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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싯다르타 서문 밖에서 노인을 만나다.(사문유관-서)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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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유관-싯다르타 서문 밖에서 사자死者를 만나다.
그때 태자는 다시 얼마 뒤에 왕에게 나가서 놀겠다고 아뢰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저 우타이가 이미 태자와 함께 벗이 되었다. 이제 만일 나가서 놀게 되면 혹은 전보다는 나아서 다시는 세속을 싫어하거나 출가하려는 마음이 없게 되리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곧 허락하였다.
이때에 왕은 또다시 모든 대신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태자가 이제 다시 나가 놀기를 청하였소. 나는 차마 거스르지 못하여 이미 허락하였소. 태자는 전에 동쪽ㆍ남쪽의 두 문을 나가서 이미 늙은이와 병든 이를 보고 돌아와 곧 근심하고 걱정하였소. 이제는 마땅히 서쪽으로 나가게 해야 하오. 내 마음은 그가 돌아와서 다시 언짢아할까를 염려하고 있소
.
우타이는 바로 그의 어진 벗이므로 이제는 나갔다 돌아와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기를 바라오. 경(卿)들은 도로를 잘 닦아 다스리고 동산 숲과 대관(臺觀)을 모두 엄하게 정돈하고 향과 꽃과 깃발과 일산을 전보다 몇 배 늘려 다시는 늙고 병든 이나 악취나는 더러운 것이 길옆에 있지 않게 하시오.”
신하들은 명을 받은 뒤 곧 외사(外司)에 말하여 도로와 동산 숲을 장엄하게 다스리고 화려하게 한 것이 평소보다 몇 배나 더하였으며, 왕은 또 먼저 아름다운 기녀들을 보내어 그 동산 안에 있도록 하였고 또한 우타이에게 명령하였다.
“만일 길옆에 상서롭지 않은 일이 있으면 방편을 써서 그의 마음을 교묘하고 달콤한 말로 꾀도록 하라.”
아울러 모든 신하에게 명하여 태자를 따르면서 모든 일을 엿보고 살피어 만일 불길한 일이 있으면 멀리 쫓게 하였다.

그때 태자는 우타이와 함께 백관들이 인도하고 따르면서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며 뭇 풍악을 울리는 가운데 성의 서쪽 문으로 나갔다.
정거천은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먼저는 늙은이와 병든 이를 두 성문에서 나타내어 온 대중들이 모두 보았으므로 백정왕이 시종들과 아울러 외사들에게 성을 내어 그들이 책망을 듣게 되었다. 태자가 지금 나올 때에는 왕의 통제가 엄준하구나. 나는 지금 죽은 이를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데 만일 모두 보게 되면 왕의 분노는 더하여 반드시 처벌과 죽임을 당하여 죄 없는 이들에게 억울함이 미치리라. 나는 오늘 나타낼 일은 오직 태자와 우타이 두 사람에게만 보이게 하여 다른 관속(官屬)들은 책망 받지 않게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한 뒤에 곧 내려와서 변화로 죽은 사람이 되어서 네 사람이 상여를 메고 여러 가지 향과 꽃을 시신 위에 뿌리며 온 집안 식구가 목 놓아 슬피 울면서 그를 보내게 하였다.
그때 태자와 우타이 두 사람만이 보았으며 태자는 물었다.
“이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향과 꽃으로 그 위를 장엄하고 다시 사람들이 목 놓아 슬피 울면서 보내는 것인가?”
우타이는 왕의 명 때문에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세 번을 묻자 정거천왕의 위신의 힘으로 우타이로 하여금 모르는 사이에 대답하게 하였다.
“이것은 죽은 사람입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무엇을 죽는다고 하는 것인가?”
우타이는 말하였다.
“죽음이라는 것은 칼바람[刀風]이 형체를 가르고 신식(神識)이 떠나가며 온몸의 감관이 다시는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세간에 있을 때에는 오욕에 탐착하고 돈과 재물을 아깝게 여기며 갖은 고생으로 일하여 오직 쌓아 모을 줄만 알고 무상(無常)함을 알지 못하다가 이제는 하루아침에 그것을 버리고 죽는 것입니다.
또 부모나 친척이나 권속에게 사랑을 받게 되다가도 목숨을 다한 뒤에는 마치 초목과 같이 되어 은혜와 인정이나 좋고 나쁜 것에 다시는 상관하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아서 죽음이란 진실로 슬퍼할 만합니다.”
이것을 듣자마자 태자는 마음이 몹시 떨리고 두려워하면서 또 우타이에게 물었다.
“오직 이 사람만이 죽는 것인가? 다른 이들도 그러해야 하는가?”
곧 다시 대답하였다.
“모든 세간 사람들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귀한 이도 천한 이도 면할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태자는 평소의 성품이 평온하고 조용하여 동요되지 않는 이였는데도 이 말을 듣고는 스스로 안정하지 못하여 곧 조그마한 목소리로 우타이에게 말하였다.
“세간에는 또한 이런 죽음의 고통이 있는데 어찌 그 가운데서 방일한 행을 하여 목석(木石)과 같은 마음이 되어서 두려움을 모른단 말인가?”
곧 수레 모는 이에게 명하였다.
“수레를 돌려 돌아가자.”
수레 모는 이가 대답하였다.
“전에 두 문을 나오다가 미처 동산에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서 돌아가서 대왕께서 몹시 성을 내셨고 책망하셨습니다. 이제 어찌 감히 그와 같이 한단 말씀입니까?”
이때에 우타이가 수레 모는 이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대로 곧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 그 동산 안에 이르자 향과 꽃과 깃발과 일산이며 여러 풍악이 울렸고 기녀들이 단정한 것이 마치 여러 하늘의 채녀(婇女)들과 다름이 없었으며, 태자의 앞에서 저마다 다투어 노래하고 춤추며 아름다운 자태로 그의 뜻을 즐겁게 하고 동요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태자의 마음은 안정되어 옮기거나 바뀔 수 없었으므로 곧 동산 안의 나무 사이 그늘진 곳에 머무르면서 그의 곁에서 지키는 이들을 물리치고 단정히 앉아 명상하면서 옛날 일찍이 염부나무 아래 있을 적에 욕계(欲界)를 멀리 여의고 제4 선정을 얻었던 일을 기억하였다.
그때 우타이는 태자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대왕께서 명하여 태자와 함께 지내는 벗이 되었습니다. 만일 잘잘못이 있으면 서로 깨우쳐 알게 해야 합니다. 벗으로서의 규범에는 그 항목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허물이 있는 것을 보면 곧 서로 지적하여 깨우치고, 둘째는 좋은 일이 있는 것을 보면 깊이 따라서 기뻐하며, 셋째는 괴로움과 재난이 있어도 서로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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