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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8.달밤에 고향 길바라보니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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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축국에서 남쪽으로 석 달 남짓 가서 남천축국 왕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 왕은 800백 마리나 되는 코끼리를 가지고 있다. 영토가 매우 넓어서 남쪽으로는 남해에, 동쪽으로는 동해에, 서쪽으로는 서해에 이르며, 북쪽으로는 중천축국과 서천축국, 동전축국 등의 나라들과 경계가 접해 있다. 옷을 입는 복장과 음식,
사람들의 풍속은 중천축국과 비슷하다. 다만 말은 좀 다르고 땅은 중천축국 보다 덥다. 토지에서 나는 물건은 무명, 천, 코끼리, 물소, 황소가 있다. 양도 조금 있으나 낙타나 노새, 당나귀 등은 없다. 벼는 있으나 기장이나 조 등은 없다. 솜이나 비단 같은 것은 오천축국에는 모두 없다. 왕과 수령, 백성들은 삼보를 지극히 공경하며, 절도 많고 스님들도 많으며,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진다.
산속에 (천사)라는 절이 하나 있다. 용수 보살(龍樹菩薩)이 야차신 (夜叉神)을 시켜 지은 것으로,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다. 산을 파서 기둥을 세우고 삼층 누각으로 지었는데, 사면이 모가 나면서도 둥근 형이다.
둘레가 300여 보나 된다. 용수 보살이 살아 있을 적
에는 절에 3,000명의 스님이 있었고 공양미도 15 섬이나 되어, 매일 3,000명의 스님들에게 공양하였다고 한다. 쌀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고 써도 다시 생기곤 하여 원래 양이 줄어들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절이 황폐해져 스님들이 없다. 용수는 나
이 70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입적하였다. 마침 남천축국의 길에서 오언시를 지어 읊어 보았다.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뜬 구름만 흩날리며 돌아가고 있네.
편지라도 써서 구름 편에 부치고 싶건만
바람이 급해 구름은 돌아보지도 않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는데
남의 나라 땅 서쪽 모퉁이에 와. 그리워하네
더운 남쪽 천축은 기러기도 없으니
누가 고향의 숲을 향해 날아가려나

원문 혜초

풀이 (지안 역주)

중천축국에서 석 달을 걸려 혜초는 남천축국으로 내려갔다. 그 당시 남천축국에는 서차루기
왕조가 있었다. 파타밀을 수도로 하고 200여
연간(563~757) 존속했던 나라다. [대당서역기]를 쓴 현장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풀라케신 2세가 통치할 때였다고 하였다. 현장은 이 나라를 마가랄차국이라 표기했다.
왕이 사는 곳이란 혜초가 갔을 때 이 나라를 통치하던 승일왕(위자야디탸)이 머물던 수도 납석극 (나지 크 Nasik)을 말한다.
중천축국과 언어가 다르다고 한 것은 인도는 많은 종족이 사는 나라로 많은 언어가 있다. 지금도 인도는 공용어가 15개나 된다. 힌두교에 의한 전통 풍습이 남아 있어 문화적인 통일성은 어느 정도 있지만 언어의 차이는 큰 편이다. 특히 남인도는 인도의 원주민이었던 드라비다 계통의 언어를 쓰고 북인도나 중 인도는 아리안 계통의 언어를 쓰고 있다.
남인도는 북회귀선 남쪽에 위치한 열대성 기후를 가지고 있으나 일부 지역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인도 전역에서 볼 때 가장 더운 지역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남쪽이 북쪽보다 더운 지역이라 할 수 있지만 인도의 서북부가 연중 최고
기온을 나타내고 있다.

산속의 큰 절은 법현의 [불국기]나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언급되어 있다. [불국기] 에는 가섭불승가람이라 하며 바위산을 뚫어 5층으로 지어졌다고 하였고, [대당서역기],에서
는 흑봉산이라는 산속에 인정왕이라는 왕이 용맹보살을 위하여 산을 뚫어 5층으로 된 가람을 지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혜초는 절 이름을 천사라 하고 이 절을 야차신이 지었다고 하였다. [불국 기]나 [대당서역기]에는 야차가 지었다는 말은 없다.
옛 문헌에도 귀신들이 건축을 하였다
는 이야기는 있다. 고려 때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도 경주에 귀신들이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용수 보살(AD 150~250년경)은 범어로는 이름이 니 가르 주나로 인도에서 대승불교를 일으킨 인물이다
남인도 비 달라 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영민해서 바리 문교의 베다를 모두 외울 정도였고 청년 시절에는 천문 ㆍ 지리 ㆍ의학 ㆍ역사 등을 통달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총명함만 믿고 한때 방종한 생활을 하다가 불교에
귀의하였다. 처음에는 소승을 공부하였지만 후에 대승으로 전향하였다. 삼장, 즉 경전과 논서, 율장에 모두 정통하였고 많은 논서를 저술하였다. 대표적인 저술로 [중론]과 [십 이문론][대지도론]
등이 있다. [대지도론]은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해석한 논서이고, [십 주 비바사론]을 지었는데 이는 [화엄경]을 해석한 것이다. 용수는 [부
법장인연 전]에 부처님의 법등을 전해 내려온 조사
법맥 순위에 서천 14조로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용수 보살을 대단히 존중해서 제2의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일컫기도 하였으며 [화엄경]을 용수 보살이 용궁에서 가져왔다는 용궁장래설의 전설도 생겼다. 용수의 700년 장수설도 전설적인 이야기로 용수가 신약을 만들어 복용하고 장수를 누렸다는 설이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용수보살 전]이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700년 장수설은 없다.
야차는 범어로 약챠인데 힘센 귀신의 일종이다.
불교에서는 천룡팔부라고 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종류의 신이한 존재가 있다고 하는데, 야차도 그중의 하나다. 야차에도 허공을 날아다니는 비행야차와 하늘에 사는 천야차, 땅에 사는 지야차 등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오언시에는 혜초의 향수를 달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달밤에 바람이 불어 하늘에 흩날리는 구름을 보고 고향에 편지를 부치고 싶다는 망향의 정이 일어나 순례자의 여로에 객수가 되어 가슴이 뭉클해지며 쓸쓸함이 느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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