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절 순례

탑과 석등 이야기-37(경남,남해안)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4. 25.
반응형


하동 진교리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진교면사무소에 자리하고 석탑으로, 원래 이명산(理明山) 내의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0년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으로, 아래층 기단이 상당히 넓어 보인다.

위층기단의 각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느린 곡선을 그리다 네 귀퉁이에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꽃봉오리모양의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아래층 기단이 넓긴 하나, 탑신의 몸돌이 지붕돌에 비해 높아 안정감보다는 높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진 3층 석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다.(자료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하동 쌍계사 석등/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지리산의 남쪽기슭에 자리한 쌍계사의 경내에 서 있는 8각 석등이다. 원래는 3단으로 이루어진 받침 위에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리고 지붕돌을 덮은 후 머리장식을 얹었을 모습이나, 지금은 화사석과 지붕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아래받침돌에는 복련(覆蓮:엎어놓은 연꽃무늬)을 둘렀고 윗받침돌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앙련(仰蓮:솟은 연꽃무늬)을 조각하였다. 가운데기둥은 가늘고 길며 중간이 부러져 있던 것을 나중에 맞추어 놓았다. 화사석과 지붕돌이 없어진 자리에는 꼭대기에 있던 머리장식만 놓여 있어서 낮은 받침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 등이 남아 있다.
석등의 화사석, 지붕돌이 없어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없으나, 가운데기둥의 단조로움과 위·아래받침돌에 새긴 세련된 연꽃무늬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자료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남해 신흥사지 삼층석탑/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신흥사의 옛 터에 있었던 3층 석탑으로, 탑을 품었던 절은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던 곳이나, 현재는 터만 남아 당항리 마을로 변해버렸다.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탑을 몇 차례 옮기다 1957년 마을 주민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는데, 옮길 때마다 각 부분의 돌들이 없어지거나 훼손되었다.

현재는 기단부(基壇部)가 모두 없어지고 탑신(塔身)의 1층 몸돌과 1·2·3층 지붕돌, 머리장식인 보개(寶蓋:뚜껑모양의 돌), 보륜(寶輪:수레바퀴모양의 돌) 만이 남아 있다.

고려말·조선초 즈음에 세운 석탑으로 추측되는데, 탑신의 2·3층 몸돌은 후에 보충해 놓은 것이다.(자료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남해 정지석탑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고려 우왕 9년(1383) 정지 장군이 관음포에서 왜구를 격파하여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으로, 남해지역 주민들이 손수 돌을 깎고 다듬은 것이다.

큼직한 자연바위를 받침 삼아 그 위에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은 사각형 4개, 조그만 원형 1개의 몸돌과 지붕돌 5개로 번갈아 층층히 쌓아 올렸다.

소박한 모습의 탑으로, 왜구로부터 남해지방과 백성들을 구한 애국정신이 고스란이 담겨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자료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남해 보리암 삼층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보리암이라는 암자와 가까운 남해금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 ‘보리암전삼층석탑’이라 불리고 있는 3층 석탑으로, 주변의 경치가 너무나 빼어나 더욱 유명해졌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塔身)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을 얕게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아래층에 비해 폭이 크게 줄었다. 탑신의 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직선을 유지하다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 꼭대기에는 보주(寶珠:구슬모양의 장식)만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허태후(김수로의 왕비)가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원효대사가 이곳에 모셔 두었다 하나, 두꺼운 지붕돌 과 3단의 지붕돌받침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거제 아주동 삼층석탑/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아양리에 있는 3층 석탑으로, 1935년 탑골이라 불리는 곳에서 밭을 갈던 중 박학중 씨가 발견하여 세워 놓은 것이다.
발견 당시 기단부(基壇部)와 머리장식이 사라진 상태였으며, 현재 3층을 이루는 탑신(塔身)만이 남아 있는데, 그나마 탑신의 2·3층 몸돌은 탑을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 지붕돌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의 1층 몸돌과 3층 지붕돌은 원래 탑의 석재가 확실하며, 몸돌의 기둥 모양 조각과 지붕돌의 받침 조각 수법은 우수한 편이다.(자료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남해 다정리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다천사에 세웠던 석탑이라 한다. 절의 내력과 역사는 알 수 없고, 다만 다천사가 용문사에 편입될 당시 탑만이 원래의 절터에 남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탑신부(塔身部)의 몸돌 2개와 지붕돌 2개만 남아 2층탑의 모습이지만, 원래는 3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이고, 지붕돌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3개의 보주(寶珠 : 작은 공모양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지붕돌이 두툼해지고 밑면의 받침이 3단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하동 탑리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마을에 무너져 흩어 있던 것을 1968년에 다시 쌓은 탑으로, 일명 ‘봉상사(奉常寺)탑’이라고도 한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새겼는데, 이는 목조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것이다. 탑신부의 몸돌은 2 ·3층에 비해 1층이 커보이며, 각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탑신의 1층 몸돌이 다른층에 비해 지나치게 큰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자료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