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보리사
절 안에 한 구의 금동상(金銅像) 금으로 도금한 불상)이 있다.
여기 마갈타국(마가다Magadha)에는 옛적에 왕
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이 시라율저(실라티타
Silidiva)였다. 그가 이 금동상과 함께 금동(金銅) 법륜(法輪)도 만들었다고 한다. 바퀴가 둥글고 반듯하며 둘레가 30여보(步)나 된다.
이 성은 잰지스 강을 굽어볼 수 있는 북쪽 언덕
에 있다. 녹야원(鹿野苑 , 므리가다바 Mrgadava) 과 구시나 쿠시나가라Kusinagara), 사성 ( 라자그리하Rajagrha) 마하보리(마하보디Mahabodhi) 등 4대 영탑(靈塔)이 마갈타국 왕의 영토 안에 있다. 이 나라에는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지고 있다. 마하보리사(摩訶菩提寺)에 도착하고 나니 내가 본래 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너무나 기뻣다. 간략히 나의 뜻을 서술하는오언시를 지었다.
보리대탑 멀고멀어 걱정이었으나(不慮菩提遠)
녹야원의 길을 어찌 멀다 하리오.!(焉將鹿苑遙)
험로야말로 근심 되지만(只愁懸路險)
개의치 않고 업풍에 날리리라.(非意業風飄)
여덟 탑을 보기란 실로 어려운 일(八塔難誠見)
세월에 타서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參著經劫燒)
나의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져(何其人願滿)
오늘 아침에야 보고 말았네.(目覩在今朝)
(불려보리원/언장녹원요/지수현로험/비의업풍표/팔탑난성견/참저경겁소/하기인원만/목도재금조.)
혜초는 드디어 부처님의 성도지인 마하보리사에 도착하였다. 벅찬 감격이 가슴 깊이 일어나 그 기쁨을 시(詩)로 나타내보였다.
마하보리사는 부처님께서 성도한 곳에 세운 절이다. 인도 보드가야의 큰 보리수 앞에 세워진 절로 현재 이곳은 불교 제1의 성지가 되어 있다. 지금도 연중무휴 수많은 순례자들과 참배객들이 찾는 곳이다. 우람한 보리수가 탑 뒤에 아직도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마갈타국(마가다)도 16국 가운데 하나로 현재 인도의 파트나와 비하르 주 가야 지역에 있었던 나라다. B.C. 6세기 경 강대국의 하나로 국력을 떨쳤던 이 나라는 빔비사라 왕 (bimbisara
B.C.544~493) 이래 8대에 걸쳐 군주가 지배했다. 수도가 왕사성() 곧 라자그리하(Rajagrha)였다.
시라율저 왕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서는 계일왕(戒日王)이라고 한역되어 나오는 왕이다. 현장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이 왕이 현장을 환대하여 잰지스 강변에서 환영법회를 열어주었다
고 한다. 또 당나라 태종과 사신을 교환하며 우의를 다졌는데 당에서 사신 왕현책을 세 번이나 파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야원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도한 후 처음으로 설법한 곳으로 지금은 사르나트(Sarmath)라고 불린다. 사슴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사슴동산 즉 녹야원(鹿野苑)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녹야원을 마가다국의 영토로 혜초가 잘못 알고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바라나시 근교에 있는 녹야원은 마가다국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사성은 왕사성(王舍城)이다. 집들이 화려하여 왕이 사는 집과 같았다 하여 왕사(王舍)라고 불렀다는 설과 빔비사라 왕이 성을 지으면서 성이 완공되기 전에 미리 와서 살던 곳이라 사람들이 왕의 집이라는 뜻으로 도시를 왕사(王舍)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 성의 북문 밖에 빔비사라 왕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하여 지었다는 죽림정사가 있었다. 죽림정사는 인도에서 제
일 처음으로 지어진 절이었다.
마하보리사는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옛날 실론(현재의 스리량카)의 왕이 지었다고 건해진다.
4대 영탑이란 부처님의 유적지 가운데 4대성지라 할수 있는 네 곳에 세운 탑을 말한다.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 성도지인 부다가야, 설법지인 사르나트, 열반지인 쿠시나가라에 있
는 탑을 말하는데, 혜초는 영축산에 있는 법화경탑을 탄생지인 롬비니 대신 말했다고 보는 설이 있다. 또4대 영탑이 마가다국안에 있다고 했으나 이는 혜초의 착각으로 잘못된 기술로 본다.
왜냐하면 녹야원은 바라나시에 속하고 쿠시나가라 역시 마가다국의 영토가 아니기 때문이다.
멀고도 먼 길을 힘들다 하지 않고 찾아와보리대탑과 녹야원을 보게 된 감회로 기빼하고 있는 혜초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하보리사는 원음은 마하보디이다. 마하보디를 한자음으로 표기하여 摩訶菩提라고 표기하고 읽으면 마하보디와 유사하게 들릴것이다. 중국어와 인도어에 정통한 우리나라 사람이었을 경우 摩訶菩提를 대하였을 적에는 아마도 원음을 유추하였을 것이고 그러한 잘 전해진 모습이 남겨진 것이 "진언집"이다. 언제인가부터 마하보디가 마하보리로 바뀌었다. 왜? 잘 전해지던 보디가 보리로 바뀌었을까? 합리적 추론은 해방전후 어문 정책에 기인한 "구가음화 "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다. 구개음화현상에 보면 "보디"는 "보지"로 발음해야 한다. 성스러운 용어의 의미로는 합당하지 않다고 보았을 듯 싶다. 보디가 보리로 재탄생한 순간이다.
(순전히 개인적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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