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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북의 사찰

최정산 운흥사-168

by 돛을 달고 간 배 2008.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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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사는 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 운수스님이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동림사(棟林寺)라고 불렀다고 구전되어 내려온다. 운흥사의 사명에 관련해 전설이 하나 있다.

당시 운흥사는 3개 군에 걸쳐 있고 특히 청도와 대구 사이의 길목에 자리해 있었다. 창건 당시에는 산 정상에 사찰이 자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풍족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귀찮아하는 주지스님은 “연못을 메우면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진다”는 꿈 속에 나타난 어느 노인의 말을 따라 그대로 연못을 메우니 갑자기 어디선가 하얀 학이 나타나 몇 번 구슬피 울고는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이 때부터 운흥사는 인심을 잃어버려 손님이 뚝 끊어지고 사찰의 살림이 점차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운흥사는 절을 곡산(谷山)으로 옮기고 ‘수암사(藪巖寺)’라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역시 신도가 찾아오지 않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절 이름을 운흥사로 바꿨다. 그랬더니 운흥사는 다시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고 옛 명성을 이어가게 됐다고 한다.

운흥사측은 사찰의 창건에 대해 운흥사 뒤편 최정산 850m 지점 100만편 부지에 최초로 가람이 생겼으며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조선 광해군-영조 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1760년(영조 36) 무렵 간행한‘여지도서(輿地圖書)’대구부(大邱府)의 불우(佛宇)조에는 최정산 운흥사가 실려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최정산 중턱에 자리한 운흥사는 아래로는 대구의 상수원인 가창댐을 굽어보고 울창한 숲이 외호하는 자리에 다소곳이 틀어 앉아 있다. 또한 운흥사를 비껴가는 계곡의 수질이 좋고 최정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좋아 인근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운흥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사명을 2번 바꾸었고 사찰의 위치 역시 옛 자리의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이 곳에서 승병을 지휘해 왜적을 격퇴했다고 전한다. 무언가 사연이 있고 역사도 간직하고 있지만 현재의 운흥사는 있는 듯 없는 듯 산사가 가지는 미덕과 운치만을 간직한 채 유유히 자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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