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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전북의 사찰

지리산 실상사-40

by 돛을 달고 간 배 2005.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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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를 찿아가는 길목엔 시원한 물줄기가 맞이한다.

옛 선사께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는 어떻게 피합니까?

스님 왈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게....

더위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대상인걸...

맡은 바 위치에서 무던히도 더위를 넘겨보자.

 




석장생과 나무장승이 마치 합창인양 노래를

들려 주는 것 같다.

버려라 또 버려라.. 무거운 짐 마음속 욕심일랑

벗어버려라.


실상사 안에 있는 극락전을 향하여 그 오른쪽에 서 있는 탑으로, 수철화상의 사리를 모셔 놓은 사리탑이다. 수철화상은 신라 후기의 승려로, 본래 심원사(深源寺)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번째 창건주가 되었다. 진성여왕 7년(893)에 77세로 입적하니, 왕은 그의 시호를 ‘수철화상’이라 하고, 탑 이름을 ‘능가보월’이라 내리었다.

탑은 신라 석조부도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아 맨 아래 바닥돌에서 지붕까지 모두 8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基壇)은 아래받침돌에 구름과 용무늬와 사자가 새겨져 있으나 마멸이 심하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가 삼중으로 조각되어 둘러져 있다. 8각의 탑몸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각 면에는 문(門) 모양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얇고 경사가 완만하며, 처마부분에는 엷은 곡선을 이루고 서까래를 새겼다. 지붕 경사면에는 기와골을 표시하였고, 그 끝에는 막새기와까지 표현함으로써 목조건축의 지붕 양식을 충실히 모방하였다. 꼭대기에는 몇 층의 단이 있고, 그 위에 원형이 작은 돌에 있을 뿐 모두 없어졌다.

탑 옆에는 탑비가 건립되어 있어서 이 부도의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있다. 비문에 의하면, 수철화상이 진성여왕 7년(893



극락전의 모습.... 서방정토 왕생을 염원하고

극락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불에 탔다가 다시 지어졌다. 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자료에 의하면 순조 31년(1831)에 지어졌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에는 세짝의 문을 달았고 양쪽은 한짝 씩의 문을 달았다. 건물 안은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뒤쪽 높은 기둥 사이에 후불벽을 설치하고 불단 위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실상사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유명한 철불이다. 통일신라 후기에는 지방의 선종사원을 중심으로 철로 만든 불상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는데, 이 불상 역시 한 예로서 당시의 불상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고, 정수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아담한 크기로 자리잡고 있다. 귀는 그런대로 긴 편이고, 목에 있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겨우 표현되고 있다. 좁아진 이마, 초생달 모양의 바로 뜬 눈, 다문 입 등의 근엄한 묘사는 이전의 활기차고 부드러운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깨선이 부드럽고 가슴도 볼륨있게 처리되었지만 전반적으로 다소 둔중한 느낌을 주며, 양 어깨에 모두 걸쳐 입은 옷 역시 아래로 내려올수록 무거운 느낌을 준다. 옷주름은 U자형으로 짧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에 유행하던 옷주름 표현기법으로 비교적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지닌 실상사 철제여래좌상은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8세기의 불상이 다소 느슨해지고 탄력이 줄어드는 9세기 불상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라는 점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실상사의 중심법당인 보광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두 탑이다.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창건하였으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이 곳에는 3층 석탑 이외에도 석등, 묘탑, 탑비, 부도, 철조여래좌상 등이 있어 유명하다.

탑은 2층으로 된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동서 두 탑 모두 탑의 머리장식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희귀한 예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의 정형을 보이며,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이며, 밑면의 받침은 4단이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는데, 그 정도가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하다. 특히 탑의 머리장식은 원래대로 잘 보존되어 각 장식부재들이 차례대로 올려져 있다.

이와 같이 두 탑은 규모나 양식이 같아서 동시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대작은 아니지만 돌의 구성이 정돈되어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람내에는 보물이 여기 저기

산재해 있다. 오랜 역사의 가르침이 묵묵히 나를 끌어 당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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