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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

탑과 석등 이야기-42(충남)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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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사 오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만일사 영산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원래는 법당 앞에 있었으나 법당을 새로 보수하면서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널찍한 바닥돌 위로, 1층의 기단(基壇)을 쌓고, 5층의 탑신(塔身)을 차례로 올려놓은 모습으로, 탑신부의 1층 몸돌은 옮길 때 잘못 놓았는지 거꾸로 놓여 있다. 기단은 4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놓은 후,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으며, 맨 윗돌의 밑면에 연꽃무늬를 두어 장식하였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기단에서처럼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 떠 새겼고, 특히 5층의 몸돌은 4면에 부처의 모습을 도드라지게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2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의 선은 느린 곡선을 그리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기단이나 지붕돌의 조각양식이나,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영인오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아산 관음사 근처 야산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탑이 속해있던 절의 역사나 구체적인 유래는 전하지 않는다. 형태는 2층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일부 파손되었으며 위층 기단은 윗면에 활짝 핀 연꽃무늬를 두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딴돌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1층 몸돌 한 면에는 자물쇠 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위로 치켜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 1·2층은 3단, 3·4·5층은 2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의 받침대) 위로 복발(覆鉢:엎은 그릇모양의 장식)만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위로 오를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적당하고, 일부 파손되긴 하였어도 전체적인 탑의 모습이 비교적 완전하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인취사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학성산 기슭의 인취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기단부(基壇部)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이 쌓여 있고 탑의 머리를 갖춘 형태이다. 기단부는 돌 하나만이 바닥돌의 역할을 하며 놓여 있는데 그 윗면에 1단의 괴임돌이 있다. 그러나 탑신부의 재질과 비교하여 볼 때 같은 돌로 보이지 않는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 딴돌로 이루어져 있다. 1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이 4단, 2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가 많이 파손된 모습이다. 꼭대기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석재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나 주변에 많은 석탑 부재가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3층이상 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각부 양식과 수법으로 추측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관음사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관음사 사찰 내 대웅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로 3층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부는 탑신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파손되어 있으며, 위층 기단 위로 깎아둔 2단의 괴임돌 역시 모서리가 파손된 상태로 남아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딴돌로 조성하였다. 몸돌은 위로 오를수록 높이가 줄고 있으나 1층 몸돌이 다소 높직한 느낌이다. 몸돌 각 모서리에는 가지런한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을 뿐 별다른 장식은 없다. 두꺼워 보이는 지붕돌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약간 치켜올라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2층이 4단이고 3층은 3단이며, 각 귀퉁이에는 작은 종을 매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영탑사칠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영탑사 법당 뒤의 바위 위에 서 있는 7층 석탑이다.
『당진군사』에는 조선 정조 22년(1798) 연암당 지윤스님이 유리광전을 보수하면서 그 뒤 바위에 5층탑을 세운 후 절 이름을 ‘영탑사’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원래는 7층탑이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후 훼손되어 5층만 남아있던 것을 1920년대에 이 절의 신도들에 의해 다시 7층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한다.
바위를 기단(基壇)삼아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이 탑은 바위와 탑이 만나는 부분이 조금 어긋나 있어 원래의 자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탑신의 각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의 네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뜬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1층부터 5층까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처마의 선이 거의 직선을 이루고 있는 반면, 새로 만든 6층과 7층은 네 귀퉁이에서 심하게 들리고 밑면의 받침조각도 얇아서 서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은 지극히 간략화된 모습이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천장사칠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천장사 인법당 앞뜰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은 밑돌이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로 지붕 모양의 맨 윗돌을 덮어두고 있는데, 그 폭이 탑신의 1층 몸돌과 거의 같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으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그리 크지 않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새겨두었다. 4층 지붕돌에서부터 7층 몸돌까지 놓인 돌들은 제자리가 아닌 듯 어색한 모습이며,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 또한 아래의 7층 지붕돌과 크기가 맞지 않아 원래의 형태는 아닌 듯하다.
탑신부의 몸돌이나 지붕돌의 모습에서 고려의 양식이 보이고 있으나, 기단의 폭이 탑신의 1층 몸돌과 거의 같은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후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남문리오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남문리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널찍하게 마련한 돌단 위에 놓여 있다. 몇년 전까지 주변에서 기와조각이 발견되었고, 인근 민가 앞에서 작은 석불(石佛)이 발견되어 이곳이 절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대체로 파손이 심하지 않은 이 탑은 기단(基壇)을 1층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윗돌을 괴어두는 부분에 2단의 높직한 괴임을 두었다. 탑신의 각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새겼으며, 직선을 그리던 처마는 양쪽 끝에서 느리게 위로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높직한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하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그리 크지 않아 길쭉한 인상을 주고 있다. 전체적인 맵시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일락사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일락사·대적광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위층 기단은 네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그 위 지붕모양의 덮개돌은 윗면에 비스듬한 경사가 있는데, 두 모서리가 크게 부서진 상태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이 아래의 기단과 거의 같은 크기이고, 2층 몸돌은 그에 비해 크게 줄어들어 있으며, 3층의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3층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낮은 받침돌이 남아있고, 그 위에는 머리장식 대신 막돌이 하나 놓여있다.

기단 일부가 부서지고 탑신의 3층 몸돌이 없어지는 등 보존상태가 좋지 않으나, 원래의 옛 모습은 단아함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석곡리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석곡리 마을회관 내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옛 절터에서 옮겨왔으며, 함께 발견된 이 옆에 남아 있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탑신부의 3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은 네장의 판돌을 세워 4면을 이루고 있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으며, 탑신부의 각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고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며시 들려 있다.
기단의 일부가 깨져 있거나 비뚤어진 상태이고, 지붕돌도 모서리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등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대련사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대연사는 백제 의자왕 16년(656) 나·당연합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도참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대연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석탑은 2층 기단(基壇) 위로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1매의 네모진 널돌로 하여 바닥돌과 겸하고 있는 단순한 형태이다. 위층 기단 윗면에는 탑신의 1층 몸돌을 괴기위한 받침을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각 층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1층과 2층 지붕돌은 경사면의 경사가 급하게 처리되어 있고 네 귀퉁이는 들림이 없이 완만하며, 밑면에는 1층이 2단, 2층이 3단이고 3층은 다시 2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마모된 부분이 없어 후대에 보완된 것으로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현재 탑신은 4개의 몸돌과 4개의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부자연스럽고, 3층 지붕돌이 다른 부분과 재질이 달라 후대에 와서 탑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높직한 탑신받침이나 두꺼운 지붕돌 처리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짐작되나 탑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탑선리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탑선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기단은 직육면체의 돌을 2단으로 짜 놓은 후 그 위로 판돌을 얹어 마무리하였고,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다른 돌로 새겨 차례대로 올려 놓았다. 탑신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는데, 현재 1층 몸돌은 세로로 기둥 조각의 폭만큼 잘려진 채 옆으로 뉘여 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위로 가볍게 들려 있으며,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남아있는 탑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며, 기단과 탑신을 이루는 돌의 재질이 서로 달라 원래는 각기 다른 탑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아인리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금산읍 아인리에 위치해 있는 석탑으로, 원래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탑신의 2층 몸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은 최근에 조립된 것으로, 네 장의 판판한 돌을 세워 4면을 만들고, 판돌을 덮어 마무리하였다. 탑신의 1층 몸돌 남쪽면에는 선으로 새긴 부처 모습의 조각이 있으며, 한 돌로 이루어진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은 그 위에 놓여 있는 3층 지붕돌의 크기가 잘 맞지 않아 불안정한 비례를 보인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은 4단, 2·3층은 3단이며, 네 귀퉁이에서 크게 치켜올라갔다.
석탑 주변에서 고려시대의 기와가 수습되어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홍성 고산사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고산사 삼층석탑은 전체적인 외관이나 양식이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초기처럼 깔끔하고 정교한 치석 수법은 보이지 않지만 전대의 석탑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으며 석탑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탑신석과 옥개석을 동일석으로 마련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산사 삼층석탑은 규모가 작음에도 탑신석과 옥개석을 별석으로 마련하였음

장복리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장복리 1구 장복실 동편에 있는 석탑으로 현재 지반위에 2개의 반석을 세워 지대석으로 삼고 그위에 하대갑석<下臺甲石> 상대중석<上臺中石> 등의 순서로 기단부를 조성하였고 위로는 2층의 탑신이 남아 있다. 기단중석은 원래 4개의 반석으로 조립되었던 것이나 현재 2개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없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향천사구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향천사 나한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9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탑신은 몸돌의 모서리에 각각 기둥 모양을 본 떠 새겼다. 탑신의 2층 몸돌은 1층에 비해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4층 부터는 몸돌이 없어진 채 지붕돌만 포개져 있어 옛 탑이 지니고 있었을 아름다움을 많이 잃고 있다. 얇고 넓적한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고 있으며, 처마의 선이 양쪽 가에서 부드럽게 위로 들려 우아한 곡선을 이루는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파손된 부분들이 눈에 띠어 아쉬움을 준다. 꼭대기에는 사각받침돌 위에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있다.
이 절은 백제 의자왕 12년(652)에 일본으로 건너갔던 백제 승려 의각이 처음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 탑 역시 절의 초창기 즈음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이 파손되긴 하였으나 백제탑의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는 탑으로, 절의 역사를 말해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계봉사 5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계봉사의 정원 가운데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계봉사는 백제 성왕 때 지었다고도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 때 지어졌다고 하나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헌종 때 불에 타 버린 것을, 옛이름을 따서 작은 규모로 새로이 짓고 정원을 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5층 석탑과 물을 받는 돌구유만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 기단의 앞면에는 탑의 이름을 새기고, 탑신의 각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겼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부터 4층까지 4단이다가 5층에 이르러 3단으로 줄었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높게 치켜 올라갔따. 꼭대기에는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 과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무늬 장식) 등의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돌 받침이 4∼3단으로 줄어드는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지석리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석리에 있는 3층 석탑으로, 원래 마을 뒷산에 있었는데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가져가려고 이곳까지 운반해 왔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가져가지 못하여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형태는 바닥돌 위에 1층 기단(基壇)을 세우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3개의 안상(眼象)을 얕게 조각하였고,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을 본 뜬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의 몸돌이 급격히 줄어들어 지붕돌보다도 높이가 낮아졌다. 기단에 새긴 안상조각이나 간략해진 탑의 구성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봉남리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봉남리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문모양과 문고리를 조각해 두었다.
고려시대에 만든 탑으로 짐작되며, 전해오는 말에는 탑의 뒷편에 사찰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탑 속에서 발견된 귀금속은 일제 시대 때 일본군이 훔쳐가 남아있지 않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수암리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옛 터에 당간지주와 함께 남아 있는 3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중앙과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겼다. 탑신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 올렸는데, 1층 몸돌이 큰것에 비해 2·3층 몸돌의 높이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 갔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고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지현리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방 관아의 뜰에 남아 있던 것으로 전하는 3층 석탑이다.
탑신(塔身)의 1층 몸돌 남쪽면에 새긴 기록에는 고려 성종 10년(991) 한산지방의 호족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뜻을 담아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수덕사칠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이 탑은 1930년 당시 수덕사 주지이신 만공선사께서 대웅전 앞에 건립한 화강석재 7층석탑으로 기단면석 외부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하고 있는데 면석에는 두께 10㎝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기단 위에 탑신부의 옥신대신 4개의 정사면채 석채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의 옥계석을 받치고 있다.

이 탑의 특징은 기단부는 없이 바로 탑신과 옥계석이 놓여 있으며 옥계석은 반전되어 있다. 현재 7층석탑은 황하루 옆으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천장사칠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천장사 인법당 앞뜰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은 밑돌이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로 지붕 모양의 맨 윗돌을 덮어두고 있는데, 그 폭이 탑신의 1층 몸돌과 거의 같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으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그리 크지 않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새겨두었다. 4층 지붕돌에서부터 7층 몸돌까지 놓인 돌들은 제자리가 아닌 듯 어색한 모습이며,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 또한 아래의 7층 지붕돌과 크기가 맞지 않아 원래의 형태는 아닌 듯하다.
탑신부의 몸돌이나 지붕돌의 모습에서 고려의 양식이 보이고 있으나, 기단의 폭이 탑신의 1층 몸돌과 거의 같은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후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광경사지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광경사의 옛 터에 당간지주와 함께 남아 있는 3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중앙과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겼다. 탑신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 올렸는데, 1층 몸돌이 큰것에 비해 2·3층 몸돌의 높이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 갔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고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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