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너무 유명하기에 잘 모르는 곳이
불국사다.
사적 전체가 찬란한 신라예술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불국사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하여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불국사 당간지주
사찰에서 법회法會나 의식意識이 있을 때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았다. 당을 매달았던 긴 장대를 ‘당간(幢竿)’이라고 하며,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양쪽에 세운 2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 라고 한다.
불국사에는 나란히 2쌍의 당간지주가 서 있는데, 높이는 동쪽 당간지주가 3.6m, 서쪽 당간지주가 3.45m이다. 각 기둥의 안쪽 면에는 쐐기목을 박아 당간을 고정시켰던 홈과 구멍이 뚫려 있으며, 서쪽 당간지주 사이에는 당간을 받쳤던 둥근 받침대가 남아 있다. 동쪽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것이지만, 서쪽 당간지주는 기둥 크기와 제작 수법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각기 다른 부재를 후대에 조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慶州 佛國寺 蓮華橋 및 七寶橋)
Yeonhwagyo and Chilbogyo Bridges of Bulguksa Temple, Gyeongju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체 18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가 작을 뿐 구조나 구성형식 등이 매우 비슷한데,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특이하게 구성한 점,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비슷한 구성 속에도 이 다리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동안 스쳐간 사람들의 발자국 탓에 많이 닳아서인지 조각이 희미해져 있어, 지금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어, 불국사의 조형에 조화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안양문/安養門
건물은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구역의 정문이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올라 이 문을 지나면 극락전이 보인다. 이 문은 8세기 중엽 불국사가 처음 세워질 때에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여러 차례 고쳐 세운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강릉 임영관 삼문인 객사문 국보를 본떠 1962년에 신축한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국보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慶州 佛國寺 靑雲橋 및 白雲橋)
Cheongungyo and Baegungyo Bridges of Bulguksa Temple, Gyeongju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체 34계단으로 되어 있는 위로는 16단의 청운교가 있고 아래로는 18단의 백운교가 있다. 청운교(靑雲橋)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白雲橋)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직선으로 딱딱해졌던 시선을 부드럽고 생동감있게 풀어주고 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여지는 반원아치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紫霞門 자하문
이 건물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구역의 정문이다. 백운교와 청운교를 올라 자하문을 지나면 대웅전이 보인다. 자하문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에서 발산되는 상서로운 자금색 광채가 서려 있는 문이라는 뜻이다. 원래의 문은 불국사를 처음 지을 때 함께 세워진 것으로 보이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현재의 문은 1781년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다시 세운 것이다.
국보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佛國寺 三層石塔 舍利莊嚴具)
Reliquaries from the Three-story Stone Pagoda of Bulguksa Temple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의 석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탑 내부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유물들이다.
중심부에 놓여졌던 사리외함과 함께 안에는 원구형으로 생긴 은제의 사리 내·외합과 금동사리합,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각종 구슬과 함께 있었다. 사리함의 주위에는 청동제 비천상과 1점의 원형동경과 1/4동경편, 목탑, 경옥제곡옥, 구슬, 향목 등이 놓여있었다. 사리함의 바깥 기단부 바닥에서는 비단에 쌓인 종이 뭉치가 발견되었는데, 종이가 한데 뭉쳐져 글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사리외함은 4면에 덩굴무늬를 좌우대칭의 모양으로 뚫어 새겼으며, 몸체를 받치고 있는 기단부도 무늬를 뚫어 새겼다. 지붕 위에는 덩굴무늬를 새기고 지붕 꼭대기, 모서리, 지붕 마루에는 연꽃으로 장식하였다. 지붕 끝에는 나뭇잎모양의 장식을 달아놓았다. 정교하게 투조된 뚜껑에 보석까지 감입된 8세기 사리기의 걸작이다.
은제 사리내·외합은 계란모양의 뚜껑이 덮힌 합으로서 은으로 도금하였으며 8세기 중엽 양식을 보인 화려한 연꽃무늬와 작은 동그라미를 찍어 만든 어자문(魚子文)으로 장식하였다.
금동 방형사리합은 앞·뒷면에 탑을 중심으로 양옆에 보살입상과, 옆면에는 인왕상을 선각(線刻)하였다. 뚜껑에는 3단으로 이루어진 탑 모양의 작은 꼭지가 있으며 합 속에는 향나무로 깎은 작은 사리병이 들어있었다.
이 곳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중엽에 간행된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으로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 되는 곳에 1행 8∼9자의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발견 당시 부식되고 산화되어 결실된 부분이 있었는데 20여 년 사이 더욱 심해져 1988년에서 1989년 사이 전면 수리 복원하였다. 불경이 봉안된 석가탑은 751년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워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경은 그 무렵 간행된 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본문 가운데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의 집권 당시만 썼던 글자들이 발견되어, 간행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중엽에 간행된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으로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 되는 곳에 1행 8∼9자의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발견 당시 부식되고 산화되어 결실된 부분이 있었는데 20여 년 사이 더욱 심해져 1988년에서 1989년 사이 전면 수리 복원하였다.
보물
경주 불국사 석조 (慶州 佛國寺 石槽)
Stone Basin of Bulguksa Temple, Gyeongju
경주 불국사 석조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수조의 형상이 원형인 백제시대의 석조와 달리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형상인 직사각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외면에 조각이 있는 점과 다른 직사각형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한 것이 특이하다. 특히 내부 바닥면의 화려한 연화문 조각은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뛰어난 조형의식과 높은 예술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인정된다.
보물
경주 불국사 사리탑 (慶州 佛國寺 舍利塔)
Stupa of Bulguksa Temple, Gyeongju
불국사 강당 뒤쪽의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탑으로,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서 말하는 '광학부도(光學浮屠)'가 곧 이 사리탑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여래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기단은 연꽃잎을 새긴 반원모양의 돌을 위 ·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鼓)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 강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탑신(塔身)은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 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둥에 의해 나뉘어진 4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후, 그 안에 여래상(如來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돋을새김하여 모셔놓았다. 지붕돌은 추녀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평면이 8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의 우에노(上野)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유산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신라시대 화장실 유구
불국사에서 발굴된 것은 변기 시설뿐이지만,
동궁과 월지에서 발굴된 수세식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 부속품들이 한자리에서 발견된 한국사 최초의 사례로, 현재까지 조사된 한국의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돌을 깍아 만든 수로관이 여러대의 수세식 화장실 구멍들과 연결되어 지하 배수로로 내려가는 구조가 보인다.
자료출처: 국가유산포털, 불국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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