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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사- 유네스코 세계유산/법주사

대웅전을 찾아-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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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에 자리한 법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속리산의 8개의 봉우리와 8개의 대(臺), 8개의 돌문이 그것인데 이들이 연꽃잎처럼 감싼 터에 절은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법주사를 둘러싼 속리산은 산 그자체로 불국토의 형상을 취한 셈이다.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법맥을 이은 영심대덕(泳深大德)이 길상사(吉祥寺)로 본격적인 사찰의 문을 연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법상종 사찰로 자리 매김하였다.



이때부터 절에는 미륵장육상을 모셔 미륵하생의 도량으로서의 구실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동생인 도생(道生) 승통이 주지를 맡는 등 법상종 사찰로 위치를 굳혀갔다.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리하여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이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 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보물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報恩 法住寺 大雄寶殿)
Daeungbojeon Hall of Beopjusa Temple, Boeun속리산 기슭에 있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지었고, 혜공왕 12년(776)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벽암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내부에 모신 삼존불은 벽암이 다시 지을 때 조성한 것으로 가운데에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 왼쪽에 보신(報身)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이 있다.

이 건물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불전(佛典) 중 하나이다.

보물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 (報恩 法住寺 四天王 石燈)
Stone Lantern with Reliefs of the Four Guardian Kings at Beopjusa Temple, Boeun
법주사 팔상전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석등이다. 전체적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아래받침돌은 면마다 안상을 새기고, 그 윗면은 가운데받침돌을 사이에 두고 윗받침돌과 대칭되게 연꽃을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가 경쾌한 느낌을 준다.

대체로 각 부분의 양식이 정제되어 있고 조각수법이 우수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시기는 신라 불교미술이 꽃피워진 8세기 중기 이후로 짐작된다.

보물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報恩 法住寺 塑造毘盧遮那三佛坐像)
Clay Seated Vairocana Buddha Triad of Beopjusa Temple, Boeun법주사에 모셔져 있는 이 삼불좌상은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불상, 오른쪽에 석가여래상을 배치한 삼불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비로자나불상은 네모진 얼굴에 건장하면서 굴곡이 없는 평판적인 몸체와 무릎을 하여 괴체적인 느낌을 준다. 왼손은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은 대의 자락이 팔목에서 대칭되게 흘러내려 장식적이다.

아미타불상은 본존불과 거의 동일한 유형의 불상으로 왼손은 가슴에 올리고 오른손은 배에 두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다.

석가여래상은 비로자나불상·아미타불상과 거의 같은 체형, 얼굴 모습 등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이 흔히 취하는 항마촉지인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한편 아미타불상과 석가여래불상은 손모양과 불상의 성격이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옷 차림법이 마치 판에 박은 듯한 양식 특징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장대한 체구에 비하여 동안이며, 옷주름을 두텁게 표현한 이 불상은, 조형성이 탄탄하여 임진왜란 후의 새로운 조형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불상 안에 넣어둔 유물들이 대부분 도난당했으나 남아있는 연기문(緣起文)에 의하면, 조선 인조 4년(1626)에 조성되었으며, 그 후로부터 121년이 지난 조선 영조 23년(1747)에 불상에 다시 금칠을 하였음을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초반의 불상연구에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출처: 글, 이마지 일부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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