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성풍 사지 오 층 석탑/보물
성풍사터에 서 있는 탑으로,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두고, 5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기단은 각 층 모두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쌓아 올렸으며, 몸돌의 모서리마다 건물의 기둥을 세운 듯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얇으며, 밑면의 받침이 3층까지는 4단이고, 4·5층은 3단으로 줄어들어 일정하지 않다. 처마의 네 귀퉁이는 아래에서 올려볼 때 뾰족하게 보일만큼 날카롭게 솟아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있다.
탑 안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고려 목종 12년(1009)에 이 탑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이 터에서 무너진 채 있었는데, 1986년 3층의 지붕돌과 5층의 몸돌, 지붕돌을 새로 만들어 복원해 놓았다. 석탑은 그 만든 시기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드문데, 이 탑은 기록을 통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고 또 거의 완전하게 복원된 작품이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보성옥마리 오 층 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고려 성종 15년(966)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월림사터에 남아있는 탑으로, ‘벽옥탑(碧玉塔)’이라고도 한다.
형태는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느린 경사가 흐르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으며, 밑면에 1·2층은 5단, 3층은 4단, 4·5층은 3단의 받침을 두어 위층으로 갈수록 받침의 수가 줄고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1층 몸돌이 좁고 높은데 비해 2층 몸돌부터는 급격히 짧아져 균형과 비례가 잘 맞지 않는다. 조성시기는 고려 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진도상만리 오 층 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상만사 터라고 전해지는 곳에 서 있는 탑으로, 현재는 이곳에 구암사라는 새 절이 생겨 탑을 보호, 관리하고 있다.
형태는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희미하게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특히 몸돌 부분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부터 4층까지는 3단씩이고, 5층은 2단으로 줄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로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조각기법이 거의 형식적으로 변하고, 지붕돌 받침의 수가 일정하지 않아 고려 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장성 수산리 오 층 석탑/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장성읍에서 북쪽으로 약 1㎞ 떨어진 국도변 민가 안마당에 서 있는 석탑으로,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탑이 속해 있던 사찰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기단부(基壇部)는 땅속에 묻혀있어 구조를 알 수 없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이 쌓여 있다. 탑신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바짝 치켜올라갔으며, 밑면에 1·2·3층은 4단, 4·5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보주(寶珠:연꽃 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의 크기와 높이가 모두 급격히 줄어들었다. 기단부가 묻혀있어 탑 전체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아쉬우나, 탑의 균형미나 돌을 다듬은 솜씨 등이 뛰어나다.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장성 진원리 오 층 석탑/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진원리 뒷산 탑동이라는 곳에 있던 탑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몰래 빼내가려던 것을 주민들의 반대로 옮기지 못해 현재의 터에 자리 잡게 되었다.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며, 4층 이상은 잃어버리고 없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치켜 올라갔으며,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을 옮겨 세우면서 각 부재가 제대로 짜 맞춰지지 않아 탑신이 반듯하지 못하다. 또한 탑 전체가 가늘고 길어 안정감이 없는데,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한산사지삼층석탑/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탑동 마을 어귀에 있는 밭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뒤로는 종산(鍾山)이 펼쳐져 배경을 이룬다. 원래 이곳은 옛부터 한산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지고 이 탑만 남아있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두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인데, 일부가 떨어져 나가 시멘트로 발라놓는 등 보존상태가 좋지 않다. 기단은 네 모서리마다 별도의 돌을 다듬어 기둥처럼 세워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이 되고 있다. 탑신부는 2매의 돌로 이루어진 1층 몸돌을 제외하고는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거의 수평을 이루는데, 네 귀퉁이가 가볍게 위로 들려 경쾌함을 주고 있다. 꼭대기에는 놓여있는 자연석은 원래의 것이 아니고 후대에 비슷한 형태의 것을 조각하여 올려놓은 것이다.
비교적 크고 거대한 풍채를 보여주나, 2층 이상에서부터 몸돌과 지붕돌의 크기가 급격히 줄어들어 안정감이 떨어진다. 일부 양식들이 형식적으로 흐르고 있어, 시대가 내려가는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언곡사지삼층석탑/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비봉산의 연곡사터로 전하는 곳에 있었던 탑으로, 1927년 무정초등학교로 옮겨 세웠다가 1996년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찾아 복원해 놓았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기단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탑신의 몸돌에도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특히 3층 몸돌 앞뒷면에는 여래상을 도드라지게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급한 경사를 이루는 낙수면의 네 지붕선이 뚜렷하고, 밑면에 각각 1·2층은 4단,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돌 네 귀퉁이의 추켜올림이 밋밋하고, 밑면의 받침수가 4∼3단으로 줄어든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을 무정초등학교로 옮길 때 탑신의 1층 몸돌 밑바닥에서 금동불을 발견하였으나, 당시 일본인 교장이 학교 실습용 토지를 사들이고자 이를 팔아 버렸다고 한다. 1995년 해체복원 작업을 하면서 시 주민의 신고에 따라 원래 탑이 있던 곳을 발굴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래층 기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 학교에 남아 있던 위층 기단 및 탑신부를 모아 현재의 자리에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영광 단주리 석탑/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영광 단주리 석탑이 있는 월평 사지는 현전 하는 문헌자료에서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나 당간지주와 함께 석탑이 잔존하고 있고, 주변에서 기와 편 등이 확인돼 절터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석탑은 현재 3층까지 잔존하나 구전에 의하면 원래 7층이었다고 하며, 석탑의 지대석은 흙에 묻혀 있어 전체가 확실히 보이지 않으나 동쪽 변은 보이고, 긴 장대석을 2단으로 쌓아 마치 2중 기단의 석탑처럼 보인다. 석탑은 마모가 심하며 각 부재가 제 위치에 있지 않아 원형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잔존하는 지대석, 기단부와 탑신, 옥개석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담양연동사지 3층석탑/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연동사의 옛 터에 석불 1구와 함께 남아 있는 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윗면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네 모서리선이 목조지붕의 지붕선처럼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지붕돌 밑면에는 별도의 돌을 끼워 넣어 층급받침을 대신하고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로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무너져 각 부재들이 흩어져 있던 것을 1996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담양읍 오 층 석탑(보물 제506호)과 곡성가곡리 오 층 석탑(보물 제1322호) 등과 같이 백제계 석탑양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태안사삼층석탑/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태안사 내 연못 중앙에 마련된 작은 터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절 내의 광자대사 부도 앞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원래는 기단(基壇)의 한쪽 면과 탑신(塔身)의 1층 지붕돌, 2·3층 몸돌이 없어진 상태였는데,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로이 보충하여,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갖추고 있다.
기단 아래로는 탑을 옮길 때 마련해 둔 3단의 받침이 놓여 있어 전체적으로 높다란 풍채를 보인다. 기단은 각 층마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으며, 윗면에 3단의 얕은 층을 내어 윗돌을 괴고 있다. 탑신의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낮은 장식받침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이 만들어 올려놓은 것들이다.
(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신안흑산진리무심 사지 삼층석탑과 석등/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읍동마을 당산나무 밑에 놓여 있는 석탑과 석등으로, 주위에는 밭이 펼쳐 있고 뒤로는 상라산이 병풍처럼 배경을 이루고 있다. 절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주위에서 토기나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어, 지금도 불교신도들이 이곳에 찾아와 불공을 드리고 있다.
석탑은 땅 위로 기단(基壇)의 맨 윗돌만 드러나 그 아래는 모두 묻혀 있으며, 위로는 3층의 탑신(塔身)이 쌓여 있다. 탑신의 세 몸돌은 모두 위아래와 서로 틀이 딱 맞지 않아 원래의 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인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게 위로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받침돌만 남아있다.
탑 옆에 놓여 있는 석등은 3단을 이루는 받침돌 위로,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불을 밝혀두던 화사석(火舍石)이 없어져 버린 상태이다. 각 부분이 8각을 이루는 받침돌은 아래·위에 서로 대칭되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길쭉한 기둥을 두어 아래·윗받침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지붕돌 역시 8각이나, 각이 뚜렷치 않아 윗면의 여덟 모서리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둥근돌이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석탑도 거의 본모습을 잃고 있고, 석등 역시 화사석이 없는 상태이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로운 섬에까지 불교가 전파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 당시 섬사람들의 신앙생활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석등은 비록 일부이긴 하나 각 부분들이 온전히 남아있어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충분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보성계산리삼층석탑/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두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의 탑이다. 원래는 기단(基壇)의 일부가 없어지고, 탑신의 3층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따로 떨어져 흩어져 있었는데, 1989년 탑을 해체하면서 모두 수습하여 복원해 놓았다.
아래층 기단은 네 개의 돌을 바둑판처럼 짜서 이루게 하였으며,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위층 기단은 4장의 돌을 사방에 세워 면을 이루게 하고, 각 모서리마다 별도의 돌로 다듬은 기둥을 세워 두었는데, 원래의 것이 없어져 새로이 만들어 끼워 넣었다. 탑신부의 세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고,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적당히 줄어들고 있는데, 약간 높아 보이는 인상을 준다. 대체로 얇고 평평해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처마의 곡선 또한 가볍게 처리되어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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