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렇게 희망하고 기다리던 봉정암 순례의 여정에 접어들지만, 봉정암에 미리 예약을 못한 관계로 백담사 주차장 옆 상가에서 민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부터 산행을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가는 버스가 9시부터 운행을 하기 때문에 9시부터 여정을 시작해서는 도저히 시간상 하루 일정으로 만들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후 4시경 상가 식당에서 황태구이 정식으로 저녁 끼니를 해결하고 내일을 위하여 휴식에 들어갔다.
새벽2시 30분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베낭에는 물과 비상 간식만 넣고서 산행을 시작한다.
용대리에서 백담사 정문까지 랜턴 불빛에 의지하며 7km를 빠쁜 걸음으로 도착하니 1시간이 걸렸다.
새벽 4시
이정표는 용대리에서 7킬로미터 올라왔음을 말함과 동시에 10.6키로미터를 가야함을 말해주고 있다.<내려 올 때 찍음>
불빛이 새어나오는 백담사를 지나치고 입산금지라고 막아놓은 백담 탐방 안내소를 지난다. 동계는 4시부터 산행이 가능 하기에 영시암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영시암까지는 한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터벅 터벅 걸음을 옮기다가 길을 제대로 확인 못해 다른 길로 왔다 갔다 하다보니 몇분의 시간을 지체도 하면서 영시암에 도착하니 예정시간인 한시간을 조금 초과하였다. 예불이 끝나서인지 칠흙같은 고요만이 주위를 감싼다.
법당에 불이라도 켜져 있었으면 잠시의 기도라도 하련만
영시암 법당마루에 앉아 쏟아지는 새벽 별빛을 바라보며 또 언제 이런 행복감을 느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몇분의 명상을 하였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나를 스치고 간 날들의 미혹함을 참회하며 내안의 탐욕과 어리석음과 성냄은 사그러지라고 욕심 많은 기원도 해본다. 먼 곳에서 공부하는 딸내미의 건강과 학업도....
십여분 남짓 휴식을 한 후
다시 어두운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네 인생살이는 간절한 기원일거야, 건강과 평안과 행복을 그런 염원이 곳곳에 흔적을 만들고 또는 투쟁에 이르기 까지 다 모두가 작든 크든 염원의 일상이다.
새벽을 스치며 주위는 서서히 밝아온다.
시간의 흐름을 어찌 막을 수 있으리.
계곡의 절경과 물소리가 경전 자체이지만 혼자 가는 길의 두려움인지 입에서는 관세음보살을 계속 염송한다.
계단과 눈덮인 길이 홀로가는 나의 친한 벗이라고 홀로 되내이며.
내 안의 내인듯 내 아닌 양단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도 힘쓰지만 속세와 진세는 하나인 듯 둘이고, 둘 같이 보이지만 하나는 더욱 아니라네...둘도 하나도 내버려 두자.
수렴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은 내설악의 대표적 계곡으로서 전체적으로 아주 완만한 계곡으로 백담계곡에 비해 자연스러운 맛과 그윽한 운치를 느낄 수 있으며 경치가 수려하고 빼어나다.
특히 가을단풍과 어우러지는 계곡의 절경은 이 길을 설악산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단풍 길로 만들어 주며, 셀 수 없을 만큼의 소(沼)와 담(潭)이 계곡을 따라 펼쳐져 있어 아름다운 비경을 보여준다. 또한, 계곡에는 폭포(쌍룡폭포, 관음폭포, 용담폭포 등)와 폭호, 암봉 등의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수렴동에 관한 옛 문헌 기록으로 김창흡(金昌翕: 1653~1722), 홍태유(洪泰猷: 1672-1715) 등이 있으며, 수렴동 계곡과 폭포를 중국의 황산보다 경치가 아름답다고 표현하여 역사문화 명승적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출처,문화재청>
인생 행로에 평탄한 길과 힘든 길은 언제든지 교차할 틈만을 노리고 있다. 단지 어느 한 길이 길고 짧음만 다를 뿐.
영시암에서 시작한 산행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두시간 반을 지나면서 난코스 부분인 깔딱고개에 도착했다.
수려한 자연은 인간에게 참으로 많은 즐거움을 줄진데,이 고마움은 어찌 표현하리.
물이 있고 숲이 있네또한 길도 있다네.그 길에사람이 다니네.
계단식의 돌받침을 발의 신경이 놀라도록 밟으면서 겨우 올라와 인연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며 봉정암의 대웅전에 엎드려 예배 올리니 정말 최고의 감흥이 가슴으로부터 솟구친다.
새벽의 찬공기를 맞으며 랜턴 하나 들고 시작한 봉정암 순례의 여정은 대웅전에 엎드려 예배를 드리고 있는 감흥보다 여섯시간의 피곤한 마음이 먼저인 것을 느끼면서 나는 그저 초목처럼 흔들리는 필부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웅전 참배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봉정암의 영험하신 보살님을 만났다.
나의 모습이 안스러워 보였는지 공양간으로 이끄신다. 평소 긴 줄에 제공하던 바로 그 미역국...순간 눈이 번쩍 반짝인다. 혼자라서 밥도 양이 충분하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미역국 한 그릇의 우주다. 제일 맛있게 먹은 미역국이다.
공양을 끝내니 살것 같았다.
집 사람에게 카톡 사진을 날린다.
내가 그렇게 오고 싶었던 봉정암이라고...
답이 왔다. 이왕이면 하루 자고 오라고.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가기로 마음 먹었다고 얘기하고 발길을 사리탑으로 옮겨 갔다. 사리탑과 설악의 정경을 길길이 간직하며 사리탑 앞에 앉아 범어로 반야심경을 독송한다.
아르야왈로끼떼 보디삳뜨봐..중략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세상의 평화를 염원하며.
봉정암 오층석탑은 설악산 소청봉 아래 해발 1244미터 높이에 위치한 봉정암의 경내에 있는 높이 3.6m 규모의 석탑이다. 한용운이 쓴 『백담사사적기』(1923년)에 수록된「봉정암중수기」(1781년)에 따르면 지장율사가 당에서 얻은 석가불의 사리 7과가 이 탑에 봉안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봉정암은 통도사, 상원사, 정암사, 법흥사와 함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탑의 형식상 그 구성이 단순하고 탑신의 체감률도 적은 편이며 옥개석에 구현된 양식 등은 고려후기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그 조성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봉정암 오층석탑은 기단부를 생략하고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았다는 점,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이라는 점 그리고 고대의 일반형 석탑이 고려후기에 단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불교건축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출처, 문화재청>
정법계진언
नमो나무 समन्थ사만다 बुद्धनं 못다남 नं남
올라올 때 까지만해도 좋던 날씨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종무소에서 기왓장에 세상의 평안이라고 쓰고 기도비를 불전에 넣고 서둘러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눈발이 세어지면서 아침에는 몰랐던 길을 살펴보니 얼고 미끄러운 곳이 수시로 나타난다. 목 마르면 계곡의 물로 보충하면서 부지런히 내려오니 올라갈 때 보다 한 시간은 덜 걸린 것 같다. 주말이지만 춥고 날씨가 좋지 않아 등산하는 이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번엔 장시간 산행을 생각했기 때문에 등산화를 착용하지 않고 새로 산 스포츠화를 신어었다. 지금 발 상태를 보니 신의 한 수였다. 정말 발이 깨운하다. 물론 추천할 생각은 없다. 삐거나 발을 접히는 경우를 염두에 두질 않아야 하니까.
하지만 백담사 주차장 와서 보니 눈발로 용대리행 마을버스가 운행 중단이라는 안내문을 보고서 7킬로의 여정이 덤이라고...정말 걸을 복이 있구나?
더이상 지체할 여유도 없어, 피곤하다는 생각마저 잊은 체 또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마지막 2킬로 지점에서 고마운 트럭 기사님의 덕분으로 힘을 저축할 수 있었다.
오후 3시 이제 마산으로 귀가를 한다.
집까지는 5시간을 운전해야 한다.여러 곳에서 피곤함을 호소하지만,차만 믿었야지, 그 동안 날 따라 400여 사찰을 따라 다니며 좋은 기운을 받아 주인을 보호 하였서니 어지간히 정이 가는 나의 충복이다. 16년 넘겨 낡기는 했지만, 운전대를 잡고 페달을 밟으니 생각과는 달리 비로소 발의 군데 군데가 피로를 호소한다. 내리는 눈은 시야를 가리고 피곤한 눈은 운전을 방해한다.
휴게소에서 쉬다가 가다가를 반복하니 세시에 출발하여 열시가 지나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봉정암 당일치기 순례는 34km의 거리를 열시간에 걸친 발걸음과, 2시간의 참배, 7시간의 운전으로 보낸 힘들었지만 의미가 있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