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절 순례

적멸보궁 어디까지 가봤나?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8. 6.
반응형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석가모니불이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寂滅道場)을 뜻하는 전각으로, 불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이곳에서 상락아정(常樂我淨)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는 곳임을 상징한다. 따라서  불佛사리를 모시고 있는 이 자리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사리는 곧 법신불(法身佛)로서의 석가모니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적멸보궁의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불사리를 모신 곳이 많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는 적멸보궁.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강원도 정선군 동면 고한리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이 중 태백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시대에 자장(慈藏, 590-658)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頂骨)사리를 직접 봉안한 것이며, 정암사의 보궁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泗溟大師, 1544-1610)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5대 적멸보궁 중 오대산의 것 외에는 사리를 안치한 위치가 분명하지만, 오대산의 보궁은 어느 곳에 불사리가 안치되어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아 그 신비성을 더하고 있다. 이들 5대 적멸보궁은 불교도의 순례지로서, 또 기도처로서 가장 신봉되고 있는 성지이다. 이 밖에 비슬산 용연사(龍淵寺)에도 사명대사가 통도사의 사리를 나누어 보관한 적멸보궁이 있다.

통도사 적멸보궁
국보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
Daeungjeon Hall and Ordination Platform of Tongdosa Temple, Yangsan

통도사는 우리 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웠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5칸이고, 지붕은 앞면을 향해 T자형을 이룬 특이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바깥쪽 기단 부분과 돌계단 층계석, 계단 양쪽(소맷돌)부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은 뛰어난 연꽃조각을 볼 수 있다.

불가에서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으며, 지금 있는 금강계단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양식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금강계단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운데에 종 모양의 석조물을 설치하여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 1층 기단 안쪽 면에는 천인상을 조각하고 바깥쪽 면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제석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지은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건축인 대웅전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담고 있는 금강계단은 각각 건축 구조와 건축사 연구, 계단(戒壇)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에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암사 적멸보궁

국보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旌善 淨岩寺 水瑪瑙塔)
Sumanotap Pagoda of Jeongamsa Temple, Jeongseon


수마노탑은 기단에서 상륜부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모전석탑으로, 석회암 지대라는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고회암(苦灰巖)으로 제작되었고, 쇠퇴한 산천의 기운을 북돋운다는 ‘산천비보(山川裨補) 사상’과 사리신앙을 배경으로 높은 암벽 위에 조성된 특수한 석탑임. 특히, 탑지석을 비롯한 자료에서 수리기록과 연혁을 알 수 있고,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점에서 국가지정 문화유산(국보)으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충분함.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셔놓는 건물을 가리킨다.

정암사 적멸보궁은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영조 47년(1771)에 고쳐 지은 것으로 미루어 18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이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이곳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정암사에 수마노탑을 세워 안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불상이 없고 신중탱화 2점과 동종 1점을 보관하고 있다. 이는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사리가 있기 때문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적멸보궁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통도사, 법흥사, 상원사, 봉정암의 적멸보궁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불린다.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상원사)
보물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平昌 五臺山 中臺 寂滅寶宮)
Jeokmyeolbogung Hall, Jungdae Terrace in Odaesan Mountain, Pyeongchang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인 내·외부 이중구조의 불전 건축물이다. 내부와 외부 건물 모두 동일하게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외부는 익공식, 내부는 다포식 건축양식이다. 외부 건물은 조선 후기(19세기)의 보편적인 이익공양식 구조를 보이지만, 내부 건물은 기둥의 편수깍기, 창방뺄목의 형태, 살미와 첨차의 공안, 모각소로의 표현, 앙서 상면의 곡선처리 등 부재의 치목수법과 구성형식이 조선 초·중기의 건축물인 심원사 보광전(북한 소재, 1374년), 국보 안동 봉정사 대웅전(1435년 중창), 국보 서울 숭례문(1448년 중수) 등과 유사한 고식기법을 가지고 있어 건축·양식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

법흥사 적멸보궁(法興寺 寂滅寶宮)은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에 있던 적멸보궁이다. 1984년 6월 2일 강원도의 문화재자료 제29호로 지정되었으나, 1990년 5월 31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문화재 지정 해지의 이유로 추측 되는 것은 사리탑이나 명시된 부도 등의 실물이 없기 때문에 문화재라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문화재로서의 근거가 부족한 것과 적멸보궁이란 신앙적 신념과는 별개이기에 여전히 적멸보궁이 가지는 신비함은 유효하다 할 것이다.




용연사 적멸보궁

대구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915번지 용연사

보물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 (達城 龍淵寺 金剛戒壇)
Ordination Platform of Yongyeonsa Temple, Dalseong


계단(戒壇)은 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수여하는 식장으로, 이 곳에서 승려의 득도식을 비롯한 여러 의식이 행하여 진다. 용연사 내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이 계단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임진왜란(1592) 때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겼던 통도사의 부처사리를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의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한다.

돌난간이 둘러진 구역 안에 마련된 계단은 널찍한 2단의 기단(基壇)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네 모서리마다 4천왕상(四天王像)을 1구씩 세워두고, 위층 기단은 4면에 8부신상(八部神像)을 돋을새김하였는데, 뛰어난 조각솜씨는 아니지만 섬세하고 균형감이 있어 단조로운 구조에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양식을 보이고 있는 탑신은 별다른 꾸밈을 하지 않은 채 꼭대기에 큼직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조각해 두었다.

절 안에 세워져 있는 석가여래비에는, 석가의 사리를 모시고 이 계단을 쌓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을 통해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계단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구조가 섬세하고 조각기법이 예리하며, 특히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당시의 석조건축과 조각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봉정암 적멸보궁

보물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麟蹄 鳳頂庵 五層石塔)
Five-story Stone Pagoda at Bongjeongam Hermitage, Inje

봉정암 오층석탑은 설악산 소청봉 아래 해발 1244미터 높이에 위치한 봉정암의 경내에 있는 높이 3.6m 규모의 석탑이다. 한용운이 쓴 『백담사사적기』(1923년)에 수록된「봉정암중수기」(1781년)에 따르면 지장율사가 당에서 얻은 석가불의 사리 7과가 이 탑에 봉안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봉정암은 통도사, 상원사, 정암사, 법흥사와 함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탑의 형식상 그 구성이 단순하고 탑신의 체감률도 적은 편이며 옥개석에 구현된 양식 등은 고려후기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그 조성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석탑은 기단부․탑신부․상륜부의 3부분이 조화를 이루며 건립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탑은 거대한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삼아 바위 윗면을 치석하여 2개의 단을 만들고 그 주변에 16개의 연잎을 돌려 기단부를 조성하였다. 그 위에 올려진 탑신석[몸돌]은 3층까지 모서리에 우주(隅柱, 기둥)가 모각되어 있고 탑신석 위에 올려진 두꺼운 옥개석[지붕돌]은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하며 끝부분만 살짝 반전된 형태이다. 옥개석 아래로는 각 층마다 3단의 옥개받침이 두껍고 투박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옥개석의 윗면에는 탑신받침이 새겨져 있다. 상륜부는 연꽃 봉오리 혹은 보주 형태의 석재를 올려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봉정암 오층석탑은 기단부를 생략하고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았다는 점,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이라는 점 그리고 고대의 일반형 석탑이 고려후기에 단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불교건축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나 홀로 봉정암에 올라 먹은 미역국. 미역국이 이런 맛이 날 줄은 정말 몰랐다. 너무 맛있어!

정법계진언

ॐ नं 옴 남

라자색선백(羅字色鮮白)..न자는 색이 곱고 흰데
공점이엄지(空點以嚴之)..공의 점नं으로 장엄했다.
여피계명주(如彼계明珠)..상투위에 구슬 올려서
치지어정상(置之於頂上)..그것을 정상에 올렸네
진언동법계(眞言同法界)..진언은 법계와 같은데
무량중죄제(無量重罪除)..한없는 죄를 소멸시키네
일체촉예처(一切觸穢處)..일체의 더러운 곳에
당가차자문(當加此字門)..이 글자를 놓아 두라.


नमो나무 समन्थ사만다 बुद्धनं 못다남 नं남
나모 사만타 붇다남 남(산스끄리뜨어)
시방에 두루 계신 부처님들께 귀의 합니다.

※봉정암은 새벽 4시에 출발(용대리) 오후 5시에 돌아오는 힘겨운 과정을 거쳤다. 다시 5시간을 운전하면서 귀가한 순례길이었다.

반응형