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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충청의 사찰

동학사-123

by 돛을 달고 간 배 2007.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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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진 문/하지만 열린 마음

동학사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청량사(남매탑이 있는 곳)’라는 암자에서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1층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탑신부의 3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의 맨 윗돌은 탑신의 지붕돌과 같이 윗면에 비스듬한 경사를 두었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적당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통일신라 선덕왕 23년(723) 동학사를 처음 지을 때 함께 세워두었다 하나, 탑의 양식이나 다듬은 솜씨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동학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4) 상원사라 하여 처음 지은 절이다.

삼성각은 삼성(칠성·산신·독성)의 탱화를 모신 곳이다.

칠성은 북두칠성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맡고 있으며 산신은 우리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며 재물을 담당한다. 독성은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존재이다. 이것은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도교, 토속, 불교 등 여러 신앙요소가 합쳐진 형태이다. 불교 밖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건물 이름을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하였다.
















계룡산 동학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전문강원(승가대학)으로 유명한 도량입니다. 지금도 동학사에는 수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수학 수행정진하고 있습니다. 동학사는 비구니스님들이 수행공간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종묘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추모공간이기도 합니다. 그 연유를 살펴보면 불법의 위대함 자비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학사에는 사찰과 어울리지 않는 문이 있습니다. 왕릉, 종묘나 관아 등의 입구에 세우는 홍살문이 경내 입구에 커다랗게 세워져 있습니다. 또한 유교의 제당 같은 종묘가 대웅전 오른쪽에 3개의 전각이 있습니다. 3개의 전각은 신라와 고려, 조선의 충신들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는 사당들입니다.

동계사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충신 박제상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입니다. 고려개국공신 유차달이 고려태조의 원당인 동학사를 유람하던 중 사중에 모셔진 박혁거세 및 박제상의 영정을 보고 박제상의 충열을 사모하여 경내에 ‘東鶴祠’라는 사당을 창건하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은각은 고려말 이성계에 저항 죽은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 야은 길재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초혼제를 지낸 단에 세운 각입니다. 현재 삼은각에는 3분이외에 금알 유방택, 도은 이숭인, 죽헌 나계종 위패가 모셔져있습니다.

숙모전은 단종과 사육신 등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면서 원통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사당입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사당은 세조의 명으로 건립되었습니다. 세조는 동학사에 왔다가 삼은각 옆에 품자의 단을 보고 무슨 단이냐고 물었습니다.

김시습이 단종과 사육신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초혼재를 지낸 단이라는 설명은 들은 세조는, 원통하게 죽은 280여명의 이름을 비단에 써서 주며 토지를 내리면서 초혼각을 건립하라고 명하면서 매년 제사를 지내도록 했습니다. 또 세조는 사찰의 이름도 동학사란 이름을 내렸다고 합니다. 당시 세조가 서서 울었다는 바위(자작바위)가 동학사 입구에 남아 있습니다.

매년 동학사는 3월15일 과 10월 24일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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