래요 그 뒤엔 녀석이 네 몸에 손을 얹었겠지. 그리고 넌 틀림없이 내가 지금 입 맞추고 있는 네 손으로 그를 만졌고.
🧘♂️🧘♂️그가 생각하는 신선함의 순간 3
💥어느 오후 나는 그녀 위에 몸을 뉘었다. 슬리퍼를 차서 벗어 버리고 우리는 테라스에 깃털 누비 이불을 던져 깔았다. 니나는 밖에서 몸을 섞는 걸 좋아했고, 나는 다리 사이로 바람만 들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낮게 들렸다. 영국이 서인도 제도와 경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경외감과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지도 못하던 한 여자에게 어떻게 이런 느낌이 들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하면서.🧘♂️🧘♂️그가 생각하는 신선함의 순간 4
💥나는 빨래 바구니를 뒤적여서 수전의 속바지들을 꺼내어 팬티 스타킹에서 분리해 내고는 싱크대에 걸쳐 둔다. 자 시작해 보자. 아니, 회색 속바지에는 신비한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 빅터 말이 내가 심하게 까탈스러워질지 모른단다. 흰색 속옷으로는 그저 목적만 달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자리가 레이스로 장식된 검은 속옷이라면 어쩐지 좀 더 격렬한 반응이 나오지 싶다. 수음쯤 되고 보면 나는 탐미가이다.
이건 사랑의 행위일까, 아니면 증오의 행위일까, 그도 아니면 둘 다일까?
🧘♂️🧘♂️ 그가 생각하는 신선함의 순간 5
🌐🌐🌐 책임의 한계와 답답한 일상은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누구에겐 감옥이 될 건가. 하지만 일상의 탈출 러시를 누군들 생각하지 않는 날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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