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흥선대원군

🧘♂️🧘♂️ 흥선대원군(1820~1898) 철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고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였으므로 그의 생부였던 흥선군 이하응이 10년간 집정하였다.
그의 호는 석파이며, 글씨와 난을 그리는데 능하였으로 석파묵난이라면 천하에 유명하였다 한다
靈鷲山通度寺영축산 통도사의 일주문에 쓰인
글씨가 흥선대원군 작품이다.

금강계단金剛戒壇(글씨 흥선대원군)
계단(戒壇)이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로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누지보살(樓至菩薩)이 비구들의 수계의식을 집행할 것을 청하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허락하여 기원 정사의 동남쪽에 단(壇)을 세우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은 바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 통도사가 신라의 계율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이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대웅전 편액의 글씨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 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통도사에는 유독 흥선대원군 즉 석파(石坡)의 글씨가 많이 있는데, 일주문(一柱門)의 편액인‘靈鷲山 通度寺’의 글씨와 원통방 편액과 ‘금강계단’의 글씨 등이 모두 흥선대원군의 글씨라 한다.

대방광전(흥선대원군의 글씨)
대방광전은 '넓고 큰 세상, 즉 부처님의 넓고 큰 가르침을 펼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전각은 주로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곳으로, 법신불이 머무르는 곳을 상징합니다.
특히 양산 통도사의 대방광전은 금강계단과 함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대방광전은 이곳에서 부처님의 넓고 큰 가르침이 펼쳐지는 곳임을 나타냅니다

원통방圓通房
원통방과 감로당은 원래 口字형 건물이었으나 2009년 원통방과 공양간 중창으로 지금은 다소 변화되었다. 감로당 동쪽 측면에 위치한다. 초창은 1341년(충혜왕 복위 2)이지만 영조 때에 탄해대사(坦亥大師)가 중건하였고 1886년 감로당과 함께 소실되고 다음해에 매예대사(每藝大師)에 의해 중건되었다. 원통방의 ‘원통’ 의미는 ‘관음보살 이근원통(耳根圓通)’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역시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다.
2.추사 김정희(1786~1856)
추사체를 창안한 조선 후기 북학파의 실학자. 본관은 경주, 호는 추사, 완당이며 조선의 실학과 청의 학풍을 융화시켜 경학·금석학·불교학 등 다방면에 걸친 학문 체계를 수립한 문인으로 서예에도 능하여 추사체를 창안했다.


3.김규진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1868~1933) 근세인으로 사찰에 가장 많은 글씨의 족적을 남긴 이다. 그는 서북 출신으로 18세 때 청국에 가서 10여 년 동안 진 한 당 송의 필적을 연구하여 귀국한 후 고종의 어명으로 왕세자 영친왕 이은의 스승이 되었다.
국지대찰國之大刹 나라의 큰 절이요.
불지종가佛之宗家 절의 종가집이네.
3.취산 김구하

적멸보궁(김구하 글씨)
김구하(1871~1965) 법명은 천보이고 호는 취산.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말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을 말하는데, 먼저 적멸(寂滅)이라는 말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경계(境界)를 표현한 말로서, 범어(梵語) 열반(涅槃 nirvana)을 번역한 말이다. 그리고 보궁(寶宮)이란 불상을 모시고 있는 집을 전(殿)이나 각(閣)이라 표현하는데 대하여 좀 더 상위개념으로 ‘궁(宮)’이라 사용한 것이고, 한층 더 높여 보배로운 궁전이라고 한 것이다. 보궁(寶宮)이란 말의 기원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로 화엄경을 설하셨던 장소를 적멸도량(寂滅道場)이라 하는데서 기인하는데, 중인도 마갈타국의 가야성 남쪽 니련선하 근처의 보리수아래 금강좌(金剛座)를 지칭한다.


영각(구하스님 글씨)
건물은 역대(歷代) 주지(住持) 및 큰스님들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건물로 정면 8 칸 측면 3칸의 긴 장방형(長方形) 평면(平面)으로 된 팔작집이다. 초창연대는 분명치 않으며 현재의 건물은 1704년(숙종 30)에 지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영자전(影子殿) 이라 불리다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각의 앞에는 자장매 나무가 지키고 있다.

삼성각三聖閣(구하스님 글씨)
삼성각의 초창은 고종 7년(1870) 영인대사(靈印大師)에 의하여 이룩되었으나 현 건물은 1935년 경봉선사(鏡峰禪師)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삼성(三聖)은 고려말의 고승이었던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세 분의 큰스님을 지칭한다.

개산조당
개산조당은 용화전 옆 서쪽에 위치한다.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전각 정면에 개산조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솟을문은 해장보각의 조사문으로서 ‘솟을삼문’형식이며 해장보궁(海藏寶宮)으로 통하는 문의 3칸 건물인데 중앙 칸이 양 측면 칸보다 높게 솟아 ‘솟을삼문’이라고도 한다. 3칸 모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건물형식은 조선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祠堂)의 솟을삼문과 같다.

9세 신동이 쓴 글씨라 함.
🧘♂️기타 글씨체




2025년 3월 9일 14시 통도사 자장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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