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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강원의 사찰

오대산 상원사 그리고 문수동자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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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오대산 상원사에 올 때마다 사용했던 관대걸이다. 현재 그 터가 전해지지는 않지만, 세조가 의관을 걸어두었던 관대걸이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행궁의 유적이다.

고양이가 상원사에 온 세조의 바지자락을 물며 법당으로 못 가게 막아섰다 의심도 많은 세조가 이상하게 여겨 법당 안을 뒤져보니 그 안에 자객이 있었다 이리하여 이 고양이들은 전용 밭을 하사 받고, 석상까지 만들어져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상원사대웅전 (上院寺大雄殿)

상원사는 치악산 남쪽 남대봉 중턱의 해발 1,100m의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설과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대사가 지었다는 설이 있다.

대웅전은 고려말 나옹스님에 의해 새롭게 지어졌으나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1968년에 다시 지은 후에 198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높은 곳에 조성된 사찰답게 자연지형에 맞게 배치되었으며 비교적 낮은 기단 위에 조성되었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다포계 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형태의 건물이다.

대웅전 앞에는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고 전하는 삼층석탑 2기가 있고 심우당, 심검당,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국보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象)
Wooden Seated Child Manjusri of Sangwonsa Temple, Pyeongchang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보천과 효명의 두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로, 조선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와 같이 상원사는 문수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개는 약간 숙인 상태이며 신체는 균형이 잡혀 있다.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 올린 동자머리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볼을 도톰하게 하여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러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넓은 어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가로질러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신체의 윤곽에 따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거의 맞닿을 듯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왼쪽 다리를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대좌(臺座)는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불상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세조는 말년에 피부병인 욕창을 앓았는데, 치료차 오대산을 방문하였고 오대천의 맑은 물에 몸을 담그던 차에 지나가는 어느 동자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자가 등을 밀어줘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지자 기뻐하였지만 한편으론 부끄러워 동자에게 "어디 가서 왕의 옥체를 보았다는 소리를 하지 마라." 하였는데, 동자도 "어디 가서 문수동자를 봤다고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답하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병이 낫자 세조가 크게 감격하여 화공을 불러 이때 만난 동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는데, 어느 화공도 제대로 그리지를 못하였다. 그러던 중 하루는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와서 자신이 그려보겠다고 하였고 이에 세조는 노스님의 몰골에 속으로 탐탁지 않아 하면서 믿지를 않았으나 일단 그 모습을 설명해주려 했다. 그러나 노스님은 자신이 알아서 그리겠다며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곧 그려온 문수동자의 모습이 자신이 봤던 것과 너무 똑같아 세조가 놀라게 된다. 급히 어디서 왔냐고 묻자 노스님은 영산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즉 세조는 동자와 노스님으로 화현하여 나타난 문수보살을 두 번 친견한 것이다. 훗날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그림을 본으로 삼아 문수동자상을 조각하여 절에 봉안했다고 한다.


상원사 동종

국보
상원사 동종 (上院寺 銅鍾)
Bronze Bell of Sangwonsa Temple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보물)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연곽(蓮廓)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연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연뢰(蓮蕾)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항아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갖춘 모본이 되는 종이다.




국보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平昌 上院寺 重創勸善文)
Documents of Sangwonsa Temple, Pyeongchang

세조 10년(1464) 세조의 왕사인 혜각존자 신미 등이 학열, 학조 등과 함께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자 상원사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지은 글로,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세조가 쌀, 무명, 베와 철 등을 보내면서 쓴 글과 함께 월정사에 소장되어 전한다.

각각 한문 원문과 번역으로 되어 있는데, 신미 등이 쓴 글에는 신미, 학열, 학조 등의 수결(지금은 서명)이 있으며, 세조가 보낸 글에는 세조와 세자빈, 왕세자의 수결과 도장이 찍혀 있다. 한글로 번역된 것은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 유명하다.

세조와 상원사 및 신미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며, 당시의 국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가장 오래된 한글 서적이면서도 보존 상태가 완벽하여 1997년 1월 1일 보물에서 국보로 지정되었다.



보물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
Excavated Relics from the Wooden Seated Child Manjusri of Sangwonsa Temple, Pyeongchang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平昌 上院寺 木彫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은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목조문수동자상(국보)에서 1984년 7월 불상의 유래를 밝힐 수 있는 2개의 발원문(發願文)과 조선 전기의 복식, 전적류 등 23점의 복장유물이 발견된 유물이다.

발원문은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만든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으며 후대에 보수한 기록도 적어 놓고 있다. 첫번째 발원문은 세조 12년(1466)에 세조의 둘째 딸인 의숙공주와 남편 정현조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오대산 문수사에 여러 불·보살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크기는 세로 31.5㎝, 가로 24㎝의 낱장으로 되었고, 푸른 비단에 붉은색으로 글씨를 썼다. 또다른 발원문은 1599년에 2구의 문수동자상과 16구의 나한상 등에 금칠을 새로 하고 고쳤다는 내용이다. 크기는 세로 34.6㎝, 가로29.1㎝의 낱장으로 되었고 역시 푸른 비단에 붉은색으로 글씨로 썼다.

전적류는 모두 13종으로 백지묵서제진언, 대방광불화엄경, 오대진언, 묘법연화경 5종, 원각경 2종, 육경합부 3종이 발견되었다.

백지묵서제진언은 불교의 가르침 66가지를 범어로 옮겨 적은 것으로, 두루마리 형태이며 크기는 세로 41.8㎝, 가로 679.3㎝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화엄경 60권 가운데 권28에 해당하며 간행 시기는 12∼13세기로 추정된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1.6㎝, 가로 12㎝이다.

오대진언은 다섯가지의 다라니 진언(眞言:부처님의 깨달음을 말한 글)을 범어, 한글, 한자순으로 적고 있다. 성종비인 인수대비의 명으로 당나라에서 원본을 구하여 한글로 음역하고, 성종 16년(1485)에 간행한 것이다.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닥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27㎝, 가로 16㎝이다.

묘법연화경 권1-3, 4-7은 2권의 책으로 되었고, 크기는 세로 26.9㎝, 가로 16.8㎝이다. 작은 글자로 아주 정교하게 새겨 고려 정종 1년(1399)에 간행한 것으로 해린(海隣)이 1년에 걸쳐 새긴 것이며 인쇄 상태로 볼 때 판을 새기고 한참 후에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묘법연화경 권1-7은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모두 10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24.1㎝, 가로 8.5㎝이다. 태종 4년(1404)에 간행된 목판본으로 표지는 검푸른 색이고 제목은 금색으로 쓰여있다. 묘법연화경 권6-7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1권의 책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35㎝, 가로 25㎝이다. 세조 때 간행된 을해자본으로 인쇄직후 불상에 넣은 듯 매우 깨끗이 보관되어 있다. 묘법연화경 권1-3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1권의 책으로 되어있고 크기는 세로 27.6㎝, 가로 16.6㎝이다. 불상에 넣기 전에 읽으면서 달아놓은 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용중에 복장유물로 넣은 것으로 보인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세조 11년(1465)에 간행된 목판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27.7㎝, 가로 18.5㎝이다. 세조가 1465년에 원각사를 세우고 난 뒤 효령대군에게 명하여 교정한 원각경을 정란종(鄭蘭宗)이 쓴 것으로 을유자(乙酉字)로 찍은 것이다. 을유자본은 을유년에 만든 활자로 찍은 책을 말하며 그해의 간지를 따서 을유자라고 부르며, 이 책은 현재 전하는 을유자본 가운데 가장 깨끗한 책이다. 또다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권상·중·하 3권이 세로 25.1㎝, 가로 16.5㎝의 하나의 책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전에 강희안이 옮겨 적고 간행했던 간경도감판본을 명종 19년(1564)에 신흥사(臣興寺)에서 다시 새겨 찍어낸 것으로 그 새김이 매우 정교하다.

세로 29.3㎝, 가로 17.3㎝ 크기의 육경합부는 1440년에 영제암에서 판각한 목판을 인수대비가 성종 3년(1472)에 대대적으로 찍어낸 것 가운데 하나이다. 화암사에서 성종 19년(1488)에 다시 새긴 다른 육경합부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크기는 세로 26.6㎝, 가로 15.7㎝이다. 진안(鎭安) 중대사(中臺寺)에서 세조∼명종년간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또다른 육경합부는 크기가 세로 26.4㎝, 가로 16.3㎝인데 상원사 복장유물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지 않다.

당시 상류계층에서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명주 적삼 1점과 생명주 적삼 1점은 불상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공덕을 쌓기 위해 다른 유물들과 같이 넣은 것으로 보인다. 황색 보자기는 불상에 들어갈 유물들을 싸는데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구슬 3개와 사리가 같이 발견되었다.

위의 유물 중 발원문은 상원사문수동자상 및 여러 불·보살의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고, 전적 중 제진언은 조선 전기 필사본으로는 유례가 드문 것이며, 그밖에 활자본과 목판본은 나름대로의 서지학적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복식류는 조선 전기의 의류로 현재까지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平昌 上院寺 木造文殊菩薩坐像 및 腹藏遺物)
Wooden Seated Manjusri Bodhisattva and Excavated Relics of Sangwonsa Temple, Pyeongchang

보물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平昌 上院寺 木造文殊菩薩坐像 및 腹藏遺物)
Wooden Seated Manjusri Bodhisattva and Excavated Relics of Sangwonsa Temple, Pyeongchang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平昌上院寺木造文殊菩薩坐像및 腹藏遺物)’은 조선 1661년(현종 2)의 조성연대와 문수보살좌상임을 밝히는 발원문과 함께 많은 복장유물을 동반하고 있는 중요한 보살상이다. 이외에도 발원문을 통해 같은 해 전라남도 강진의 무위사 지장보살상을 조성한 회감(懷鑒)과 여러 명의 조각승이 함께 참여하여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원사 보살상은 여의를 들고 있는 문수보살상으로 희귀한 예에 속한다. 또한 지물(持物)뿐만 아니라 섬세한 보관도 조성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주목된다. 특히 안정감 있는 신체, 조용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의 상호, 입체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선묘를 보이고 있어 조각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

발원문은 의천(義天)이 작성한 것인데 상원사의 세 번에 걸친 중창내력과 성격, 문수보살상의 조성과정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특히 이 불상을 조성한 회감은 17세기 중엽경 인균(印均)과 함께 많은 불상을 제작했던 조각승이어서,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조각승간의 교류관계 및 이에 따른 불상 양식의 흐름과 변천을 연구하는 많은 도움이 된다.

한편 1661년이라는 분명한 조성시기는 이 상이 17세기 전반기과 후반기 양식을 이어주는 지점에 있는 불상이자 17세기 후반의 기준작으로 대표될 수 있음을 의미하여 이 시기 불교조각 및 조각승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인정된다고 하겠다.



보물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복장전적 (平昌 上院寺 木造文殊菩薩坐像 腹藏典籍)
Excavated Documents from the Wooden Seated Manjusri Bodhisattva of Sangwonsa Temple, Pyeongchang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복장전적(平昌上院寺木造文殊菩薩坐像腹藏典籍)’은 ‘백지묵서금강반야바라밀경(白紙墨書金剛般若波羅蜜經)’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6’ 이다.

백지묵서금강반야라밀경은 백지에 먹으로 쓴 사경으로 전면에 ‘금강반야바라밀경’, 후면에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 수록되었다.

금강반야라밀경은 대승불교의 대표경전으로 줄여서 ‘금강경’ 또는 ‘금강반야경’이라고도 한다. 상원사의 금강경은 권두에 변상도는 없고 구마라집(鳩摩羅什)의 번역본을 저본으로 펴낸 것이다. 사성기(寫成記)가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도침이 잘된 두터운 장지(莊紙)에 정성들여 쓴 서체의 품격에서 사경체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사성시기는 14세기로 추정되고 희소성이 있는 것으로 사경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묘법연화경 권6’은 송나라의 승려 계환(戒環, 1119~1125년)이 주해한 송본(宋本)을 저본으로 하여 고려의 최이(崔怡, 1356~1426년)가 주관하여 판각한 판본을 다시 인쇄한 것으로, 간행시기는 여말선초로 추정된다. 상하단변에 2엽마다 판수제, 권차 및 장차가 있어 고려시대 권자본(卷子本)이나 절첩본(折帖本)의 특징을 보여준다. 28행의 절첩본 판식에서 14행씩 찍어내어 선장식으로 제책된 포배장본이다. 이 판본은 판각 및 인쇄상태로 보아 1240년(고려 고종 24)에 판각된 판에서 여말선초에 펴낸 희소한 판본으로 불교사 및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상원사지석탑및광배 (上院寺址石塔및光背)


상원사는 치악산 중턱인 해발 1,100m에 자리잡고 있어  높은 곳에 있는 절이다. 신라 때 무착선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꿩이 이 절의 종을 울려서 스님을 살려 은혜를 갚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절내의 대웅전 앞에 동서로 나란히 서 있는 이 두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크기와 형식에 있어 서로 비슷하다. 아래 ·위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은 1층 몸돌이 큰 편이나, 2층부터는 높이가 많이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모두 1단으로 이루어졌으며,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둥근 연꽃봉오리모양의 독특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지붕돌 받침이 간략화된 모습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동쪽 탑 앞에는 석불의 것으로 보이는 광배(光背)와 대좌(臺座)가 놓여 있다. 광배는 불꽃무늬 테두리 안에 연꽃과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는데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대좌의 형태는 8각형이며, 한 면의 일부가 조금 깨졌다. 불상은 남아있지 않아 그 모습을 알 수 없으나, 광배와 대좌의 조각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고려전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평창 상원사 문수전 목조동자상(3구) (平昌 上院寺 文殊殿 木造童子像(3軀))

이 동자상 3구는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조각적으로도 뛰어난 조선후기의 목조상으로, 불교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평창 상원사 문수전 목조제석천왕상 (平昌 上院寺 文殊殿 木造帝釋天王像)

이 제석천왕상은 복장유물이 완전하게 보관되어 있어 1645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연대와 제작자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각적으로 우수하며 현존하는 조선시대 제석천왕상으로 매우 귀중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복장유물 (平昌 上院寺 木造文殊菩薩坐像 腹藏遺物)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과 복장유물 중 후령통, 발원문 9건, 묘법연화경 권6, 금강반야바라밀경 1첩은 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문화유산자료로 지정한 복장물은 보물로 지정된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복장물과 함께 발견된 것으로 문수보살좌상의 조성 연대(1661년)로 미루어 보아 전적의 경우는 임란 이전의 판본이 많고, 필사 역시 1661년 불상 조성 당시의 것으로 조선시대의 불복장(佛腹藏) 매납방법 연구와 인쇄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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