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인사 장경판전-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야산 해인사(1)-163

by 돛을 달고 간 배 2008. 1. 19.
반응형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에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 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곹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법손인 순응順應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에, 곧, 서기 802년 10월16일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에 자리에 창건하였다.
이리하여 화엄종은 개화기를 맞던 신라시대를 거쳐, 해인사를 중심으로, 희랑希朗대사를 위시하여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른다.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국내 최대 사찰로서 명산인 가야산 자락에 위치하여,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어 그 웅장한 모습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경의로울 뿐 아니라 송림과 산사가 어울어져 연출하는 설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젖게 한다.



海岡(해강) 金圭鎭(김규진)<1868-1933> 근세의 명필로 고종의 명으로 왕세자의 스승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그의 필적은 웅장한 편으로 특히 사찰 편액이나 주련 글씨가 많이 남아 있다.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천겁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요.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만세를 뻗쳐도 항상 오늘이네.
글은 涵虛(함허)/글씨 海岡(해강)

해동제일도량(일주문을 나가며)

해인총림(海印叢林)
봉황문(鳳凰門)
雷鳴天地同時吼(뇌명천지동시후)-우뢰 쇠에 천지는 사자후하고
雨霽江山一樣靑(우제강산일양청)-비 개니강산이 밝구나.
物極魚龍能變化(물극어룡능변화)-온갖 지극하면 어룡도 능히 변한다.
道精石佛自神靈(도정석불자신령)-도가 정미로우면 석불도 절로 신령스럽네.
글씨/海岡


海東圓宗大伽藍(해동원종대가람)
解脫門(해탈문)
毘盧遮那佛願力周法界(비로자나불원력주법계)
以最後勝體詣菩提道場(이후최승체예보리도량)
圓解脫深因登金剛寶座(원해탈심인등금강보좌)
伽倻山中成就無上正覺(가야산중성취무상정각)
海印三昧常說大華嚴經(해인삼매상설대화엄경)
一百四十功德不共二乘(일배사십공덕불공이승)
八萬四千法門高超十地(팔만사천법문고초십지)
비로자나불 원력이 법계에 두루 미치어
최후의 승체로 보리도량에 나오시어
원해탈 심인으로 금강보좌에 오르샤
가야산중에서 무상정각을 성취하시어
해인삼매에서 대화엄경을 항시 설하신다.
일백사십 공덕은 이승과 같지 않으시고
팔만사천 법문은 십지를 높이 뛰어넘으셨다.
해탈문의 주련은 위의 사진에서는 다 보이지는 않습니다.



반응형

'해인사 장경판전-유네스코 세계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야산 해인사-163(3)  (0) 2008.01.24
가야산 해인사-163(2)  (3) 2008.01.22
해인사 홍제암-161  (1) 2008.01.16
보현암/금강굴-160  (1) 2008.01.15
해인사 원당암-159  (3) 2008.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