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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충청의 사찰

정방사를 찿아-71

by 돛을 달고 간 배 2006.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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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상(相)도 없이, 일체 여읨도 없이

충북 제일의 관음기도처인 정방사를 찾아 떠나는 길은 무상이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정방사를 찾아 가는 길은 눈 돌릴때 마다 꿈속에서 봄직한 정경들이 펼쳐진다.

충주호의 시원한 청풍호반, 푸른 호수와 나무, 굽이굽이 돌아가는 아기자기한 계곡들이 차창 밖을 빼곡하게 메운다.

정방사는 청평호반, 그 중에서도 얼음골이라 알려진 능강계곡의 왼쪽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정방사는 신라 문무왕(662년)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로, 더 없는 절경을 뽐내는 관음도량이다 .

초가을 정방사로 오르는 길은 역시 산이름의 명성답게 붉게 물든 낙엽이 비단에 수를 놓듯 산과 조화를 이루며, 산길을 오르는 길에 펼쳐져 있어 정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이처럼 이른 초가을에 암자로 오르는 일은 바쁘지 않아서 좋다.

비록 바쁜 마음으로 이 곳을 찾았다 하더라도 암자로 오르는 길을 걷게 되면 그 길은 바쁜 일이 없는 길이 되는 것이다. 능강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은 바위를 쉬게 하고 그 바위들은 나그네의 발걸음을 잡아놓고 놓아주지 않는다. 오르는 길에 잠시 바위에 앉아 천년을 회상한다.

법성은 원융하여 두 상(相)이 없으니

모든 법이 움직이지 않고 본래 고요하다

이름도 상(相)도 없이 일체 여윔도 없으리

의상대사의 법성게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른바 210 글자로 된'화엄일승법계도'의 첫머리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는 둘이 아님을 가르치고, 하나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다시 하나인 것이다. 어디에 상(相)을 붙일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산길을 오르면 한 사람이 빼곡하게 들어설 수 있는 작은 바위문이 이끼를 얹은 채 정방사의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다.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바위를 통째로 걸머진 작은 몸통의 원통보전이 탁 트인 청풍호를 바라보고 있다.

주지스님이신 석구스님은 정방사에 오거든 다른 입을 열지 말라고 한다. 오직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미묘한 한마디만이 있일뿐이라 한다.

정말 그러했다.

정방사 마당에 서서 큰 바위 등에 지고 시원스럽게 펼쳐진 산과 호수 그리고 바위와 함께 긴 호흡을 쉬고 나면 세상살이의 욕심 뿐 아니라 구도의 욕심조차 사라질 지경이다.

정방사 올라 관음보살에세 머리 조아리며 기도할 때 문득 유운당에 주련이 눈에 들어온다.

승거불지소무욕(僧居佛地所無慾)

객입선원보불비(客入仙源老不悲)

수행자가 불국정토에 있으니

조금도 욕심이 없고

나그네가 신선 사는 곳으로 들어서니

늙음 또한 슬프지 않구나

이처럼 정방사에 오르니 속세의 번잡한 생각이 한숨에 사라지고 신선세계의 글귀를 읽으니 신선이 된 하다

지금껏 외형을 보고 그 참뜻을 알지 못했던 범부에게 천년의 고찰이지만 천년고찰의 모습이 없음을 경험하고서야 그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것 같다.

정방사의 맑은 하늘과 푸른 숲, 그리고 청량감을 잔뜩 머금은 청풍호를 바라보면서 천년고찰의 참뜻을 알고 싶을 때 자욱한 운무속의 등불같은 고찰 정방사를 찾아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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