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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사- 유네스코 세계유산/통도사

통도사 천왕문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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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은 보물로 승격 되었음


「양산 통도사 천왕문」은 1713년(숙종 39)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 다음해인 1714년에 중건하였다는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문(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雘記文), 1716년> 기록과 천왕문 내부에 봉안된 사천왕상이 1718년(숙종 44)에 제작되었다는 묵서(墨書)가 확인되어, 건립시기를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사찰 산문(山門)중 보기 드문 사례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구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좌·우 협칸에는 사천왕상 2구씩 봉안하였고, 어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상부가구는 대들보 위에 종보가 올라간 2중량(二重梁) 5량가 구조이며, 중대공과 종대공은 판재를 운공형으로 초식(峭飾)한 파련대공*을 구성하였고, 대공 사이는 뜬창방과 행공첨차**를 설치하여 구조적인 보강을 하였다.

* 마룻도리를 받는 가로판대공에 초새김을 한 부재
** 외목도리와 장여를 받치는 짧은 공포 부재

공포는 1출목 운공받침 3익공으로 초익공과 2익공 최하부 쇠서는 연화쇠서형으로 장식하고, 2익공은 연봉쇠서를 놓았으며, 그 위에는 보머리를 고식(古式)기법인 삼분두로 간결하게 치목하고, 운공을 얹은 구조이다. 특히, 익공살미가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연봉 및 연화초각의 다포계 초가지로 짧게 치목된 것은 익공이 주심포나 다포가 점차 간략화 되어 가는 양식적 변천과정 및 포작의 시대별 특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자료출처:국가유산포털)

통도사 천왕문
천왕문은 하로전으로 들어오는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계 익공식 맞배집으로 고려 충숙왕 6년(1337) 취암대사에 의해 초창하였으나 현재의 건물은 19세기 이후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비교적 간결하며 5량 구조로 되었다. 건물 내부는 중앙칸을 통로로 하고 좌우 측간에는 목조의 거대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배치하고 있다.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사천왕(四天王)은 욕계 6천(욕계육천 : 四王天, 兜利天, 夜摩天, 兜率天, 化樂天, 他化自在天) 가운데 제2천(第二天)인 도리천(兜利天 : 중앙의 제석천과 사방에 각 8천을 합하여 모두 33천이다)의 천왕(天王)인 제석천왕의 외장(外將) 으로서 사주세계(四洲世界)를 순행하면서 착한 자를 상주며 악한 자를 벌하 면서 동시에 정법을 보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보통 천왕문에는 사천왕의 모습을 불화 또는 조각상으로 배치하나 이곳에서는 목조상(木造像)의 거대한 사천왕을 좌우에 배치하였다.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보검(寶劍)을 들었고,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 비파(琵琶)를,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용(龍)과 여의주를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이 보탑(寶塔)을 들고 있다.

사천왕의 지물(持物)은 경전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며 신라 이래의 조각이나 불화에서도 여러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이곳 사천왕의 조각수법은 다소 강직한 편이며 사천왕의 특징은 잘 나타나고 있다. 천왕문은 고려 충숙왕 6년(1337) 취암대사에 의해 초창하였으나 현재의 건물은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雘記)>의 기록에 따라 영산전이 중건된 1714년을 즈음한 시기의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의 구조는 비교적 간결하며, 내부 좌우 측간에는 거대한 목조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배치하고 있다.(자료출처: 통도사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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