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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부처의 깨달음

부처의 깨달음-2

by 돛을 달고 간 배 2018.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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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여래의 씨라고 합니까.』 문수사리는 답하였다.『이 몸을 씨라고 합니다. 진리에 어두운 어리석음과 집착도 씨입니다. 탐욕과 진심과 어리석음을 종자로 합니다. 도리에 어긋나는 네가지 과오...<이를 네가지 전도된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무상/상, 고/락, 부정/정, 무아/자아> 다섯가지 번뇌와, 육입과 일곱가지 안주하는 곳<칠식처>과 팔사법<팔정도가 아닌>과 아홉가지 고뇌와 열가지 악행<십계를 범함>까지도 모두 씨앗이며, 육십이견이나 모든 번뇌가 부처의 씨앗입니다.』『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생멸의 변화를 초월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을 보고 깨달음의 경계에 든 사람은 다시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고원의 메마른 땅에서는 연꽃이 자라지 않지만 더럽고 습한 땅에서는 잘 자랍니다. 그와 같이 영구히 변하지 않는 진실을 보고 깨달음의 경계에 든 사람은 종내 다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일으키지 않으며,번뇌의 진흙속에 중생이 있어 능히 부처님의가르침을 일으킵니다. 또 공중에 씨를 뿌리면 싹이 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옥한 땅에서는 잘 자라는 것과 같이 영구히 변하지 않는 깨달음의 경계에 든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으키는 일이 없습니다. 수미산과 같이 영원한 주체에 대한 집착을 일으켜도 더욱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켜 부처의 가르킴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모든 번뇌가 부처의 깨달음을 일으키는 씨앗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해의 깊은 밑바닥에 들어가지 않으면 값을 알 수 없을 만큼의 비싼 보배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번뇌의 대해에 들지 않으면 일체를 아는 지혜의 보물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가섭이 탄식하여 말하였다.『참으로 훌륭합니다. 문수사리여 참으로 명쾌하게 설한 그대로입니다. 번뇌에 싸인 중생은 부처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이제 다시는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내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설사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중죄를 범한 사람도 더욱 발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으킬 수 있음에도 지금 저희들에게는 그 마음을 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성의 불구자는 오관의 정욕을 만족시킬 수 없음과 같이 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하여 온갖 번뇌가 없어진 성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서원은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수사리님. 어리석은 범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넓혀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보답합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하는 자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범부는 가르침을 들으면 능히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내어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봉행하는 승단을 진심으로 신봉하지만 자기만 깨달음에 정진하는 성자는 설사 생애가 끝나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지혜의 힘, 두려움을 모르는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어도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영구히 일으키는 일이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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