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보물
남암산 아래에 있는 청송사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은 각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기고, 마감돌 위에 다른 돌로 2단의 모난 괴임돌을 끼워서 각각 윗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이 특히 길고 크며, 2층 몸돌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각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이 있고, 추녀가 두꺼워 지붕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약하며 처마는 수평으로 길이가 짧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이 탑은 기단의 짜임새가 정연하지 못하고, 1층 몸돌이 지나치게 큰 반면 지붕돌이 작아서 좋은 비례로 보기 어려우나, 지방에 분포된 신라 석탑의 한 예로 주목할 만하다. 또한 1층 몸돌의 괴임돌이 다른 돌로 되어 있는 점은 탑의 특이한 조형과 아울러 9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을 짐작하게 한다.
1962년 해체, 수리할 당시 위층 기단에서 동제사리함이 발견되었다. 그 안에 청동여래입상 1구를 비롯하여 유리구슬 16점, 수정으로 만든 곱은옥 1점, 관옥 1점 등 30여 점이 발견되었다.
간월사지 남‧북 삼층석탑울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2기의 석탑은 상하층 탱주 2:2의 8세기 신라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탑신의 옥개받침이 모두 5단인 점, 각층 탑신 및 노반받침이 2단인 점 등 구성에 있어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초층 탑신에 새겨진 부조상이다. 탑 모두 중앙에 커다란 문비를 두고 좌우에 문을 지키는 수호신인 권법형 금강역사를 새겨 넣었다.
조각 구성은 같지만 세부표현에 있어 차이가 있다. 즉 암좌에 서서 한손을 위로 올려 내려치려는 권법형 자세는 동일하지만, 남탑의 경우 문비 내에 서수형 문고리를 새겨 넣었으며 신장의 머리에 원형의 두광을 표현하였으나 북탑의 경우 문비 내에 고리를 생략하였고 신장 역시 광배를 생략한 점이 다르다. 초층 탑신에 문비와 금강역사를 새긴 것은 탑신 내부에 사리장엄을 봉안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산 통도사 봉발탑 / 보물
영축산(靈鷲山)에 자리한 통도사는 우리나라 3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사찰(佛寶寺刹)이며,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운 절이다. 자장율사가 당나라로부터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와 승복의 하나인 가사(袈裟),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모시고 창건하였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중요한 절이었다.
이 봉발탑은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돌은 아래·가운데·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연꽃조각과 받침부분의 기둥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각물과는 품격의 차이가 느껴지므로 동시대의 작품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양산 통도사 삼층석탑 /보물
양산 통도사 삼층석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이다.
석탑의 높이는 3.9m 기단폭은 1.8m이며, 기단은 여러 매의 장대석을 사용해 지대석을 구축한 후 올려 놓았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각 1개의 부재로 조성되었다.
양식적 특징으로는 첫째, 하층기단의 각 면에 우주와 탱주를 생략하며 안상을 조각했다. 신라석탑에서 양산 통도사 삼층석탑과 같이 우주와 탱주를 생략하며 기단부에 안상을 조각한 것으로는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 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 칠곡 기성리 삼층석탑,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옥개석의 양식으로 전각의 경쾌한 반전과 낙수홈을 들 수 있다. 보편적인 신라석탑의 낙수면은 곧게 일직선으로 조성되어 전각의 반전이 날렵하게 조성되고 있다. 이같은 예를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과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 등에서 볼 수 있는바, 이들 석탑이 모두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을 볼 때 이 석탑 역시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산 통도사 석등/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우리나라 3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인 통도사 관음전 앞에 놓여 있는 석등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8각의 받침돌을 3단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의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고, 윗면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조각했다. 가운데기둥은 중앙에 3줄의 테를 둘렀다. 윗받침돌에는 위로 솟은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4각의 화사석은 각 면에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퍼져나오돌고 하였다.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았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보주(寶珠: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통일신라의 석등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꽃장식이 세밀하지 못한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오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오층석탑(五層石塔)은 탑신에 사천왕상이 부조된 고려시대 석탑이다. 원래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삼정리 대곡사지(大谷寺址)에 있었던 것인데, 1966년 11월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이전 · 복원하였다. 무너져 있는 탑을 수습해 왔기 때문에 옥개석의 모서리 부분은 파손된 것이 있었으며, 기단부와 상륜부가 없어져 이전할 때 박물관에서 보충하였다. 탑의 높이는 3.2m로 약간 고상한 느낌을 준다.
제1층 탑신의 옥신석에는 동쪽면에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 서쪽면에 광목천왕상(廣目天 王像), 남쪽면에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 북쪽면에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 등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면석에 꽉 들어차게 부조되어 있다. 이 사천왕상은 조각이 정교하지는 못하나 곡선이 부드러우며, 각 천왕의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천왕은 불교에 귀의한 중생을 수호하는 4신으로, 사찰의 천왕문 안에 좌우로 나뉘어 안치되기도 하고 불교 조형물의 표면에 조각되기도 한다. 제4층 몸돌에 네모난 사리 구멍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사리장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범어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이 탑의 특징은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위·아래층 기단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대신 안상(眼象)을 큼직하게 조각한 것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평평하고 얇은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어졌다.
범어사 석등/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범어사 안에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보통 금당이나 탑 앞에 두는데, 이 석등도 원래는 용화전(龍華殿) 앞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절내의 종루와 그 자리를 바꿔놓은 것이다.
석등은 3단의 받침 위에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형태로, 각 부재가 8각을 이루고 있다. 받침부분은 가운데기둥을 사이에 두어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아오르는 연꽃무늬를 새겨 대칭적으로 표현하였다. 화사석은 4면에 네모난 창을 두었는데 창의 가장자리마다 창문을 달았던 10개의 구멍흔적이 남아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고, 꼭대기에는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위로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후대에 보수한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빈약하고, 윗받침돌이 두터워서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범어사삼층석탑(보물 제250호)을 세운지 3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만들었다고 하나 양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9세기경인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에 세운 탑으로, 일제시대에 크게 수리를 할 때 기단 아래부분에 돌 하나를 첨가하는 바람에 기단부가 너무 크고 높은 느낌을 준다. 밑에 둘러진 난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원효암 입구에 있는 3층 석탑이다. 이 암자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머물면서 왜병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전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삼층석탑(부산시유형문화유산)이 하나 더 서 있다.
원래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바닥돌 위에 3층의 탑신만을 올리고 있다.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는데, 2층과 3층 몸돌은 돌의 재질이나 비례로 보아 후에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두툼한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어 곡선미가 느껴지고,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인 탑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원래의 터에 다시 세워 놓은 것으로, 원효암의 금당자리와 창건시기를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삼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경남 합천의 상천리 마을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60년 부산의 동아대학교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기단의 아래받침돌은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든 것으로, 그 위에 1층 기단(基壇)과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기단과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각 층의 비례가 안정되어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고려 후기∼조선 전기 사이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원효암에서 서북쪽으로 30m 떨어진 공터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세웠다.
원래의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세우고 머리장식을 얹었을 터이나, 지금은 아래층 기단과 머리장식의 일부가 없는 상태이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는데, 2층과 3층의 몸돌은 후대에 만들어 끼운 것이다. 각 층 지붕돌에는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세워진 시기는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즈음일 것으로 짐작된다.
동축사삼층석탑/울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동축사는 『삼국유사』「황룡사장육(皇龍寺 丈六)」조에 의하면, 573년(진흥왕 34)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그 후 934년(경순왕 8년), 고려 정종(靖宗)대, 1457년(세조 3), 1931년, 1975, 2005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동축사 삼층석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된 기단은 면석(面石)이 모두 없어져 원래의 정확한 높이를 알 수 없다. 탑신부는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이 모두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 탑신의 사방에는 우주를 모각하고, 탑신부의 옥개 받침은 1·2층은 5단이나 3층은 3단으로 조각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과 보개(寶蓋)만 얹혀 있는데, 돌의 재질이 탑신부와 다른 사암 계통이어서 이 석탑을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쳤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현 위치로 옮겨졌으며, 기단부 일부는 부재를 첨가하여 복원하였다
범방동 삼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터에 서 있는 탑으로, 절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탑은 2층 기단(基壇)을 쌓고 그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의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가지런히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1층에 비해 2층이 급격히 줄었고, 3층은 2층과 비슷하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이며,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시대에 절을 지으면서 이 탑도 같이 세운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각 부분에 새긴 조각수법이나 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보인다.
삼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이 삼층석탑은 총 높이가 3.2m인 아담한 규모로 전체적으로 비례가 적절하고 균형미를 갖춘 탑이다. 기본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전형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하층기단에 비해 축소된 상층기단 및 상・하층 기단의 1:2 탱주 비율, 작은 규모의 탑신부, 4단의 옥개받침 등을 지니고 있어 통일신라 하대인 9세기 후반경에 조성된 석탑으로 보인다. 현재 부산 지역에는 보물 범어사 삼층석탑이 4단의 층급받침으로 도치된 노반에 後補한 보주를 포함하여 總高가 3.58cm이였음에 비하여 이 석탑은 규모상 범어사 석탑에 비견될 수 있다. 또 부산시 유형문화유산으로는 울주 대곡사지의 부산대 박물관 오층석탑을 비롯하여 합천 대병리의 동아대 삼층석탑, 원효암 동편, 서편 삼층석탑 등등이 있으나 모두 부재가 완전하지 못하고 후보한 형식인데 비하여 이 석탑은 완전한 부재를 갖춘 점에서 높이 평가 된다. 따라서 9세기 전형적인 석탑 양식과 그 당시의 대표적인 모습을 갖췄다는 점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문화유산이다.
해운정사삼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해운정사 경내에 위치해 있는 이중기단 삼층탑신의 석탑이다. 상륜의 노반 이상이 결실되었으나 석탑의 구조 및 비례에서 전형적인 이중기단의 신라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석탑은 원래 경주에서 대구로 이건되었다가 경주 손재림박물관 정원에 있던 것이 기증에 의해 해운정사로 반입된 것이다.
○ 기단부를 구성하는 하층기단, 상층기단의 부재가 4-4-2이며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매씩으로 정연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단부 상하층의 탱주 숫자가 1:2이며 각부의 구성요소를 생략없이 모두 표현하여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특히 초층 몸돌에 안쏠림이 나타나며 4면에 새겨진 문비의 형태는 전통적인 문비형태에 기본을 두고 일부 변용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노반석을 3층 지붕돌과 한 돌로 처리한 방법은 신라 말부터 나타나는 소형석탑의 양식 범위 안에 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이 석탑은 신라양식에 기본을 두고 상층기단부의 비례의 변화와 초층 몸돌 변용 등 부재의 간략화 속에서도 전통적 석탑 양식을 따르려는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석탑의 재료로 쓰인 화강암은 흑색의 흑운모와 석영과 사장석의 함유가 적절한 양질의 암석으로 흔히 말하는 남산 화강암이다. 따라서 채석지는 경주시 내남면 일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선암사 삼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선암사 극락전 옆 마당에 세워져 있는 이 석탑은 3매의 옥개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규모가 작은 석탑이다. 석탑 부재의 크기 및 형태와 전각 체감율을 고려할 때 1층, 2층, 3층의 동일한 삼층석탑 옥개석으로 판단된다. 1층 옥개석은 지면과 맞닿은 아랫부분이 흙속에 많이 파묻혀 있지만 옥개받침이 4단이며, 낙수면과 옥개받침 등의 치석이 대체로 좋은 편이다. 이 석탑은 조각수법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 특히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삼층석탑/부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원효암에서 서북쪽으로 30m 떨어진 공터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세웠다.
원래의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세우고 머리장식을 얹었을 터이나, 지금은 아래층 기단과 머리장식의 일부가 없는 상태이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는데, 2층과 3층의 몸돌은 후대에 만들어 끼운 것이다. 각 층 지붕돌에는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세워진 시기는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즈음일 것으로 짐작된다
범어사 고려삼층석탑부/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
범어사 고려삼층석탑은 전체 높이가 1.8m이며, 상하 이중기단에 전형석탑 양식을 지닌 삼층석탑이다. 지대석과 1층 옥개석, 2·3층 탑신석 및 상륜부가 결실되었으며, 석탑 부재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있다. 또한 4매로 구성된 하층기단 면석 중 1매는 별도의 석재로 보강되었다.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은 면석과 갑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하층기단 면석에는 고려 전반기의 규모가 작은 탑들에서 종종 보이는 것처럼 하대저석을 아래 부분에 조출한 후 그 위에 우주와 탱주를 각각 모각하고 있다.
석남사삼층석탑/울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석남사 삼층석탑은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높이는 2.5m이다. 원래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197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석탑의 하층 기단은 여러 장의 판석을 이용하여 결구하고 사방에 안상을 조각하였다. 그 상부에는 4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여 상층기단을 올렸다. 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우주(隅柱)와 1개의 탱주(撑柱)가 새겨져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정연하게 새겨져 있으며, 상층으로 갈수록 정연한 체감비를 느낄 수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각형 4단의 옥개받침이 있으며, 상면에는 3단의 받침을 새겨 탑신석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노반(露盤), 앙화(仰花), 보개(寶蓋) 등을 갖추고 있으며, 노반석 이상의 부재는 후대에 보수한 것이다.
석남사 삼층석탑은 전체적인 체감비가 우수하고, 표현기법 등을 고려할 때 9세기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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