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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전남의 사찰47

대웅전 찾아-여수 흥국사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 보조국사 지눌이 처음 지은 사찰이다. 나라가 번성하면 이 절도 함께 번창할 것이라는 흥국의 염원을 담아 이름을 흥국사라 하였다. 불법 그 자체보다는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가 강한 절이었기 때문에,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던 기도처로의 역할이 컸다.보물 여수 흥국사 홍교 (麗水 興國寺 虹橋) Arched Bridge of Heungguksa Temple, Yeosu흥국사 입구에 있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이다. 개울 양 기슭의 바위에 기대어 쌓았는데, 부채꼴 모양의 돌을 서로 맞추어 틀어 올린 다리밑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이루고 있다. 양옆으로는 둥글둥글한 돌로 쌓아올린 벽이 학이 날개를 펼친 듯 길게 뻗쳐 조화를 이룬다. 홍예의 한복판에는 양쪽으로 .. 2024. 6. 19.
대웅전을 찾아-만덕산 백련사 대웅전 가보고자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던 백련사를 가게 되었다. 신라의 고찰로 번영과 쇄락을 거듭하면서 소실과 중창을 거쳐 지금에 이른 백련사. 지눌이 결성한 수선결사, 천태종지를 천명한 시기, 정다산의 흔적을 느끼는 시기들. 그러한 흔적을 간직한 곳이 백련사다.보물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 (康津 白蓮寺 大雄寶殿) 강진 백련사는 고려말 원묘국사 요세(1163∼1245)의 결사처로서 조선시대에도 많은 승려들이 수행했던 사찰이며, 주불전인 대웅보전은 1760년 화재 이후 중창 불사를 통해 1762년에 중수 건물이다.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의 문화유산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18세기 불전 건축의 장식화 경향을 대표하는 사례이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형식이다. 제공의 외부.. 2024. 6. 16.
대웅전을 찾아-화엄사 대웅전 보물 구례 화엄사 대웅전 (求禮 華嚴寺 大雄殿) Daeungjeon Hall of Hwaeomsa Temple, Gurye 화엄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화엄사의 건물 중 각황전 다음으로 큰 건물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인조 8년(1630)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만든 우물 천장이며, 삼존불 위쪽으로 장식적인 성격을 띠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놓아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높이고 있다. 규모도 크고 아름다우며 건축 형식의 특징과 균형이 잘 잡.. 2024. 6. 12.
대웅전을 찾아-화엄사 각황전 각황전과 사사자 삼층석탑 각황覺皇이라 듣기만 해도 건방진 태도가 하늘을 찌른다. 나는 화엄華嚴의 곳간 아래서 쉬어 가는 나그네 인데 세상의 장엄이란 것 중에 제일이 화엄이라. 여즉 다시 와서 본 화엄의 자태는 각황을 모시고 있음직 하구나.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큰 절이었고,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탄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보 구례 화엄사 각황전 (求禮 華嚴寺 覺皇殿) Gakhwangjeon Hall of Hwaeomsa Temple, Gurye 본래 이 자리에는 2층 4면 7칸의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을 의상조사께서 조성 하였으나 정유재란때 소실 되었다. 계파 성능선사.. 2024.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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